노자
이태영 지음 / 여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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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子는 ‘無爲自然’을 추구했던 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다. ‘無爲’는 어떤 것도 간섭하거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自然’은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즉, 무위자연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 자연 그대로로 돌아가는 것이다. 노자가 살던 시기는 봉건질서가 문란해진 극도의 혼란기로 규범이 무너진 상태였는데 노자는 예의나 법 따위의 인위적인 것들로 인해서 혼란이 생겨나는 것으로 보고 자연의 순리에 맞는 삶을 추구했다. 노자의 사상이 오늘날 환경 파괴나 인간성 상실,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으나, 춘추시대에서 현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2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대가 많이 바뀐 만큼 무작정 그의 사상을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노자의 사상을 비판해 보겠다.


먼저, 노자는 사회적인 개념을 간과했다. 그가 주장한 무위자연은 억지로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람이 혼자 산다는 전제에서는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현대사회에서는 맞지 않다. 더군다나 관료제라는 기틀 속에서 운영되는 요즘, ‘억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료제의 무너짐과 동시에 사회 체제 붕괴를 야기하는 것이다. 이미 사회가 법 따위 등의 인위적인 것들로 흠뻑 젖어있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무위자연을 한다면 근본으로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몰락하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노자는 현실 도피적이었다.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그의 주장처럼 그도 마지막에는 망할 징조가 보이는 본국을 버리고 도피하는 삶을 살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면하고 풀어가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문제 해결을 자연의 자정작용에 맡겨두고 자신은 숨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사상 속에서 은거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현대에서 그런 모습은 현실을 회피하려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보인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인간이 저지른 문제는 인간이 풀어야하지 자연의 자정작용에 오로지 맡겨두기만 한다는 것은 책임회피밖에 되지 않는다. 책임 회피를 하는 사람은 지금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은 피라미드식의 사회가 구성되어있다. 아래층의 기반을 바탕으로 위층을 지지하는 벽돌이 자기의 임무를 회피하기만 한다면 피라미드는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에 그 벽돌은 버려지게 되고 자신의 임무를 성실하게 이행할 수 있는 다른 벽돌이 와서 그 자리를 메꾸어 피라미드를 유지할 것이다.



세 번째로, 노자는 교육을 인정하지 않았다. ‘敎育’에 대한 정의가 시대마다, 학자마다 다양하지만 뭉뚱그려 사전적으로 말하자면 ‘지식과 기술 따위를 가르치며 인격을 길러 주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노자의 시각으로 본 교육은 無爲를 내세우면서 ‘스스로 道, 즉 자연의 질서를 깨닫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교육에 대한 입장도 부정적이다. 오늘날 교육은 현대 사회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이다. 앞서 말했던 관료제 사회도 기술 교육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며 이미 인간의 기계화가 되어버린 오늘날, 부품 끼워 맞추기식의 인재를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수적이다. 정규 교육과정을 다 밟고 더 나아가 고등 교육과정까지 밟아도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십대도 장차 백수)이라는 신조어가 나오는 요즘 교육마저 없다면 사회는 인재부족에 허덕이다 끝내는 허물어질 것이다. 물론,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직업을 가질 수 없는 것이 아니고, 또한 직업을 가지는 것이 최고의 목표인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큰 흐름이 그렇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노자는 욕심을 줄여 무욕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경지로 삼았다. 현대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방향으로 크게 발전해나가서 보다 풍부한 색채를 가진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자기 자신의 욕구를 억누르고 세계를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만 보려 한다면 현대의 문제점 중 하나인 인간의 감정이 메말라 가는 현상을 더 촉구하게 될 뿐이다. 물론 욕구를 도에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것 또한 중요하겠지만, 무욕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상이 오늘날 횡행한다면 인간미가 없는 사막 같은 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다섯 번째로 노자는 자연을 조작하고 발전하는 과학을 반대했다. 인간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발전하여 오늘날 자연 파괴로 인한 문제점을 야기하게 된 것은 물론 잘못이다. 그러나 이미 자연이 황폐해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에 와서 과학을 반대한다는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인간까지 살아가기 힘든 상황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현대의 과학 기술은 미약하게나마 자연을 복구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과학으로 인해서 자연이 망가졌으나, 이제는 과학을 통해서 자연을 되살릴 수 있다. 만약 지금 과학을 반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면서 모두가 망가진 자연을 회피하고 그저 자연스레 정화되기만을 기다린다면 이미 망가진 자연은 더 부패할 것이며, 그러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더욱 살기 힘들어질 것이다.



노자가 살던 혼란하던 시대에서 세상이 無爲自然을 했다면 혼란이 어느 정도 잠잠해졌을지도 모르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현대에서 그의 사상을 오로지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비례식처럼 한쪽에서 대응되는 법칙 그대로 다른 편에 그대로 적용하고 풀어나갈 수 없는 것이 인간사회이기 때문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이상을 추구했던 노자의 사상은 긍정적인 면도 있으나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현대에서 적용하기는 무리가 있다. 처음의 에덴동산은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가인이 죄를 저지른 후 에덴동산은 꿈의 낙원이 되었다. 에덴동산이 아름다웠다고 그때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이미 죄를 저지른 이상 불가능하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에덴동산으로 돌아가자는 사상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그만큼 어리석어 보인다.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기 보다는 주어진 현실 속에서 점진적으로 문제를 개선해 가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며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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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감귤 2009-06-2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감하십니다 노자를 비판하시다니...ㅎㅎㅎ

유쾌한마녀 2009-06-20 09:43   좋아요 0 | URL
제가 좀 건방졌죠??^^;

제주감귤 2009-06-20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쁘게 말하면 그렇고, 좋게 말하면 과감하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