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에서 발견한 물리학의 쓸모 - 당연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물리학의 질문
후위에하이 지음, 이지수 옮김, 천년수 감수 / 미디어숲 / 2026년 6월
평점 :


우리는 매일 아침 빵을 먹고, 겨울이면 창가에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합니다. 인문학을 전공한 저에게 이러한 일상은 대체로 인간의 감정이나 사회적 맥락, 혹은 문학적으로 해석되는 대상이었습니다. ‘당연함’이라고만 생각해온 현상들을 의심해 본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위에하이 작가님의 <일상에서 발견한 물리학의 쓸모>를 펼친 순간, 제가 완벽하게 알고 있다고 믿었던 세계의 균열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매만지는 단단한 물질의 속이 사실은 99.99%의 텅 빈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익숙했던 일상은 일제히 낯설고 신비로운 탐구의 대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 책의 저자인 후위에하이 작가님은 핵물리학 연구에 종사하며 탄탄한 과학적 배경지식을 다진 인물로, 복잡한 이론을 한 편의 서사처럼 명쾌하게 풀어내는 탁월한 스토리텔러입니다. 여기에 원서의 문화적 맥락을 우리말로 매끄럽게 살려낸 이지수 번역가님과, 현직 물리 교사로서 "물리는 상식이다"라는 모토 아래 대중의 눈높이를 맞춘 천년수 선생님의 감수가 더해져 교양 과학서로서의 완성도를 한층 높였습니다. 저자님은 뉴턴과 아인슈타인, 슈뢰딩거를 비롯한 12명의 위대한 거장들을 한자리에 불러내어 고전 역학부터 양자역학, 더 나아가 현대의 끈 이론에 이르는 200년의 물리학 연대기를 이공계 대학생 톰슨과 소피아의 지적인 대화를 통해 친근하게 복원해 냅니다.

텍스트의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읽어내고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인문학과 물리학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그동안 저에게 물리학은 복잡한 수식과 기호로 가득 찬 차가운 장벽과 같았지만, 이 책은 300년 동안 이어진 ‘입자와 파동의 논쟁’을 단순한 물리 법칙의 나열이 아닌, 세계를 해석하는 철학적 관점의 충돌로 바라보게 해 주었습니다. 훅과 뉴턴이 빛의 본질을 두고 벌인 치열한 대립은 흡사 문학비평에서 하나의 텍스트를 두고 구조주의와 해체주의가 맞부딪히는 지적인 전장(戰場)을 연상케 했습니다.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슈뢰딩거의 고양이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역시, 논리적 연속성이 단절된 공간을 이해하려는 인간 사유의 한계와 도전이라는 맥락으로 다가와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특히 책 속에서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흥미로운 대목은 우주의 정교한 질서 뒤에 숨은 ‘다행스러운 우연들’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작가님은 지구의 위성이 달 하나뿐인 것, 태양의 질량이 압도적으로 커서 행성들을 안정적으로 붙잡아 두는 것, 은하계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이 있어 혼란을 막아주는 상황을 "다행스럽다"고 표현합니다. 이는 천체물리학에서 말하는 ‘인류학적 원리(Anthropic Principle)’, 즉 우주가 인간이라는 관찰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정밀하게 조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역설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카오스(Chaos)와 같은 거대한 혼돈의 가능성 속에서 절묘한 균형을 유지하며 코스모스(Cosmos)의 교향곡을 연주해 내는 우주의 이면을 보며, 경외감과 동시에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기적적인지 새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물리학의 경이로움은 비단 저만의 감동에 그치지 않고, 저희 집 사춘기 중학생 아이들에게도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막 과학 교과서에서 원소 기호와 역학을 배우기 시작한 중학교 3학년 큰아이는 학교에서 주입식으로 외우던 '원자 모형'이 실은 텅 빈 공간이라는 대목을 읽고는, "엄마, 그럼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방바닥도 사실은 다 비어 있는 거야?"라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수학이라면 질색을 하던 중학교 1학년 작은아이 역시 창가의 눈송이와 회오리바람 속에 숨겨진 프랙털 구조 이야기를 보며, 대자연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거대한 미술관 같다며 흥미로워하더군요. 수식과 문제풀이에 가려져 자칫 지루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과학을, 아이들이 매일 마주하는 아침 식탁과 날씨 속에서 스스로 발견하고 대화의 소재로 삼는 모습은 이 책이 지닌 가장 실용적인 '쓸모'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 책은 과학적 지식이 전무하여 물리학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문과 성향의 독자들, 특히 인간과 사회를 넘어 자연이 작동하는 근본적인 질서에 갈증을 느껴온 인문학도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 될 것입니다. 빵 한 조각에서 원자의 행성 모형을 유추하고, 해안선과 눈송이에서 자연의 자기 복제(프랙털)를 읽어내는 여정은 메말랐던 지적 호기심을 세포 단위까지 깨워줍니다. 수식의 감옥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자신이 발을 디디고 서 있는 시공간을 전혀 다른 시선으로 재정의하고 싶은 모든 교양인들에게 이 지적인 여정을 기쁜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일상에서발견한물리학의쓸모 #미디어숲 #후위에하이 #리뷰의숲 #리뷰의숲서평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