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요괴상점 : 눈꽃마을 집단 살인 사건
18세기구름 지음 / 라곰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원래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 <한성요괴상점 : 눈꽃마을 집단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특히 서양식 마법이나 중세 유럽풍 판타지보다 조선시대 배경, 요괴, 요괴사냥꾼을 활용한 이야기를 좋아해서 ‘조선시대의 한성에 요괴 전문 사건 해결소가 있다’는 설정 자체가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작가가 ‘18세기구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묘하게 재미있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다른 필명으로 활동해왔다고 하니, 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지는 것까지 작품 바깥의 작은 미스터리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소설은 역시 카카오페이지 인기작 다웠습니다. 조선 말기의 남대문, 종로, 청계천, 궁궐과 저잣거리 같은 익숙한 역사적 공간에 요괴를 자연스럽게 끼워 넣습니다. 영의정 김흥근이나 순조 26년 같은 실제 역사적 배경이 등장하는 가운데, 그 틈을 아무렇지도 않게 요괴들이 돌아다닙니다. 


또 한성요괴상점의 최한기, 정수동, 들명이라는 세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도 활극의 재미를 살립니다. 특히 요괴 전문 사냥꾼 정수동은 전형적인 영웅형 인물이라기보다 거침없는 언변과 행동력으로 상황을 밀어붙이는 인물이라 읽는 맛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건들이 길게 늘어지지 않고 절기별 에피소드처럼 전개돼서, 한 편씩 괴담을 듣듯 읽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이 단순히 ‘조선시대 요괴 잡는 이야기’였다면 이렇게 오래 기억에 남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남의 불행을 먹는 존재, 권력을 탐하는 요괴, 죽은 사람을 파먹는 괴물들이 등장하지만 정작 이야기 속에서 가장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 사회입니다.


특히 가난한 백성들이 희생되는 사건들을 읽으면서 ‘괴물이 사람을 죽였다’는 단순한 이야기를 넘어, 왜 늘 약한 사람들이 먼저 희생되는가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작품이 한국 소설 시장에서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순문학의 가치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한국 소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진지한 서사에 집중하면 독자로서는 조금 숨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문학이라고 꼭 잔잔하고 우울하고 심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요괴가 뛰어다니고 칼을 휘두르고 사건을 해결해도 그 안에서 인간과 사회를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묵직한 질문을 숨겨놓는 방식이 훨씬 많은 독자를 문학으로 끌어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성요괴상점 : 눈꽃마을 집단 살인 사건>을 한국형 판타지를 좋아하는 분, 조선시대 배경의 미스터리나 괴담을 좋아하는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무협이나 동양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잘 맞을 듯합니다. 반대로 무거운 역사소설을 기대하기보다는 속도감 있는 활극과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읽는 편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런 소설이 더 많이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소설은 사유의 장르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이야기의 장르이기도 하니까요. 재미있어서 페이지를 넘겼는데 마지막에는 인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것. 제가 판타지에서 기대하는 것은 바로 그런 재미입니다. <한성요괴상점>은 꽤 정확하게 그 지점을 건드린 작품이었습니다.


#라곰 #한성요괴상점 #18세기구름 #판타지 #요괴사냥꾼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 이광웅 변호사의 법률에세이
이광웅 지음 / JH Press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가끔 법이 정말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가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법은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법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명예훼손처럼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가 충돌하는 법을 볼 때면, 제도가 과연 힘없는 개인에게도 같은 무게로 작동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법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라는 제목부터 상당히 도발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예전에 민법을 공부한 적이 있어서 법률 문장이나 권리·의무의 기본 구조가 아주 낯설지는 않습니다. 공부할 때의 법은 상당히 논리적이었습니다. 요건이 있고, 그 요건에 해당하면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런데 실제 사건에서는 그 사이에 사람이 들어갑니다. 판사, 검사, 수사관, 변호사, 심의위원 등이 사실을 해석하고 증거를 판단합니다. 바로 그 순간 교과서 속 법과 현실의 법 사이에 간극이 생깁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도 그 지점이었습니다. 저자는 같은 증거라도 법관이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고, 수사기관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사건 자체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법은 수사를 의무로 적었지만 현실은 수사관의 재량”이라는 문제의식은 꽤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법에 어떤 권리가 적혀 있다는 것과 그 권리를 현실에서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도 이런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증거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조사 과정에서 특정한 인상이 굳어져 사건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고, 학교폭력 심의처럼 한 사람의 삶에 큰 영향을 주는 절차에서도 이미 결론을 정해놓은 듯한 판단이 나타납니다. 읽다 보면 “억울하면 법대로 하면 되지”라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문장인지 깨닫게 됩니다. 법대로 하기 위해서조차 상당한 지식과 기록, 시간과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핵심을 ‘법을 믿지 말라’가 아니라 법이 자동으로 작동할 것이라고 믿지 말라는 경고로 읽었습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법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권리는 행사해야 현실의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조사 전에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중요한 내용은 구두로 끝내지 않고 서면으로 남기고, 불송치 이유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이의를 제기하는 등의 행동수칙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사건의 당사자가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경찰서나 법원에 갈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막상 사건이 생기면 전문가나 기관이 알아서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보의 비대칭이 큰 영역일수록 당사자가 질문하고 기록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조금 피곤한 결론이지만 현실적입니다. 법 앞에서도 결국 “알아서 잘해주시겠지” 모드는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책의 모든 주장에 무조건 동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사건에는 책에 담기지 않은 사실관계가 있을 수 있고, 특정 판결이나 수사를 평가할 때는 반대쪽 논리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보여주는 ‘절차를 모르는 개인이 얼마나 쉽게 수동적인 위치에 놓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의미 있습니다.


<법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법학 이론을 배우려는 사람보다 실제 생활에서 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고 싶은 사람, 경찰 조사나 민·형사 사건이 막연히 두려운 사람,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 등으로 행정·심의 절차를 마주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습니다. 또한 법을 공부해본 사람에게도 교과서 속 법과 현실의 집행 사이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법은당신을지켜주지않는다 #이광웅 #JHPress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로의 역사
자크 아탈리 지음, 이주상 옮김 / 이니티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위로’라는 말을 들으면 대개 따뜻한 말이나 공감, 슬픔에 빠진 사람의 등을 두드려주는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자크 아탈리의 <위로의 역사>를 읽으며 위로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위로는 단순한 감정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죽음과 상실을 견디기 위해 문명 전체에 걸쳐 만들어온 하나의 장치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을 공부하면서 죽음이나 고통, 인간의 실존에 관한 여러 사상들을 접해왔지만, 그것들을 ‘위로’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연결해보는 경험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책은 인류 초기부터 고대 제국과 그리스·로마,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 중세와 르네상스, 계몽주의를 거쳐 현대사회까지 이어집니다. 시대마다 인간이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따라서 위로의 방법도 달라졌습니다. 종교가 강력했던 시대에는 부활과 영생, 낙원이 죽음 이후를 설명했습니다. 신앙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성과 과학, 진보가 그 자리를 차지했고, 현대에 와서는 의학과 정신분석뿐 아니라 보험, 장례 산업, 오락까지 위로의 영역으로 들어옵니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니 인간은 죽음 자체보다 ‘설명되지 않는 죽음’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없앨 수 없을 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고, 철학을 만들고, 예술을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기억하는 의례를 만듭니다. 어쩌면 문명의 상당 부분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재미있던 점은 위로가 반드시 선하고 순수한 행위만은 아니라는 아탈리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자신이 그런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을 ‘이기적 이타주의’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조금 냉정하게 들리지만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타인의 슬픔 앞에서 우리가 건네는 말에는 상대를 위한 마음뿐 아니라 그 고통을 어떻게든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싶은 자신의 욕구도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위로란 반드시 무언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으로 따져보면 타인의 고통은 결국 완전히 대신 경험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특히 죽음이나 돌이킬 수 없는 상실 앞에서 섣부른 긍정은 때로 위로가 아니라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책에 소개된 세네카가 슬픔이 격렬할 때는 너무 이른 위로가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고 말한 대목에도 공감했습니다. 때로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상대가 자신의 슬픔을 충분히 통과할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더 깊은 위로일 것입니다.


책의 후반부에서 아탈리가 제안하는 ‘예방적 위로’도 오래 남았습니다. 고통이 발생한 다음에 위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람들이 상실과 고독에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관계와 사회적 안전망을 미리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위로가 개인의 친절을 넘어 사회의 문제로 확장된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곁에 있어주는 일부터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을 조건을 만드는 것까지, 결국 가장 좋은 위로는 비극 이후에 건네는 아름다운 한마디보다 비극 이전부터 서로를 버리지 않는 구조인지도 모릅니다.


<위로의 역사>는 가볍게 마음을 달래주는 에세이를 기대하는 독자보다는 죽음, 고통, 종교, 철학과 문명의 관계를 조금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 싶은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특히 철학과 역사, 종교사에 관심이 있거나 ‘인간은 왜 위로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 번쯤 해본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습니다.


#위로의역사 #자크아탈리 #이니티오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헤르만 헤세의 인생 수업 메이트북스 클래식 31
헤르만 헤세 지음, 강현규 엮음, 이선미 옮김 / 메이트북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습니다. <데미안>을 시작으로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는 물론 비교적 덜 알려진 소설들까지 찾아 읽었습니다.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인생 수업>은 오래 읽어온 작가의 세계를 다시 정리해보는 책이었습니다.





고등학생 때의 저는 <데미안>에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에 가장 강하게 끌렸습니다.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는 당시에는 꽤 비장하게 느껴졌습니다. 세월이 지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문장이 단순히 반항이나 독립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의 결과까지 감당하겠다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싯다르타>도 예전과 지금 읽히는 방식이 다릅니다. 젊을 때는 구도자의 특별한 여정에 눈이 갔다면, 지금은 “지혜는 전수될 수 없다”는 생각이 더 오래 남습니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좋은 조언을 들어도 결국 자기 삶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헤세가 끊임없이 방랑과 체험을 이야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황야의 이리>는 헤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인간 안에는 하나의 일관된 자아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고상함과 속됨, 이성과 충동이 함께 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헤세의 여러 작품을 ‘자기 발견, 방랑, 자연, 관계, 고통, 예술, 자유’라는 주제로 다시 배열해놓으니 각각 다른 작품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사실 하나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었다는 점이 선명해졌습니다.





다만 헤세의 소설을 이미 대부분 읽은 독자에게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주는 책은 아닙니다. 작품의 복잡한 맥락이나 문학사적 의미를 깊게 파고드는 연구서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 속 사유를 잘게 꺼내 한 사람의 인생 철학처럼 연결해 읽도록 만든 책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기보다, 과거에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더 즐거웠습니다. 어떤 문장에서는 열여덟 살의 제가 생각났고, 어떤 문장에서는 지금이라면 전혀 다르게 읽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헤세가 끝까지 ‘완성된 인간’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인물들은 자주 흔들리고 떠나고 실패합니다. <크눌프>의 방랑도, <황야의 이리>의 분열도, <유리알 유희>의 선택도 결국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계속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움직임입니다. 그래서 헤세를 오래 읽었지만 그의 작품이 낡았다는 느낌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사람은 여전히 남과 비교하고, 관계에서 상처받고, 자신이 원하는 삶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인생 수업>은 헤세를 처음 읽는 분에게는 여러 작품으로 들어가는 친절한 지도이고, 저처럼 이미 그의 소설들을 오래 읽어온 독자에게는 흩어져 있던 기억을 한 번 정리해보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작가를 계속 읽어온 시간 자체가 조금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작품은 그대로인데 독자가 달라지면 문장도 달라집니다.


결국 제가 헤세를 오래 좋아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떻게 성공할지를 알려주는 작가가 아니라, 끝까지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살아내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를 묻는 작가였습니다. 헤세를 처음 읽어보고 싶은 분이라면 여러 작품의 핵심을 한눈에 훑어볼 수 있어 좋은 입문서가 될 것 같습니다. 반대로 저처럼 이미 헤세의 작품을 여러 권 읽은 독자에게도 흩어져 있던 문장과 주제를 다시 연결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요즘 삶의 방향, 관계, 고독, 방황 같은 문제를 자주 생각하는 분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헤르만헤세의인생수업 #메이트북스 #헤르만헤세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리꽃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문학의 독보적인 거장다운 소설!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에게도 추천하고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