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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
전범선 지음 / 포르체 / 2021년 11월
평점 :
동네 도서관에서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은 환경 보호가 주된 토픽이긴 하지만, 구태여 기후 위기나 과학, 정치와 관련된 서적을 선정하진 않고 있단 점이 제법 재미있다. 주로 후보를 고르고 의견을 내는 분의 입김도 있겠으나, 모임원들도 딱히 불만을 갖지 않고 동조하여 되려 책이 주는 교훈에 매번 감탄하고 있으니, 그들에 비해 과격하고 어린 마음을 품고 있는 나는 그간 해소되지 않는 가려움증에 시달렸다. 따뜻하고 이상적인 공동체나 삶의 방향을 배우는 과정이 싫단 소리가 아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구성원이 3주에 한 번씩 모여 2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경청하는 경험은 쉽게 겪을 수 없는 감사함이고, 매번 충만한 마음과 다정함으로 가득 차서 귀가하는 것 또한 무척이나 소중하다. 그렇지만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만나서 탁상공론처럼 느껴지는 좋은 얘기만 주고받기엔 현실은 가혹하다. 그 사실을 깊이 깨달을 때마다 나는 분노한다. 각종 재난, 소통의 부재, 혐오에서 비롯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세상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돌아간다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결코 찾아오지 못할 거라고 비관한다.
그렇기에 『앞으로 올 사랑』, 『나무를 심은 사람』, 『오래된 미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거쳐 자유 도서를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였던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몰랐다. ‘말 못하는 생명들을 위해 발언한 책’이 주제였기에 비거니즘에 힘쓰는 전범선의 글이 좋을 듯 성싶었다. 아직 회사에 재직 중일 때 사내 북카페에서 발견하고 얼핏 훑어봤을 때 마음을 관통하는 문장이 있었던 터였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서 평화를 꿈꾸고 채식을 하는 게 아니다.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p. 61
비건 지향인으로 살다 보면 레퍼토리 같은 질문이라든가 특이하단 시선을 받기 일쑤다. 해명할 거리를 마련해 놓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고, 때론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한 농담 장착이 필요할 때도 있다. 자칫 심각한 표정으로 신념을 읊어버리는 ‘실수’를 저지르기라도 하면 토론의 장이 열리기보다는 싸움에 대한 선제 공격이 되어버리는 곳이 대한민국 사회의 현 시점이기 때문이다. 아직 그럴 뿐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발전할 거라고 믿고 싶지만, 언제까지고 기다릴 순 없다. 그럼 가장 쉬운 방법은 나의 시각부터 바꾸는 것이다.
『하필 책이 좋아서』에서 신연선도 말했다.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하는 거라고. 이 같은 문장들에 내가 비로소 꿈꾸고 원하는 미래가 담겨 있다. 아니, 다가올 시점이 아닌 이미 보유한 것에 대한 선언이다.
내가 속한 세계에서는 민의 문제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이 그 세계의 특별함을 증명했다. - P11
페미니즘이 남성중심 사회를 해체하여 성 평등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면 비거니즘은 인간중심 사회를 해체하여 종 평등 사회를 이루고자 한다. - P14
그러나 나에게는 고작 자존심의 문제인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평등, 나아가 안전과 생명의 문제였다. - P33
살림을 여성의 몫으로 할당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의 몫은 무엇인가? ‘살림‘의 반대인 ‘죽임‘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그리고 육식주의는 똑같은 죽임의 메커니즘으로 유지된다. - P34
오늘날처럼 인간이 육식을 많이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지만, 고기, 생선, 계란, 우유를 아예 안 먹는 완전채식주의자, 비건으로 사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나는 자연인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살고 싶어서 평화를 꿈꾸고 채식을 하는 게 아니다. 이성적이고 성숙하게 살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 P61
인간은 사이보그가 되어 무한한 잠재력을 얻었지만 여전히 동물로서의 한계를 지닌다. 사바나에서 수렵-채집하며 형성한 유전적 특질을 가지고 사이버 세계를 살아간다. (…) 사이보그 전범선은 수천 명과 교류할 수 있지만 영장류 전범선은 백여 명도 버겁다. - P81
오천만 국민이 모두 비건이 되는 날을 상상하기 힘들다. 불가능한 과업 같아서 좌절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혁은 인구의 2~3.5%가 바뀔 때 발생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처럼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충분한 대중의 숫자를 ‘크리티컬 매스‘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의 크리티컬 매스는 100만 명에서 175만 명이다. 1919년 삼일운동, 1987년 6월 민주항쟁, 2016년 촛불행동 때 확인했다. 비건 100만 명이 생기면, 대한민국은 본질적으로 바뀔 것이다. (…) 영국, 독일 등에서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비건이 급증하면서 전체 인구의 1%를 넘어섰다. 한국도 할 수 있다. 뭐든지 늦게 시작해서 그렇지 한국은 일단 바뀌기 시작하면 빨리 바뀐다. - P124
왜 이름 명을 사람 셀 때만 쓰는가? 사전상 마리는 ‘짐승, 물고기, 벌레 따위를 세는 단위‘다. 이름 있는 동물도 많은데 사람만 명이라고 세는 건 종차별이다. - P165
인간은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지만 동물을 먹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먹는 것은 끔찍하다. 여기서 인지 부조화가 발생한다. 그 부조화를 해소하기 위해 인간은 둘을 언어적으로 구분한다. 살아있는 동물은 소, 돼지, 닭, 개라고 부르지만 죽은 동물은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개고기가 된다. - P165
"다윈 이후, 과학자들은 생물학적으로 이야기할 떄 인간과 기타 동물 사이에 마법 같은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합의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도덕적으로 거의 완전한 구분을 지을까? 모든 생물이 하나의 물리적 연속선상에 있다면, 우리는 같은 도덕적 연속선상에 있어야 한다." - P173
나의 비거니즘은 ‘~을 먹는 것이 좋다‘가 아닌 ‘~을 먹지 말아야 한다‘였다. - P183
나는 채식은 오래 했지만 요가, 명상, 자연식물식, 소식은 모두 초짜다. 윤리와 철학을 떠들기에 급급하여 개인적 수행을 게을리했다. 아무리 비건이어도 평생 콩고기와 비건 라면, 비건 버거만 먹고 산다면 무언가 아쉽다. 아름답지 못하다. 육체와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최선이 아니다. 대체육은 말 그대로 육식을 잠시 대체하는 용도일 뿐이다. 금연초 같은 도구다. 궁극적인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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