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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평점 :
최재천 교수는 말했다. ‘알면 사랑한다’고.
돌이켜보면 여지껏 내가 쌓아올린 장르 불문의 취향은 경험이 쌓여서라기보단, 발견의 기쁨이 단초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서관에서 지나가듯 훔쳐읽은 책, 누군가 알려준 영화, 어쩌다 듣게 된 노래, 용기내어 맛 본 음식, 나눠받은 시향지 같은 것들. ‘나 그거 좋아해’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랑의 모든 시작은 그 존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필 책이 좋아서』가 독서 모임 책으로 정해지고 나서 발제를 준비하며 필연적으로 따라온 첫번째 질문은 “가장 먼저 책을 만난 순간을 떠올려봅시다”였다. 하필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 어떻게 이 디지털 미디어가 범람하는 21세기에 (종이)책을 매개로 이 자리에 모여 함께 있을 수 있는지 그 근원을 파헤치다 보면 추억에 잠길 수도, 보다 궁극적인 우리의 목표를 깨칠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기억이 워낙 강렬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가, 다른 친구들은 어떠한 첫만남이 있었는지, 그때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개인적으로 궁금했을 뿐이었는데, 다들 두 눈으로 허공을 짚으며 그맘때를 추억하는 표정을 지어 기뻤다. 예상대로 쉽게 공유하진 않는 유년 시절의 조각들을 서로 더듬어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다음 발제문은 4월을 지나오며 각종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진행한 이벤트들을 지켜보며 착안했다. 그 중 대부분이 나의 서재를 자랑하는 류의 것이었기에, “각자의 책장에서 빛나는 3권을 골라보자”는 질문을 어렵지 않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인생작을 꼽는 일은 항상 어렵단 걸 충분히 헤아렸기에, 반대로 “모종의 이유로 구매를 망설이고 있지만 언젠가 꼭 읽을 책도 좋습니다.”라는 제안을 달기도 했다.
세번째는 마침 독서 모임 일정이 서울국제도서전 개최일과 맞물려있어서, 매년 선정되고 있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추이를 살피며 “표지의 디자인이나 질감, 내지의 종류, 선호하는 작가나 장르 등 내용과 관계없이 구매한 책이 있는지 돌이켜봅니다”라는 발제를 꼽았다. 여기서도 “반대로 너무 끔찍해서 돌아선 책이 있는지”란 대체문까지 추가해뒀다. 『하필 책이 좋아서』에서는 북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도 굵직하게 들어있으므로 함께 얘기해보면 좋을 주제 같았다. 소장하는 것과, 즐겁고 재밌게 읽은 책에는 필시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나는 잘 몰랐던 웹소설 분야가 화두에 떠오르자 흥분해서 필리버스터하는 친구들이 웃겼다. 호기심이 동했다.
마지막으로는 아주아주 이기적인 욕심으로 최근 진행 중인 정 모 작가의 논란에 대해서도 얘기나눠보면 좋음직하여 판매 부진으로 인한 절판, 논란에 따른 중쇄 중지와 회수, 파본으로 인한 교환·환불의 반복을 언급하며 “우리가 책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발판이 마련되어야 할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출판계와 전혀 상관 없는 업계에 종사하고 있고, 그저 한 명의 독자로서 출판계에 바라는 것을 외쳐도 될까 싶어 다들 조심스러워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문제들이 더 많을 것이란 걸 마음 깊이 통감하지만, 비록 쉽게 말을 얹기엔 어려운 주제일지라도 꾸준한 관찰과 관심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단 걸 잊고 싶지 않았다. 책이란 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 사라지면 안 된다. 나부터가 독서 모임을 몇 년 동안 지속하며 독서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단 걸 깨쳤다. 그러니 부디 『하필 책이 좋아서』가 아닌, ‘역시 책이 좋아서’라는 책이 등장하길.
분석이라기보다는 빠른 미디어의 시대에 가장 느린 미디어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 표면에 천천히 떠오른 질문들을 모은 것에 가까울 것이다. - P7
한 권의 책이 발간되면 보통 150권에서 300권 안팎의 증정본이 발송되는 것으로 아는데 포장재 생산과 물류에 드는 자원을 셈하면 까마득하다. - P19
소유보다는 경험에 집중하는 시대가 왔고, 책도 스트리밍의 방향으로 더 움직이게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직접 생산자들이 지속가능하지 않은 저렴한 금액으로 콘텐츠를 넘겨야 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 P49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다 보면 나에게 뭔가를 물었을 때 상대를 만족시키고 기억에도 남을 만한 멋진 대답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른바 멋진 대답(…)은 고도로 추상화된 것일 떄가 많다. 실제 작업 생활과 일견 즉각적으로 연결하기 힘들어 보이는 이러한 개념적인 것들을 적절하게 실무에 접목하고 이를 언제 어디서 질문 받든 말로 꺼낼 수 있게 하려면 평소에 이런 생각을 많이 해두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묵상이 일상화된 종교인이나 오랫동안 일한 대가들이 이런 식의 문답을 매끄럽게 잘하는 것 같다. - P92
뭔가 달라 보이는 느낌,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이상함. 어쩌다 눈에 띈 작은 차이는 ‘그것’을 그것 아닌 모든 것들로부터 떠내어 흐릿하던 세상을 대상과 배경으로 선명하게 구분하여 인식하게 만든다. 취향과 사랑 같은 편향적인 감정은 그렇게 차이가 벌린 틈에서 자라나기 시작한다. - P109
껍질은 본질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상징해야 하며 기꺼이 돈을 지불하고 싶을 만큼 아름다워야 한다. 언뜻 보기에 당연하고 별문제 없어 보이는 이러한 생각은 실제로 책을 만드는 현장 속에 들어오는 순간 중립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수직적 위계의 형태로 나타난다. - P145
조용한 조직, 한 가지 목소리만 크게 들리는 사회는 위험하다. - P151
전문가가 할 일은 비전문가 입장을 의태하여 판단의 책임을 더는 게 아니라 필요하다면 자신이 아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라도 관점을 정립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것이다. 디자인이 생산된 맥락을 잘 아는 것과 심사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별개의 문제다. 일반 독자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차라리 온라인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 P157
한국 사회에서 어떤 관행에 대한 집단적 반성이 일어나는 것은 극히 불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이다. - P168
나의 친절은 나를 낮춰야 하기 때문에 소비되는 행위가 아니라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기 때문에 발현되는 행위, 타인과 평등하게 만나기 때문에 발휘되는 결과였다. - P187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 P190
출판계 동료들과는 페미니즘, 비거니즘, 노동권과 환경 문제 등의 주제를 기본적인 공감대 아래에서 편하게 의견 나눌 수 있다. - P207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늘 좋아하는데 나로 말하자면 책이 가져다준 다양한 세계 덕분에 사랑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고 믿는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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