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 PATA
문가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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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용기 없는 날 ‘파타'라고 하자.”


『 파타』는 배우 문가영의 산문집으로, 그가 어린 시절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나오며 겪고 느낀 바가 듬성듬성 기록되어 있다. 마음 가득한 말들은 입을 통해 겉으로 표출되지 않고, 손 끝에서 뻗어나와 글로써 우리에게 전해진다. 문가영은 용기 없는 자신을 ‘파타’로 칭했지만, 사실 누구에게나 파타는 필요한 존재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문가영이 누구인가? 나는 모른다. 그렇다면 파타는 누구인가?

파타는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을 저주하고, 예쁜 걸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하는 너를 질투한다. 열심히 써내려간 연애편지를 도로 빼앗기도 하는 파타는 기대보단 확신을, 무리에 속하기보단 경계인으로서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 배우가, 이 사람이, 이 작가가 써내려가는 연대기는 제법 혼란스럽고 우울한 감상을 준다. ‘용기는 거짓보다 진실을 전할 때 더 필요로 한다(102면)는 걸 알기에 진심을 들킬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파타는 ‘새로운 사람을 안아주느니 아는 사람을 두 번 세 번 안아줘야겠네(109면)’라며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 문득 열 손가락을 펴고 계산을 해 보았을 때,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은 서점에 있는 것만큼도 못 하겠다는 감상을 하기도, 매년 한 번씩 여행을 간다고 해도 지구의 반조차 모를 것 같다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문가영이 누구인가? 나는 여전히 모른다. 하지만 파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이제 나는 파타가 누구인지 알기 때문이다. 파타는, 가면을 방패삼아 뒤로 도망친 또 다른 자아가 아니다. 파타는, 카리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기도 하고, 부모님의 기쁨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파타는 살아있다. 이 모든 순간들을 거치며, 그들과 함께.

"사람들이 자꾸만 내가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거야. 그들의 소망이 덕지덕지 내 몸에 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널 사랑하기 때문인 걸 잘 알지 않냐는 말에 "알아. 내가 나쁜 거 알아. 아니, 이게 싫은 거야. 자꾸만 내가 나쁜 사람이 되게끔 만들어. 그저 사는 나에게 자꾸만 행복하라고 하잖아! 그게 잘못된 건지 사람들은 모르나 봐. 그 마음이 얼마나 이기적인 건지." - P39

"난 무거운 임무에서 도망친 건데, 떠난 나에게 또 물어보더라. 여행은 행복하냐고. 돌아온 나에게 또 물어보더라. 어땠냐고. 다녀오니 행복하지 않으냐고." - P40

파타는 기대보다 확신을 사랑했고 기대라는 말보다 인정이 필요했다. - P41

용기는 거짓보다 진실을 전할 때 더 필요로 한다는 걸 그녀는 이때 알게 되었다. - P102

문득, 파타는 열 손가락을 펴고 계산하기 시작한다. ‘정해진 시간 아래 내가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몇 권쯤 되려나.’ 서점에 있는 책만큼도 못 읽겠네… ‘정해진 시간 아래 내가 몇 명의 사람을 더 안아줄 수 있으려나.’ 새로운 사람을 안아주느니 아는 사람을 두 번 세 번 안아줘야겠네… ‘정해진 시간 아래 여행을 몇 번이나 갈 수 있으려나.’ 매년 한 번씩 간다고 해도 지구의 반도 모르겠네… - P109

"어딘가에서 같이 공기를 나눠 먹고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래도 불쑥 괘씸할 땐 숨을 조금 크게 들이마셔. 걔가 마실 공기가 조금은 부족하길 바라면서." - P113

그녀는 이 작은 방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왔지만 얕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얼굴도 모르던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했던 그녀는 이 작은 방에 홀로 들어왔다. 시간을 사는 일은 간단했지만 그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건 꽤 어려웠다. - P130

성공법칙 ― 잘 되는 사람의 이유와 내 주변의 실패와 내 경험의 판단이 합쳐지면 틀릴 이유가 없는데 - P153

입을 다물고 창을 바라보니 새가 울었다. 새소리조차 듣지 못한 내가 창피했고 새소리로도 행복해 하던 네가 부러웠다. - P183

겨우 예쁜 걸 예쁘다고 생각해낸 내가 기특할 뻔했는데, 소리 내어 말하는 네가 또 부러웠다. 별걸 다 질투하네. 부끄럽다 하자. - P185

꽉찬 말 — 빈말로 쓴 단어는 하나도 없고 진심이 안 담긴 문장조차 없어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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