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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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식물을 좋아한다. 거실 한편과 베란다는 물론, 가게 앞까지 모두 엄마의 정원이다. 길을 걷다가도 예쁜 꽃이 보이면 한참을 들여다보며 이름은 뭔지, 언제 개화하는지를 탐구한다. 금목서를 좋아해서 싱가폴의 찻집 ‘티챕터’를 방문했을 때 우연히 추천받은 ‘임페리얼 골든 카시아’가 오스만투스 향이란 걸 깨닫고는 무척 기뻐했다. 알맞은 계절이 되면 튤립을 심고, 백합을 심고, 양귀비를 심는다. 지나가던 불청객이 몇 송이를 파내어 훔쳐가도 개의치 않는다. 얼마나 예뻤으면 그랬겠니. 내가 잘 키웠나봐. 그런 낙관적인 마음으로 경찰에 신고하라며 아우성인 딸의 말을 흘려듣는다.

어렸을 적엔 이러한 엄마가 달갑지 않았다. 가야 할 길이 있는데 왜 자꾸 멈춰서서 시간을 배로 쓰는거지? 이름을 알아서 어쨌단거야? 뿌리와 잎이 마를까봐 여행도 마음 편히 못 간다고? 당신 자식은 말 못하는 그 녹색의 생명체가 아니라,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는 나입니다. 철 없이 삐뚤어진 태도로 한참을 두리번거리는 엄마의 뒤에서 휴대폰이나 두드리며 기다렸다.

물론 학교에서는 접시꽃과 무궁화의 차이를 알려주지 않았고, 벚꽃보다 매화가 먼저 핀단 사실을 알아챌 틈 또한 주지 않았다. 갈대는 물가에, 억새는 산과 들에 산다는 건 그런 것들이 종종 눈에 띌 때마다 맞춰보라며 퀴즈를 내는 엄마에게 배웠다. 식물은 가져온 그대로 담아둘 게 아니라 성장 속도에 맞춰 분갈이를 해 줘야 한다는 것, 물을 주는 횟수와 주기는 정해진 게 아니라 키우는 환경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대한민국 인구의 거의 대부분이 도시에 몰리는 중이며 그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된 상태로 태어난 아이들에게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제 정말로 교육의 길이 반드시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자연이 얼마나 줄 수 있는 지를 아는 사람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지만…… 그러길 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국내외 생태 전문가들의 지식을 모아 담론을 제시해 온 잡지 <녹색평론>의 창간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지금부터 이십 년이나 삼십 년쯤 후에 이 세상에 살아남아 있기를 바라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곧이어 이런 질문도 나온다.


그렇게 살아 남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맑은 공기도, 푸른 하늘도, 숲도, 강물도 없는 세상에서 사람은 살고 싶은 욕망을 느낄 수 있는가?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서부 히말라야 고원의 작은 지역 라다크가 빈약한 자원과 혹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생태적 지혜를 통해 천 년 넘게 평화롭고 건강한 마을을 유지해왔으나, 서구식 개발 속에서 환경이 파괴되고 사회적으로 분열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내는 사람’으로 칭하는 것이 최고의 모욕일 정도로 이상적인 공동체의 모습을 그리는 1부를 지나 이곳에 가난이란 없다더니 채 10년도 지나지 않아 제발 도와달라고 외치는 라다크 사람들의 얘기가 주된 2부에 도달하면, 시대의 흐름, 세대 변화, 환경적 요인 등으로 불가피한 변화였다고는 해도 궁극적으로 전통을 고수하고 지켜야 한다는 믿음이 과연 좋은 것인가 혹은 나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따라온다. “전통 농경사회가 아무리 매력있게 보이더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대화된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에서 배제(12면)”되어서는 안 되기도, 핵-개인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 즉 연대감을 강화시키고 경쟁의식을 완화하는 동시에 이익에 편향되지 않는 토대가 마련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내가 대학 진학을 위해 상경한 초기에, 지방에서 올라온 제법 많은 학생들이 본인의 사투리를 숨기거나 고치려고 애쓰며 어설픈 표준어를 구사하던 모습을 더러 발견하곤 했다. 개인에 내재되어 있는 고유성과 정체성을 부인하는 행태는 면접 같은 중요하고 공적인 자리에서, 남성보다 여성에게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들은 대게 자신의 것을 ‘옛’ 것으로 치부하고 감추려 했다. 어쩌면 멋도 모르는 새에 성인이 되어 한 나라의 수도에 온 그들의 의도는, 라다크의 젊은이들이 서구의 문화를 따라하고 우상화 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주혜진의 『대전은 왜 노잼 도시가 되었나』에서는 “원본, 기준과 다른 특별함은 개성인 동시에 유머의 소재이거나 결핍으로서 안쓰러운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숨길 수 없는 식성과 사투리 억양은 유머의 소재가 된다(25면)”고 했다. ‘표준’, ‘정상’, ‘보통’의 것과 다른 것을 신기해하고 놀리는 문화는 소수자가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행하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이는 사실 독특한 것을 이상한 것, 혹은 도태된 것으로 치부해야 할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해야 할 일이지만, 미디어에서 그려내는 마케팅 수단과 전략이 무방비한 이들에게 취약한 욕구로 이어지지 않기 위한 장치와 도움은 아직 마련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보면 분명 아주 오래된 때에 우리의 출발점은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경심(291면)”이었다. 하느님 가라사대 태초에 지구를 만드노니, 허락한 진화와 혁명에 감사하며 싸우지 마! 혐오 멈춰! 사랑만 해! 같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필연적 결과물이 다양성의 복원(같은 면)”이 될 수 있도록 힘쓰기 위한 해결책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

『오래된 미래』의 3부에서는 그 방법으로 사회적 측면인 ‘구성원들의 행복’과 환경적 측면의 ‘유지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기준이 있다면 “수세기 동안 영위해 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257면)”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관습화된 개발의 방향을 답습하여 고유의 것들을 해체해 버리기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들을 건설해야(같은 면)” 한다.

모두를 위한 존중, 다름의 포용과 수용,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의 보존은 건강한 사회로 향하기 위한 수단이자 목표가 될 수 있다. 이때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 사이의 친밀한 연관관계와 서로 돕는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주어야 하는 것이며 개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정서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176면)”.

이웃과의 불화나 무차별 범죄, 끊이지 않는 인재, 맹렬한 자연 파괴를 통한 수익 자본 창출 따위의 것들이 막을 수 있었다는 후회만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소외되는 이 없이 그저 다들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에게 『오래된 미래』는 ‘행복’이란 보상을 걸며 삶이 나보다 크다는 인식을 연습해보자는 미션을 준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지역의 상호보완성을 글로벌 시장경제가 대신하고 웨일즈의 시골길을 고속화 도로가 대신하고 독일의 구멍가게를 대형 마트가 대신(277면)”하는 세계에서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경애심,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천부적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느리더라도 중요한 변혁이 발생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이 일말의 것이라고 하더라도.

라다크 사람들이 “자신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174면)”하는 것은 “자신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같은 면)”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허튼 역사가 아니며, 헛된 희망도 아니다. 인간의 본질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죽.

전 세계를 통틀어 심리학에서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농경 현장에서 가정의 주방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이 자라나고 있다. 인간중심의 삶과 여성 존중과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그 수효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는 흔히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라다크 사회가 증명해 보인 것처럼 그것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다. 실제 그것들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인지하고 우리와 우리의 이웃 그리고 우리와 자연 사이의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인식하게 하는 숭고한 가치들의 재발견을 의미한다. p. 337


전통 농경사회가 아무리 매력있게 보이더라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현대화된 개발의 혜택을 누릴 기회에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 P12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자연친화를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민간 주도 운동의 영향력, 즉 ‘아래로부터의 영향력’이 인간주의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그 다른 한편에서 글로벌 경제성장의 엔진을 가속시키고 있는 ‘위로부터의 영향력’은 수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 P15

노동 운동가들은 환경 운동가들과 손을 잡았고, 교직자들은 성직자와, 과학자들은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굳은 결속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 P32

서양 사람들은 또 기술적 변화나 진보를 날씨가 변화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한다. - P43

왜 이 사람들은 언제나 웃고 있는 걸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들에게 그토록 적대적이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걸까? - P59

우리가 어떤 물건에 대해 완전히 낡아버렸고 사용가치도 다 소진되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도, 라다크 사람들은 분명히 그것을 다시 사용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 P75

동물을 죽이는 것을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리며 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난 다음에야 동물을 죽이는 이들이 이곳 사람들이다. - P85

말을 백 마리나 가진 사람도 채찍 하나가 없어 남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 — 라다크 속담 - P109

"그분한테 먼저 이야기하세요. 우리는 함께 살아야 하잖아요." - P110

"꼭 그럴 필요 있나요? 우리는 모두 함께 사는 거잖아요." - P111

작은 규모일수록 보다 인간적인 형태의 사회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큰 규모의 공동체에서는 일상적으로 나타나는 갈등 요인들을 방지할 수도 있다. - P118

경쟁이 아닌 상호협조를 통해 경제의 모습을 만들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상호발전과 통합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 P120

"(…) 라다크에는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지만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라는 말이 있어요." - P153

우리는 무지함 — 감각과 선입관에 의존하는 세상의 경험 — 으로 인해 사물이 분리되어 존재하는 일상세계 너머의 영속성을 보지 못한다. - P157

불교의 가르침은 우리에게 세계의 실체를 부인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시각을 바꾸라는 것이다. - P157

"무지함이 있는 곳에는 ‘의식儀式’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수준의 영적 단계에 오르고 나면 버려도 되는 사다리와 같은 것입니다." - P167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대신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정말 축복받은 듯한 느낌을 준다. 168 - P168

생활의 많은 부분을 불안함과 두려움으로 색칠을 하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집착을 버린다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 대해 일체감을 느낀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 P173

그 중년 남자는 너무나 여유롭고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어서 굳이 자신의 존재나 자존심 같은 것을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었다. - P174

그러나 그 가장 중요한 요인은 라다크 사람들은 자신이 자기 자신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무엇인가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고, 또 자신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환경과 분리될 수 없는 연결 속에 존재한다고 믿는다는 점이다. - P174

건강한 사회란 구성원 사이의 친밀한 연관관계와 서로 돕는 분위기를 더욱 북돋아주어야 하는 것이며 개개인에게 무조건적으로 정서적인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말한다. - P176

그러나 결국 그들이 보여주는 기쁨의 모습과 마음의 평화는 적어도 외부 환경에 의해 좌우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특성들은 그들 내부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P178

만일 당신이 긴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 비가 쏟아진다 해도 굳이 참담한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당신이 그런 것을 좋아하지는 않겠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그런 경우 ‘굳이 불행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지요’라는 반응을 보이리라는 것은 알아둘 필요가 있다. - P179

그것은 마치 발달된 기술이 사람들이 할 일을 대신해준다는 식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산업화 사회에서 사람들은 실제 농경사회에 속한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시간 일을 한다. - P188

이곳에 가난이라는 건 없어요. — 체왕 팔조르, 1975년 /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 가난해요. — 체왕 팔조르, 1983년 - P196

변해가는 라다크 사람들이 내게 가르쳐준 가장 놀랄 만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현대세계의 생활도구와 기계들이 그 자체로는 시간을 절약하게 해주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새로운 생활은 전체적으로 시간을 빼앗아버리는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 P206

라마승에서 엔지니어 세계관으로의 변화는 모든 생명체 사이의 자비로운 관계를 부흥하는 윤리적 가치관에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한 가치중립의 ‘객관성’으로의 이전을 의미한다. - P210

교과서는 지구촌 전체에 적용되는 정보들을 전파한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생태계와 문화권의 상황이 제거된 채 한 종류의 지식만이 전 세계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서 학생들이 배우게 되는 내용은 본질적으로 실제적인 생활의 맥락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 P214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줄수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태도가 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 P230

현재의 개발 모델은 무서운 기세로 중앙집중화를 지향하고 있다. 다양한 인종 집단을 자신들의 지역에서 끌어내 도시 지역으로 이동시켰으며 의사결정권과 정치권력을 소수의 손에 쥐어주었다. 취업의 기회 역시 한정되어 있어 공동체의 연대감은 파손되었으며 구성원 간의 경쟁의식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생존경쟁의 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나 인종 집단 사이의 이질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과장되고 왜곡된다. 또한 권력을 가진 집단은 필연적으로 자기 집단의 이익에 편향되기 마련이고 나머지 집단은 차별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 P241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더 중요한 것인가를 생각해본다면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구성원들의 행복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하고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유지가능성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 - P251

그렇지만 나는 개발이라는 것이 꼭 파괴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라다크 사람들이 수세기 동안 영위해 온 사회적, 생태학적 균형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삶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위해 그들은 관습화된 개발의 방향을 답습하여 고유의 것들을 해체해 버리기보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들을 건설해야 할 것이다. - P257

자급경제체제를 유지하는 오지의 나라이건 산업화 세계의 심장부이건 GNP를 사회복지의 주요 지표로 활용하는 국가의 재무시스템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런 시스템에서는 토마토를 팔거나 교통사고가 났거나에 상관없이 돈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갈 때마다 GNP로 환산이 되어 더 잘사는 나라가 됐다는 결과는 낳는다. - P264

현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빈곤과 인구과잉이며 그 해결책이 되는 것은 바로 경제개발이라는 것이다. - P272

진보는 오늘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보다 높은 단계로 접어들었다. 어느 곳을 둘러봐도 냉혹한 진보의 논리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하고 지역의 상호보완성을 글로벌 시장경제가 대신하고 웨일즈의 시골길을 고속화 도로가 대신하고 독일의 구멍가게를 대형 마트가 대신한다. 이런 추세를 보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차이를 따진다는 것마저도 무의미할 정도다. 그 두 사상 모두 인간이라는 존재를 다른 피조물들과 분리하여 그 우위에 놓는 공통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 두 사상 모두 자원의 활용이 무한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 자원을 어떻게 분배하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다. - P277

우리의 출발점이 사람과 자연에 대한 존경심이라면 그 필연적 결과물은 다양성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 P291

라다크에 온 지 몇 년이 지난 후 그간의 선입견이 한 겹 걷히고 난 다음에야 나는 라다크 사람들의 기쁨과 그 웃음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정말 삶 자체에 대한 순수하고 거리낌 없는 경애심이었다. 나는 라다크에서 마음의 평화와 삶의 기쁨을 자신들의 천부적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그들이 이루고 있는 공동체와 땅에 대한 깊은 유대감을 통해 물질적 풍요나 기술의 진보 같은 것들을 넘어 진정한 의미에서의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 P321

자연의 세계에 있어 다양성이란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생명의 근본원리이다. - P321

전 세계를 통틀어 심리학에서 물리학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농경 현장에서 가정의 주방에 이르기까지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자각이 자라나고 있다. 인간중심의 삶과 여성 존중과 영적 가치를 추구하는 새로운 운동들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그 수효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변화에 대한 갈망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는 흔히 ‘새로운’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라다크 사회가 증명해 보인 것처럼 그것들은 아주 오래된 것들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야기다. 실제 그것들은 자연의 질서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인지하고 우리와 우리의 이웃 그리고 우리와 자연 사이의 분리될 수 없는 연관성을 인식하게 하는 숭고한 가치들의 재발견을 의미한다. -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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