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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아버지. 누군가는 부르기만 해도 목 멜 그 이름을 제목 전면에 내세운 정지아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그의 아버지가 과거 빨치산으로서, 구례의 한 주민으로서, 누군가의 형이자 남편 그리고 아버지로서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는다.
주제나 등장인물의 평균 연령, 진한 사투리만 놓고 보면 스토리가 꽤나 딱딱하고 무거울 것 같은데, 이야기의 포문은 “아버지가 죽었다”(7면)라는 제법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해 “이런 젠장”(16면)하고 유쾌하게 맺힌다. 자연스레 아버지가 살아온 인생에 호기심이 생긴 독자는 3일장이 치러지는 동안 장례식장을 오고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때론 웃고, 때론 눈물짓는다.
1. 먼저 장례식장 한쪽에 어머니가 있다.
화자의 부모는 매순간을 혁명의 순간처럼 살아낸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공산당 선언』을 읽고 사회주의자가 된 아버지는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농부가 되기 위해『새농민』을 읽지만, 글로 배운 농사가 이론대로 되지 않자 유물론과 민족을 들먹이며 잔소리하는 어머니를 함구시킨다.
문제는 사람의 삶이 혁명의 순간으로만 구성되어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혁명은 언제나 단기간이고, 그 혁명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매순간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기에, 가정이라는 공간은 에너지를 비축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책 곳곳에서는 집안에서 벌어지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을 소소하게 풀어내며, 전직 빨치산의 일상을 이해시킨다.
2. 장례식장의 다른 한편에는 아버지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를 봤던 일가친척들이 모여 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의 이야기는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시기와 시대 탓에 해소되지 않은 원망으로 형의 부고를 알리는 전화에는 대답 없이 끊을 정도로 냉담했던 그가,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복잡다단한 마음으로 형의 유골함을 붙잡고 오열할 때에는 독자들도 함께 사무친다.
3. 조문객의 태반은 구례 사람들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구례는 지리산 아래에 있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산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구는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고, 누구는 국군에게 총살당한 삼촌이 있기도 하는 등 별의별 사연이 존재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구례 사람들에게 이데올로기란 대단한 게 아니다.
이를테면 빨갱이를 너무 싫어하는데 빨갱이가 집 앞에서 슈퍼를 한다면, 처음에야 먼 곳에 있는 다른 슈퍼에 갈 테지만 비가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두 번 얼굴을 부딪치고 부대끼다보면 밉기는 해도 한편으로는 정도 들고, 안 보이면 궁금하고, 어디 아프다 그러면 걱정도 된다. 책에서 그랬듯 각자에겐 사정이 있는 법이고(32면), 이해까진 아니더라도 인정하면서 사는 게 사람살이이라는 것을 우리는 구례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걸핏하면 민중 운운하는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구례 주민으로서 어쩐지 마을의 해결사 같은 면모를 보인다. 본인의 일이 아님에도 이웃이 어려움을 겪는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돕는다. 이것이 시골의 정이고, 아버지의 마음씨다. 방물장수를 한 밤 재웠다가 마늘 반접이 없어졌더라도, 본인이 행한 일을 후회하지 않는다.
소설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은 동네가 작을수록 거리가 없기 마련인 시골에는 정도 있지만, 소위 말하는 ‘오지라퍼’들도 많음을 드러낸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도 사람들이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197면). 이런 마음들이 완전히 부담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현대의 것, 즉 자신을 가공해서 보여주는 삶과는 대비되어 보인다.
도시에서는 외로움과 괴로움의 말들이 늘 들리지만, 시골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해학과 유머로 묵은 고통을 이겨낸다. 자기 삶에 닥친 고통을 진심과 최선을 다해서 견뎌 내온 사람들이기에 절대 우울해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고통이나 슬픔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키며 극복해낼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다.
4. 물론 장례식장의 중심에는 ‘나’가 있다.
다들 돌아가고 아버지만 영정 속에 남아있을 때 화자는 아버지와의 에피소드를 떠올리며(230면) 그의 심리를 친밀함으로 묘사한다.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면 어머니는 만들어주시지 않던 두터운 누룽지를 먹을 수 있음을 의미했고, 무등을 타곤 했던 따뜻한 날들에 대한 회고는 독자로 하여금 부모님과의 그리운 날을 떠올리게 한다. 돌아가고 싶은 시절을 추억 속에서 들추다보면 화자가 그간 당신의 아버지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했는지를 여실히 알게 된다. 비록 빨갱이의 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 구례가 싫어 도시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정체성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결국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로부터 자기 존재를 긍정하지 않으면 진짜 자신을 만날 수 없고, 그렇지 않은 경우 삶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본인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고 맺은 관계가 주가 되면 외롭고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러니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역사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구례에서 전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작은 공동체의 존재 의의로 봐도 무방하다. 앞뒤 없는 오지랖은 간혹 짜증스러울 때도 있지만 개입하는 만큼 관계가 깊어지기도 한다. 그러니 주어진 대로, 그런대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다.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아버지를 향한 장벽이 무너지고 해방된다. 그렇다면 한국 전쟁 발발 후로 70년이 흐른 지금, 이 책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작가는 전직 빨치산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해로부터 14년이나 지난 뒤에야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로 시대를 꼽는다. 6?25 당시 누가 나빴고 누가 덜 나빴나를 가르는 일은 ?분단 상황이라 어려운 점도 있지만? 당사자로 싸웠던 사람들, 혹은 당사자로 피해를 입었던 사람들이 생존해 있는 한 옳고 그름조차 따질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세대가 생을 마감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죽음을 아버지 세대의 영혼과, 아버지의 장례식장 풍경을 한국 사회의 축소판으로써 동일 선상에 놓는다면, 향후 10년이면 혁명이니 이데올리기 하는 것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묻힐 것이다. 그렇다면 서서히 말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게 작가의 뜻이다. 물론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생겨난 모든 갈등과 상처를 해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 소설의 역할은 그것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 빨갱이나 빨치산 같은 말들이 그 자체로 터부시되고 듣기만 해도 무섭고 괴로운 것이었다면,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한국사회의 갈등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가볍게 보이지만 깊이 보면 무겁다. 내색은 않지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을 구례 사람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포용과 낙관, 강인함이 묻어있다.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는 웃음은 그 사람의 삶이 가벼워서 나오는 게 아니다. 슬픔을 겪은 자가 오히려 해학이 있고, 비극의 삶을 산 자가 오히려 유머를 가져다주는 법이니까.
그러니 감히 이것을 문학의 역할이라고 일컫겠다. 인공지능은 따라올 수 없는 창의적이고 깊은 사유를 요구하는 소설의 힘이 필요한 요즘이다. 그러니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인,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친구이고 이웃”이었던, 오죽하면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생을 마감한 아버지를 우리는 하염없이 그리워할 테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 P28
누구에나 사정이 있다. (…)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는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 P32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인내할 줄 아는 자는 혁명가가 되지 않는다는 게 고등학생 무렵의 내 결론이었다. - P67
그 틈에 끼어 나는, 혁명가도 아닌 나는, 신념도 없는 나는, 일상의 평범한 대화를 맛보지 못한 채 어른이 되고 늙어가는 중이었다. - P123
그때 잃은 아버지를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도 되찾지 못한 게 아닐까? 아버지를 영원히 잃은 지금, 어쩐지 뭔가가 억울하기도 한 것 같았다. - P159
구례라는 곳은 어쩌면 저런 기이하고 오랜 인연들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인 작은 감옥일지도 모른다. - P163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 P181
아버지는 누군가의 목숨을 살리기도 했지만 누군가의 덕으로 살기도 했다. - P187
여기 사람들은 자꾸만 또 온다고 한다. 한번만 와도 되는데. 한번으로는 끝내지지 않는 마음이겠지. 미움이든 우정이든 은혜든, 질기고 질긴 마음들이, 얽히고설켜 끊어지지 않는 그 마음들이, 나는 무겁고 무섭고, 그리고 부러웠다. - P197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 같았다. - P249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쥔 채 나는 울었다. 아버지가 만들어준 이상한 인연 둘이 말없이 내곁을 지켰다. 그들의 그림자가 점점 길어져 나를 감쌌다.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탓인지 유골이 차츰 따스해졌다.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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