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라는 남자가 있었다. 하버드 대학을 나왔지만 마땅한 직업을 가지지 않은 채 아버지 연필공장에서 일을 돕고, 사색과 글쓰기를 좋아했던 남자. 분명 주변의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실패한 인생이었을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살던 그는 숲속의 호숫가로 찾아든다.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과 더불어 지낸다. 2년 2개월 만에 월든 호숫가 생활을 청산하고 내려왔지만, 그가 그동안에 축적해놓은 생각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고전 <월든>, <시민의 불복종>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그를 자연주의자이자, 간디 사상의 모태가 된 비폭력주의자이자, 구도자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글쟁이로서 사랑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행복한 삶이란 나 이외의 것들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은 식어 버린 불꽃이나 어둠 속에 응고된 돌멩이가 아니다. 별을 별로 바라 볼 수 있을 때, 발에 채인 돌멩이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 있을 때,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때, 비로소 행복은 시작 된다. 사소한 행복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루 한 시간의 행복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일 장작 몇 개를 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것과 동시에 당신의 영혼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신성한 불을 지필 수 없다면.
그는 너무 빨리 죽었다. 말했듯 연애 한 번 제대로 못 해보고, 45살에 죽었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처럼, 소로우 이 남자는 겨울 산의 나무 나이테를 세다가 폐렴이 악화되어 죽었다.
자신의 집에서도 여행자처럼 살라. 산책길에 주운 마른 나뭇잎이 바로 우리가 여행에서 찾고자 했던 그 무엇이 아닌가. 여행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던가. 자신이 속한 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 이상적인 나라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그는 작은 키에 왜소한 어깨에 직업도 없고 딱히 연애라 할 것도 해본 적 없고 열심히 입만 놀리는 궤변가다.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를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주체할 수 없어진다. 아, 사랑에 빠졌어.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鼓手)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떠하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