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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 우리가 먹고 자고 일하고 노는 도시의 안녕을 고민하다
최성용 지음 / 북트리거 / 2021년 7월
평점 :
최근에 이사를 했다. 원래 살던 동네가 한적하고 조용해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는데, 물가를 반영하듯 자연스레 오른 월세와 겨울철 동파 방지를 위해 세탁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택의 문제점 등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결정된 것이었다. 책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 작가의 말마따나, 내가 그 동네를 좋아하건 말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계약할 당시에는 이사 갈 곳의 주변을 둘러보지 못했다. 그런데 막상 입주하고 나서 필요한 곳 이곳저곳을 들르다보니 사람들이 왜 ‘역세권’에 혀를 내두르는 지 절실하게 체감하게 됐다. 생활과 여가에 필요한 공간과 시설물들이 걸어서 10분 거리 내에 있었다. 각종 노선으로 뻗쳐나가는 지하철역과 버스정류장, 수많은 도서를 마음껏 대출할 수 있는 도서관, 주거래 은행, 맛있는 빵집, 고즈넉하거나 신상인 카페들, 최신 개봉 영화들을 밤낮으로 상영하는 영화관, 생필품 판매점, 대형 마트, 백화점, 각종 상점들과 음식점은 물론 술집들이 즐비해있는 시가지까지. 내가 아는 한 나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이 엄청난 기반에 감탄하기도 잠시, 최성용의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를 읽고 나서는 이 도시의 화려한 면모에 현혹되어 사실은 내가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도시에는 내가 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었다. 아니, 그것들이 훨씬 많았다. 『내일의 도시를 생각해』에서는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이 도시의 구조물들과 그 구성 요소들을 훑어보며, 그 발생 연고와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안까지 챕터별로 꼬집는다. 인간들의 삶만 살펴보지 않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작가가 공감했듯, 따지고 보면 도시는 원래 동식물들의 땅이었고, 그 땅을 사람들이 점령한 셈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투명 방음벽이었다. 매번 드라이브를 갈 때마다 고속도로 양 옆에 펼쳐진 울타리의 정체가 무엇인가 궁금했는데, 그게 바로 방음벽이었다. 큰 차가 지나가는 산업도로나, 빠른 속도를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엄청나게 시끄러운 고속도로 옆에 주로 설치되는 방음벽은 공간의 분리를 이끌고 소음을 차단하여 근처에도 집들이 들어설 수 있게 해주는 설치물이다. 그런데 이 방음벽이 조망권과 치안을 위해 투명으로 바뀌자 새들이 부딪혀 죽어나갔다. 국립 생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2만 마리의 새가 투명 방음벽과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버드 세이버, 즉 맹금류 모양의 스티커를 부착하기도 하였으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 가로 10cm, 세로 5cm 간격으로 물방울무늬나 얇은 줄을 인쇄해 유리에 붙이는 방식이 채택되어 시행 중에 있다.
이처럼 지금의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도시의 모습은 원래부터 이랬던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의 노력과 관심 덕택에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현재진행중의 상태에 있다. 고가도로와 지하차도는 교통지옥을 해소하기 위해, 육교는 횡단보도를 없애 차들이 더 빨리 달릴 수 있게, 아파트는 주거안정과 도시로 밀려드는 시민의 집단 수용을 위해, 신호등은 도로의 신호 체계 정립을 위해 만들어졌다. 수도권 매립지나 초고압 송전탑과 같은 혐오 시설에 대한 공방전, 이주민들의 거주 문제에 얽힌 시선들, 반려동물을 도시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위한 제도의 수립은 각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모두 다 같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방음벽의 존재 의의를 몰랐듯, 사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도시 속에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고, 생활 편의성을 도모하는 것들이 참 많다. 물론 ‘문화지체 현상’, 즉 새로운 것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부작용을 바로 알기 쉽지 않아서 한참 뒤에야 그 사용과 관련한 규범이 생기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각종 시행착오를 통해 물질적인 것(기술)과 비물질적인 것(규범)의 변동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조화를 해소해나가다 보면 현재의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이 사실 많은 논의 끝에 생겨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도시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처럼, 사람들도 도시의 모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그러니 사소한 것부터 관심을 가질 것. 그것이 내가 이 책을 통해 받은 교훈이다. 사적 이익과 욕구를 좇는 것도, 공공성을 높이는 행동도 모두 도시를 바꾸는 힘이 된다. 지금의 도시 풍경이 선택과 움직임이 쌓여 만들어진 것처럼, 앞으로도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 언젠가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이 기회를 빌려 도시를 구성하고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터전을 제공해진 동식물에게 감사인사를 바치고자 한다.
아내와 저는 이 동네에서 오랫동안 아이를 키우며 살기로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2년 후 전세 가격이 급등하면서 더 이상 그 동네에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제가 그 동네를 좋아하건 말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었지요. - P6
도시의 밤은 개인의 선택과 기업의 결정이 맞물린 문제입니다. 더불어 이는 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정책은 우리의 합의이고, 사회적 공감이지요. - P97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하루 2만 마리의 새가 투명 방음벽과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죽습니다. - P164
사실 어떤 새로운 물건이 세상에 나왔을 때 그 부작용을 바로 알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건이 도입되고 나서 한참 뒤에 물건의 사용과 관련한 규범이 하나둘씩 생기고는 합니다. 이를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물질적인 것(기술)과 비물질적인 것(규범)의 변동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부조화를 말하지요.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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