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동의가 필요해 - 친구의 선을 존중하는 어린이를 위한 다정한 습관
김정 지음, 은돌이 그림 / 한빛에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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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카페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조카에게 선물할 책을 고르다가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동의가 필요해>를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조금 재미있었습니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데까지 동의가 필요하다고?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이 제목이 오히려 이 책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동의’라고 하면 상당히 심각하고 거창한 상황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동의는 친구의 물건을 빌릴 때, 장난을 칠 때,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의 몸에 손을 댈 때처럼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주기 전에 제가 먼저 읽어 보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꼼꼼한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좋았던 점은 어린이의 실제 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만화로 먼저 보여 준다는 점입니다. “내가 더 잘했어. 내가 할래.”라며 친구가 사용하던 물건을 가져가거나, 별생각 없이 친구의 몸을 만지고,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어른의 눈에는 작은 다툼처럼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친구 관계 전체가 걸린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상황을 두고 무조건 “그러면 안 돼”라고 훈계하지 않습니다. 대신 상대가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보고, “내가 대신 색칠해 줄까?”, “내가 도와줄까?”처럼 먼저 물어보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무엇보다 ‘좋은 마음으로 한 행동이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멈춰야 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해 줍니다.





저는 ‘모두 같은 마음은 아니에요’라는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아이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장난이 다른 아이에게는 정말 싫은 일이 될 수 있고, 친구가 별것 아닌 일로 운다고 해서 그 감정을 우습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이것은 어린이에게만 필요한 태도가 아닙니다. 어른들의 인간관계에서도 “그 정도 가지고 왜 그래?”, “난 장난이었는데?”라는 말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의도로 행동했느냐만이 아니라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까지 살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어린이 예절책보다 ‘타인의 경계를 알아차리는 법’을 가르치는 관계 교양서에 가깝습니다.





‘싫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허락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꼭 아이들이 배웠으면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람은 불편해도 바로 싫다고 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친구가 삐칠까 봐, 관계가 어색해질까 봐, 혹은 힘센 친구가 무서워서 마지못해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래서 동의란 단순히 “응”이라는 말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알려 줍니다. 한 번 허락했다고 해서 다음에도 자동으로 허락한 것이 아니며, 어제 괜찮았던 일이 오늘은 싫을 수도 있다는 설명 역시 중요했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바뀔 수 있고, 그 마음을 다시 표현해도 된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은 자기 몸과 마음을 지키는 데 상당히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조카에게 책을 건네주었을 때는 역시 설명글보다 만화부터 먼저 보기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아이답게 “이건 학교에서도 이런 애 있는데” 하면서 익숙한 상황에 먼저 반응했고, 중간중간 나오는 질문과 활동 페이지도 퀴즈처럼 재미있어했습니다. 특히 친구가 대답하지 않았을 때, 억지로 웃고 있을 때, “잘 모르겠어”라고 말할 때 이것을 동의라고 볼 수 있는지를 고르는 부분에서는 생각보다 한참 고민하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답을 먼저 설명하지 않아도 그림을 보면서 “근데 얘 표정이 싫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는 것을 보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려운 정의보다 상황을 직접 보고 판단해 보는 연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결국 동의는 ‘예의를 차리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하나의 독립된 사람으로 대하는 태도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친한 친구라고 해서 마음을 다 아는 것도 아니고, 가족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몸이나 물건을 건드려도 되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로 내가 싫을 때 싫다고 말하는 것 역시 이기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하이파이브를 할 때도 동의가 필요해>는 이런 내용을 무겁게 겁주지 않고, 아이들이 매일 겪는 교실과 친구 관계 속 이야기로 풀어냅니다. 감정 신호등 카드나 동의 상황 카드, ‘단호박 거절 릴레이’ 같은 활동도 있어 부모나 교사가 아이와 함께 이야기하기에도 좋습니다. 초등학교 중학년쯤부터 읽기 적당하고, 특히 친구 관계가 점점 복잡해지는 시기에 한 번쯤 읽어 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조카에게 주려고 샀다가 제가 더 오래 읽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돼”라고 가르치면서 정작 어른들은 사회생활이라는 이름으로 싫은 것도 웃으며 넘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고 내 경계도 지키는 일은 어린 시절 한 번 배우고 끝나는 예절이 아니라 평생 연습해야 하는 능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카에게는 친구 관계를 배우는 책이었고, 저에게는 ‘친하다는 이유로 어디까지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습니다.



#하이파이브를할때도동의가필요해 #김정 #한빛에듀 #체크카페 #체크카페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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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곤소곤 심리학 토크 - 밤마다 같은 고민을 하는 당신에게
황양밍 지음, 이영주 옮김 / 더페이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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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곤소곤 심리학 토크>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심리학이 꼭 거창한 이론일 필요는 없구나’였습니다. 저는 원래 사람의 감정이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간관계나 조직 속에서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생각해 보는 편입니다. 그래서 심리학 책을 읽을 때도 단순히 개념을 외우기보다 “그래서 이게 내 삶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는 편인데,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잘 건드립니다. 부정적인 감정, 인간관계, 직장 생활, 사랑, 자아 찾기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문제를 가지고 심리학을 설명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읽히고,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됩니다.





특히 직장 생활과 관련된 부분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일을 하면서 능력이나 업무 그 자체보다 사람 사이의 감정과 분위기, 암묵적인 규칙 때문에 더 피곤할 때가 많았습니다. 같은 말도 누가 어떤 표정과 태도로 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실제 문제보다 관계 속에서 생기는 긴장 때문에 에너지가 더 많이 소모되기도 합니다. 책에서도 둔감한 사람과 예민한 사람, 상사와의 관계, 직장 내 따돌림, 자기계발에 대한 압박 등을 다루는데, 그중에서도 ‘상대방의 평가를 지나치게 마음에 새기지 말라’는 내용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분명 신경 쓰이지만, 그 평가가 언제나 객관적인 진실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의 성격과 상황, 기대가 섞여 만들어진 반응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역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사실을 조금 늦게 배웠습니다. 예전에는 누군가 불편한 반응을 보이면 제가 잘못했나부터 생각했지만, 지금은 ‘저 사람의 반응과 나의 가치는 별개일 수 있다’고 한 번 더 생각하게 됩니다.





감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설명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힘든 감정이 생기면 끝까지 원인을 파고들고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무언가 마음에 걸리면 계속 분석하는 편인데, 그러다 보면 오히려 생각이 감정을 먹어 치우는 순간이 있습니다. 책에서는 감정이 가장 격할 때 바로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말고, 잠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거나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모든 감정을 지금 당장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의 온도가 내려가기를 기다리는 편이 더 현명할 때도 있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일수록 모든 것을 이해해야 마음이 놓인다고 여기기 쉬운데, 사실 어떤 감정은 이해보다 휴식이 먼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애와 사랑에 관한 부분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연애를 할 때 조건을 따지고, 상대가 좋은 사람인지, 미래가 있는 관계인지 끊임없이 판단하려 합니다. 물론 현실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감정을 지나치게 분석하다 보면 정작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어떤 느낌을 받는지를 놓칠 수 있다는 책의 설명에는 공감했습니다. 관계라는 것이 계산식처럼 완벽하게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저도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과 그 사람과 실제로 잘 맞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고, 반대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결국 사랑은 이성과 감정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두 가지를 함께 바라보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연애 이야기도 단순한 ‘연애 기술’이라기보다 자기 감정을 정확히 바라보는 연습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처음부터 인생의 목표를 하나로 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엇이 되고 싶은지, 어떤 길을 갈 것인지 빨리 정하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관심사가 변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한 경험이 새로운 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한 가지 길만 곧게 가야 한다는 생각보다 여러 경험이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금 당장 모든 답을 알고 있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관심사를 따라가 보는 것이 반드시 방황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소곤소곤 심리학 토크>는 이런 고민에 정답을 내려주는 책이라기보다, 내가 너무 단단하게 붙잡고 있던 생각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보다 ‘지금의 나를 조금 더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먼저일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을 때도, 직장에서 지칠 때도, 사랑 때문에 흔들릴 때도 우리는 자꾸 자신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문제를 없애는 것보다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편해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제목처럼 큰 목소리로 인생을 가르치기보다 옆에서 조용히 “그럴 수도 있어요”라고 이야기해 주는 느낌입니다. 복잡한 마음을 잠깐 내려놓고 내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싶을 때 펼쳐 보기 좋은, 꽤 쓸모 있는 심리학 책이었습니다.


#소곤소곤심리학토크 #황양밍 #더페이지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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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화이트맨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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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세련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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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화이트맨
모신 하미드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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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신하미드 #완벽한얼룩 #무너진경계 #사랑과상실 #라스트화이트맨 

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라스트 화이트맨>을 다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람의 피부색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단순한 설정 하나로 이렇게 많은 것을 흔들 수 있구나’였습니다. 주인공 앤더스는 어느 날 아침 눈을 뜬 뒤 자신의 피부가 짙은 갈색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몸도 기억도 그대로이고 어제의 자신과 달라진 것은 피부색뿐인데,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낯선 사람처럼 바라봅니다. 심지어 자신의 정체를 들킬까 두려워 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망설입니다. 이 장면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피부색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앤더스의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그대로인데 외형 하나가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 것일까요.




처음에는 앤더스에게 일어난 개인적인 사건처럼 보였던 변화가 점차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번져갑니다. 백인이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갈색 피부로 변하면서 마을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사람들은 사재기를 하고 무장하며 폭력까지 행사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실제로 사람들의 성격이나 과거가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알고 지냈던 이웃이고 가족이며 연인인데 피부색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서로를 낯선 존재처럼 바라봅니다. 결국 작품 속에서 무너지는 것은 사람 자체라기보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분류와 질서입니다. ‘백인’이라는 조건이 사라지자 그 조건에 붙어 있던 특권과 안정감, 소속감까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체성이 생각보다 개인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나는 나답게 살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 ‘나다움’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조건으로 만들어졌는지는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앤더스 역시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흉내 냅니다. 자신다워지려고 애쓸수록 오히려 자신에게서 멀어진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피부색은 작품이 선택한 가장 극단적이고 눈에 잘 보이는 장치일 뿐, 현실에서도 우리는 나이, 직업, 학력, 외모, 성별, 경제력처럼 수많은 조건으로 타인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런 조건을 오래 자신의 일부라고 믿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사라졌을 때 ‘그러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앤더스와 우나의 관계를 따라가는 과정도 좋았습니다. 우나는 피부색이 달라진 앤더스를 처음에는 낯설어하지만, 두 사람은 결국 서로의 표정과 눈빛을 다시 읽기 시작합니다. 이 소설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다 웃고, 마침내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는 이 부분이 작품 전체의 방향을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외형이 가장 중요한 것처럼 보였던 세계가 무너진 뒤에야 오히려 사람들은 눈빛이나 목소리, 행동처럼 이전에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앤더스가 어머니를 잃은 우나의 곁을 찾아가는 모습이나 달라진 아들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거대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결국 사람을 붙잡아주는 것은 거창한 이념보다 누군가의 곁에 남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라스트 화이트맨>은 인종과 백인 특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면서 동시에 껍데기가 사라진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인가를 묻는 작품으로 읽혔습니다. 특히 모든 백인이 사라져가는 상황을 거대한 설명이나 복잡한 세계관 없이 밀어붙인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설정은 비현실적인데 그 안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상실감은 이상할 만큼 현실적입니다. 익숙한 기준이 무너졌을 때 인간은 얼마나 쉽게 불안해지는지, 그리고 그 불안을 견딘 뒤에는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책을 덮고 나니 결국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조건들을 하나씩 지워도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무엇일까. 직업도, 외모도, 사회가 붙여준 이름도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가 나를 알아볼 수 있을지 생각하게 만든 꽤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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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 - 시니어를 위한 하루 10분 마음정리 예쁜글씨 교정! 나는 쓴다
한용운 지음 / 비타민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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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무료로 협찬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는 처음 펼쳤을 때부터 ‘쓰기 편하게 만든 책’이라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무엇보다 글자가 크고 여백이 넉넉해서 시를 읽을 때 눈이 편합니다. 한쪽에는 한용운의 시가 크게 실려 있고, 맞은편에는 직접 따라 쓸 수 있도록 줄이 마련되어 있어 필사의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사진으로 첨부한 것처럼 <인과율>, <진주>, <사랑의 존재>와 같은 한 편의 시를 먼저 천천히 읽고 바로 옆 페이지에 자신의 손글씨로 옮겨 적을 수 있습니다. 사철 제본이라 책이 잘 펼쳐지는 것도 필사책으로서는 꽤 큰 장점입니다. 필사는 멋진 문장을 수집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책을 자꾸 누르며 씨름해야 하면 금세 귀찮아지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사소한 불편을 많이 줄였습니다.







제가 필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글씨 연습을 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책을 읽을 때는 문장을 눈으로 빠르게 지나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직접 손으로 쓰면 한 문장을 오래 붙잡게 됩니다. 단어의 순서와 문장의 리듬까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표현도 새롭게 보입니다. 특히 시는 짧은 문장 안에 의미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필사와 잘 어울립니다. 예를 들어서 <인과율>의 “참 맹세를 깨치고 가는 이별은 옛 맹세로 돌아올 줄을 압니다” 같은 구절도 그냥 읽었을 때와 한 글자씩 손으로 적을 때의 감각이 다릅니다. 글을 쓰는 동안 속도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그 느림 속에서 시의 의미를 제 방식대로 생각하게 됩니다. 요즘처럼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통해 글을 빠르게 소비하는 생활에서는 이런 시간이 오히려 작은 휴식처럼 느껴집니다.







한용운의 시가 필사에 특히 잘 어울린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입니다. 목차가 ‘임을 향한 노래’, ‘그리움’, ‘불꽃’, ‘보내는 마음’으로 나뉘어 있는데, 전체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이별, 그리움과 자유가 계속 서로 맞물립니다. 한용운의 시에서 ‘님’은 단순한 연인 한 사람으로만 읽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존재이면서 잃어버린 자유일 수도 있고, 이상이나 생명, 민족처럼 더 큰 대상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님의 침묵>, <이별은 미의 창조>, <나룻배와 행인>처럼 익숙한 작품도 나이가 들고 삶의 경험이 쌓인 뒤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인 <사랑의 존재>에서도 사랑은 단순히 달콤한 감정이 아니라 눈물과 상처, 기다림을 통과하며 존재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한용운 특유의 역설적인 표현 때문에 한 문장을 적고 나서 한참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많았습니다. ‘만남을 위해 이별을 노래하는 시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시니어분들에게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선 큰 글씨라 시력이 예전 같지 않은 분들도 비교적 편안하게 읽을 수 있고, 한 편의 분량도 길지 않아 하루 10분 정도만 시간을 내어도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필사는 손을 움직이고 문장을 읽고 의미를 생각하는 일을 동시에 하게 합니다. 꼭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하루 한 편씩 시를 읽고 몇 줄을 적으면서 오늘 마음에 남은 문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습니다. 글씨를 단정하게 쓰는 연습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시간이 생깁니다. 특히 한용운의 시에는 젊은 시절의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실을 견디고 기다리는 마음, 떠난 것을 보내면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태도가 담겨 있어서 삶의 시간이 쌓인 독자일수록 더 깊게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용운 시 필사 나는 쓴다>의 가장 좋은 점은 필사를 거창한 자기계발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글씨를 완벽하게 써야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작품을 순서대로 끝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시를 펼쳐 한 줄씩 써도 충분합니다. 저 역시 직접 몇 편을 써보면서 필사는 결국 ‘잘 쓰는 일’보다 ‘천천히 읽는 일’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으로만 읽었다면 금세 지나갔을 문장이 손끝을 거치면서 제 생각과 기억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사랑과 이별, 자유와 희망을 오래 생각해온 한용운의 시를 큰 글씨로 편안하게 읽고, 자신의 손글씨로 다시 남길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좋은 필사책입니다. 하루가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 잠시 속도를 늦추고 한 줄의 시를 내 손으로 적어보고 싶은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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