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샷 뒤의 여자들 - 피드 안팎에서 마주한 얼굴
김지효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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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6년 여름, 대학 입학 후 친구와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던 밤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는 녹초가 된 몸을 편히 쉬게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맥주 한잔하며 여행의 여흥을 푸는 행동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에 각자의 침대에 누워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들을 추려내고 보정했다. 침묵 속에서 그렇게 한 시간여를 쓰고는 빠르게 씻고 잠에 들었다. 낮 중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 수백장을 찍었다. 딱히 유명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남의 사택 앞이더라도, 투어 도중이더라도 우리는 꽃이 피거나 예쁘고 이국적인 풍경이 보이면 그 앞에 멈춰서서 무한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던 중 주로 사진을 찍고, 찍어주던 친구의 휴대폰이 고장 나버렸다. 여행 내내 열심히 찍었던 사진을 몽땅 다 날려버렸다는 허탈감이 몰려왔지만, 동시에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이상했다. 오로지 SNS에 올릴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몰두한 시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는데도 화가 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어쩔 수 없지’ 혹은 ‘차라리 잘됐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후 우리는 온전히 여행에 집중하며 맛있는 음식을 음미하고, 두 눈에 자연경관을 담았으며, 깨알같이 적혀있는 버스 정류장의 시간표를 뚫어지게 보며 귀갓길을 모색하는 등 진정한 여행의 묘미라 불리는 것들을 마음껏 즐겼다.


지나온 20대 초중반의 나날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수업이 없는 날엔 힙한 카페나 미술관을 방문해 친구들과 양껏 사진을 찍었고, 귀갓길엔 서로 찍어준 사진들을 카톡으로 남김없이 받았다. 집에 도착했음에도 바로 씻지 않은 채 터질듯한 갤러리를 정리했고, 보정 어플을 켜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고쳤다. 그 모든 일들은 인스타그램에 단 몇 장을 올리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이었다. 그때에는 당일에 올리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았다. 다르게 말하면 하루라도 늦어지면 밀려버리는 사진의 양을 감당할 수 없을까 봐 무서웠다.


책 『인생샷 뒤의 여자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친구의 얼굴보다 프로필사진을 더 마주하는 시대에 (…) 청년 여성들은 생애 전반에 걸쳐 SNS에 디지털 자화상을 남겨왔다(15면)”고 일컫는다. “자신을 차별화하고자 했던 여성들은 결국 여성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들이 “계속 트렌드를 검색하고 이에 맞게 소비하며 힙함과 특별함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애쓴(71면)” 결과는 인스타그램으로 집결되었다. 이미지 중심의 SNS인 인스타그램은 셀카와 인생샷을 전시하기에 최적의 플랫폼이다. 설계 구조부터 이미 “이용자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도록(280면)” 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인스타그램이 서비스를 시작한 아주 초기부터 가입하여 아직 계정을 유지하고 있는 충성 사용자이다. 초기의 볼품없는 필터부터 24시간 동안 공개하는 ‘스토리’ 기능과 숏폼 동영상 서비스인 ‘ 릴스’로 무장한 현재까지, 모든 트렌드를 두 눈으로 지켜봐왔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과거에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념할 날을 정한다(65면)”는 것이다. 이는 일상의 풍경을 공유하는 것으로는 부족한 시대가 도래했음을 뜻한다. 과거의 셀카는 얼굴과 패션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몸이 놓인 공간, 즉 배경까지 셀카의 범주에 들어오게 되어 스스로 도취하여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허함 및 비윤리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이 책에서 인터뷰 대상자들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일종의 스펙으로 여기며, 관리를 잘할수록 본인의 가치 또한 올라간다고 여긴다. ‘좋아요’ 수와 팔로워 수를 인기 척도로 여기는 것은 물론, 주변 뭇 남성들로부터 관심을 받을 것이라는 착각과 또래 여성들에게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생각해 보면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 오랫동안 이뤄져 온 일이다(98면)”. “여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외모 평가 및 불법촬영, 성생활에 대한 거짓 소문에 시달려야(115면)”했고, “너무 예쁘거나 못생겨서, 너무 똑똑하거나 멍청해서, 너무 가난하거나 부자여서 등 다양한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140면)”. 그러니 지금, “인생샷과 디지털 페미니즘은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실천(183면)”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저자 김지효는 “연구를 진행하며 SNS 관련 논의가 자주 이분화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283면)”을 발견했다. “SNS가 사람들을 과도하게 연결시킨다는 평가는 언제나 SNS가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외롭게 만든다는 정반대의 평가와 공존했다. 또한 SNS 이용자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도취되어 있다는 평가는 이들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평가와 공존했다. 마찬가지로 SNS 정치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혁신적 시도였다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과시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283면)”. 이러한 상반된 평가들은 인스타그램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이미지만 보여줄 것을 기능적으로 강요하지만, 실상은 “공과 사를, 일상과 정치를, 오락과 토론을, 과시와 소통을, 친구와 ‘대중’을, 시민의 정치 참여와 생활인의 일상(284면)”이 뒤섞여 내재하여 있음을 뜻한다. 


저자는 또 “누군가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브랜딩하려고 노력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여성은 페미니즘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292면)”고 하였다. 그러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현실은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305면)”는 점이다. 차별의 문법을 전복할 힘이 없다면 그 장소를 벗어나면 된다. 준거 집단을 바꾸어 사랑받음의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끼는(103면)” 일은 온라인에서 받는 ‘좋아요’와 팔로잉, 댓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라 아메드는 저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이 특정 길을 많이 갈수록 그 길은 더욱 선명해진다. 여기에 “발자국의 역설”이 있다. 길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가기에 생기고, 길이 생기기에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른다. 우리는 길을 사용하는 한 길을 사용할 수 있다(307면)”. 구태여 샛길을 만들지 않아도 우리는 이제 셀카가 더는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몇 해 전 여행지에서 느꼈던 것처럼, 당장 집착을 버릴 순 없어도 보다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다른 ‘낯섦’으로 뛰어들 필요가 있다. 저자 말대로 “이 낯섦과 불쾌함은 앎의 시작(269면)”이기 때문에.

많은 책에서 셀카는 타자를 소거한 채 자신에게 도취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공허함 및 비윤리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제시됐다. - P13

친구의 얼굴보다 프로필사진을 더 자주 마주하는 시대에, ‘아름다움’이나 ‘외모’로 칭해지는 많은 것은 사실 디지털화된 아름다움인 셀카를 뜻한다. - P15

나이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청년 여성들은 생애 전반에 걸쳐 SNS에 디지털 자화상을 남겨왔다. - P25

지금은 스마트폰 용량이 체감상 무한대에 가까워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24컷이나 36컷 필름에 따라 정해진 컷 수만큼만 찍을 수 있었다. 한 컷 한 컷이 모두 비용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래 기억할 가치가 있는 기념적인 날에 주로 사진을 찍었다. - P27

셀카 유행 초기에 얼굴이, 그다음으로 패션이 중요했다면 이제 또 하나 차별점이 추가된다. 바로 배경이다. 카메라의 화각은 점점 넓어져 이제 몸이 놓인 공간까지 셀카의 범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 P44

과거에는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면, 이제는 사진을 찍기 위해 기념할 날을 정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 P65

여성들은 계속 트렌드를 검색하고 이에 맞게 소비하며 힙함과 특별함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애쓴다. - P71

자신을 차별화하고자 했던 여성들은 결국 여성에 대한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 - P71

해외에 여행을 갈 때는 "무조건" 한국 여성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한다고도 했다. - P78

여성이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을 기준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사실 오랫동안 이뤄져온 일이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남성과의 사적 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 P98

아이디를 알려줄 때 이걸 말하면 내 가치가 올라갈 거라는 걸 알거든요. (…) 인스타그램이 뭔가 제 하나의 스펙 같아요. 인스타그램이나 인기 척도 자체가요. - P101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존재감을 느낀다. 이것이 온라인에서는 ‘좋아요’와 팔로잉, 댓글로 이뤄진다. 사람들은 ‘좋아요’를 받을 때마다 게시물을 올려도 괜찮다는 사회적 승인을 받는다. - P103

남성이 스스로를 연애 관계 속 약자로 제시하는 장면은 럽스타그램에 내재된 성별 권력 구조를 은폐한다. 남성은 애초 인생샷을 찍거나 이성애를 전시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P110

여학생들은 학교를 다니는 내내 외모 평가 및 불법촬영, 성생활에 대한 거짓 소문에 시달려야 했다. - P115

실제로 오프라인 결속력이 강한 집단의 경우, 온라인에 실물과 다른 모습을 전시하는 사람이 이상하다고 여겨지며 비난받기도 한다. - P128

사회는 이것들만 얻으면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환상을 불어넣지만, 실상 성차별적 사회는 인정과 사랑의 약속을 자주 배반한다. 여성들은 너무 예쁘거나 못생겨서, 너무 똑똑하거나 멍청해서, 너무 가난하거나 부자여서 등 다양한 이유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 P140

차별의 문법을 전복할 힘이 없는 개인이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이다. - P140

아름다움의 효과는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가 아니라, 아름다운 여성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을 봤을 때 발생한다. - P174

인생샷과 디지털 페미니즘은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체들에 의해 일상적으로 실천된다. - P183

인스타그램은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이미지만 보여줄 것을 기능적으로 강요한다. - P196

성차별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은 구조적 차별을 열등한 여성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전략을 자주 사용한다. - P208

준거 집단을 바꾸는 것은 사랑받음의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 P229

억압은 안정과, 해방은 위험과 붙어 있기 때문이다. - P233

이것은 탈코르셋과 인생샷의 차이가 페미니즘 인식과 같은 내적 요인에만 있지 않고, 이들이 속해 있는 집단·환경·조건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P243

이 낯섦과 불쾌함은 앎의 시작이다. - P269

인스타그램은 이용자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 P280

나는 연구를 진행하며 SNS 관련 논의가 자주 이분화된 방식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SNS가 사람들을 과도하게 연결시킨다는 평가는 언제나 SNS가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외롭게 만든다는 정반대의 평가와 공존했다. 또한 SNS 이용자들이 자기 자신에게만 도취되어 있다는 평가는 이들이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중시한다는 평가와 공존했다. 마찬가지로 SNS 정치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꿀 혁신적 시도였다가,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과시적 행위라는 비판을 받았다. - P283

이곳은 공과 사를, 일상과 정치를, 오락과 토론을, 과시와 소통을, 친구와 ‘대중’을, 시민의 정치 참여와 생활인의 일상을 뒤섞는다. - P284

누군가 페미니스트의 이미지를 브랜딩하려고 노력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여성은 페미니즘으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 P292

여성은 바늘귀 같은 기준을 통과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 - P296

현실은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각자가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305 - P305

사람들이 특정 길을 많이 갈수록 그 길은 더욱 선명해진다. 여기에 "발자국의 역설"이 있다. "길은 사람들이 그 길을 따라가기에 생기고, 길이 생기기에 사람들이 그 길을 따른다. 우리는 길을 사용하는 한 길을 사용할 수 있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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