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3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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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맑고 온전해야할 일상이 조금씩 깨지고 금이 가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잘못된 선택, 예상 밖의 결과, 불운한 사고, 대중의 심리, 따라오며 괴롭히는 비난. 그 중 돈이 가장 큰 문제가 되는 인생은 이 세상에 과연 몇 개나 될까?
초등학생이던 시절, 나는 인터넷 세상에 푹 빠져있었다. 좋아하는 만화의 팬 카페에 매일같이 들락거리며 회원들과 채팅을 하거나 게임을 하며 놀았다. 그곳에는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지식이 있었다. 나의 월드 와이드 웹(WWW, world wide web) 탐방은 어느 날 ‘이번 달에 전기세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하는 엄마의 혼잣말을 듣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 한숨 소리가 유년의 나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주었는지. 나 때문이구나. 내가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우리 집에서 돈이 새고 있어. 다 내 잘못 같았다. 그길로 하교하자마자 접속하곤 했던 팬 카페에 발길을 끊었다. 발길을 끊은 게 뭐야. 아예 컴퓨터 전원도 안 켰다.
그만큼 어른들의 세계는 아이들에게 강력하게 작동한다. 그게 돈이랑 엮이면 더더욱.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우며 그 이치를 자신의 삶에도 적용시켜보는 건 모름지기 다음 세대의 영역이라지만, 아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돈의 가치를 깨닫는다.
『클로버』의 주인공 정인도 마찬가지이다. 정인은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단 둘이 볕이 들지 않는 단칸방에서 살아간다.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를 따라 폐지를 줍던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서, 하교하는 길에 골판지나 폐플라스틱이 보이면 서슴없이 책가방에 주워 담는다. 고물상에 가서 그것들을 단돈 2천원에 바꾸고, 주인장 박 코치의 한화 이글스를 향한 분노를 참고 듣는다. 학원가 사거리에 있는 햄버거 집에서 주 3일 아르바이트도 한다. 배달기사 형의 푸념과 점주의 비양심적 행동은 모르는 척 하면서, 정인은 자신을 둘러싼 그 모든 것을 필터 없이 흡수한다.
나혜림 작가는 교편에 있을 무렵,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100만원을 모으고 싶다고 한 학생의 말이 아직까지 기억에 박혀있다고 했다. ‘100만원 그게 뭐라고’어른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별로 어마 무시한 금액도 아닌 돈이 너의  평생소원이냐고.  그러나 그깟 돈 몇 푼이 없어서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참고 발악하듯 살아가는 인생도 있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서는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때때로 ‘어떤 이는 펜트하우스에서 누군가의 집이 폭우에 떠내려가는 걸 구경하고, 그 집엔 빨래를 말릴 햇빛조차’ 없단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것처럼, 과연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할 해와 비조차 현대 사회의 만인을 굽어 살피지는 않는다. 그 차이는 예수도 해결해주지 못할 돈이 만든다.
그런 정인의 인생으로 성큼 들어온 건 다름 아닌 악마, ‘헬렐’의 존재이다. 비행기를 타 본 적도 없고,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정인에게 헬렐은 수많은 ‘만약에’를 제시한다.
저자는 이 만약(萬若)을 만일(萬一)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지금과 다른 상황을 하나만 제시하면 모든 것이 뒤바뀔 거야.’라고 속삭이며 궁극적으로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음식에 조예가 깊은 헬렐은 식품 전체의 향을 결정하는 0.01%의 냄새 분자를 언급하며, 자신이 인생의 향과 색을 결정해 줄 수 있다고 유혹한다.
그런데 정인은 이 세상에 어떤 음식이 있는지 잘 모른다. 오르톨랑이나 샤토 페트뤼스, 캐비어 같은 고급 식문화는 들어본 적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저 라면과 햇반으로 인생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찬장이 비어있으면 그날은 굶어야한다는 게 곧 정인네의 법이고 진리다. 만약 정인이 성냥팔이 소녀였다면 마지막 환각으로 보게되는 건 칠면조와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라 라면이나 햇반일 정도이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에서는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고 하지만, 이제껏 먹은 것이 별로 없는 정인은 자신에게 어떤 선택지가 주어질 수 있는지조차 모른다.
인생은 B(birth, 생生)와 D(death, 사死) 사이의 C(choice, 선택)라는 말이 있듯,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하게 된다. 사고 싶은 물건이 있어 포털에 검색할 때에, 최고 성능이 아닌데다 가격 또한 최저가가 아니더라도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라면 눈길이 가는 것처럼, 수많은 알고리즘 속에서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애쓰고 있다.
마케팅 전략에도 골디락스, 또는 프로크로스테스의 침대라는 개념이 있다. 미끼 상품들이 섞여 있을 때, 사람들은 대게 중간 정도로 적당해 보이는 물건을 고르더라는 것이다.
이 알고리즘과 마케팅 전략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적지로 도달하는 길에 제한을 걸기도 되기도 한다. 꼭 맞는 선택보다 더 보편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당신이라면 그 섬세하고 자잘한 한계선이 무너졌을 때 어떤 선택을 할 지 악마 헬렐을 통해 묻는다.
악마라고 하면 보통 사이코패스처럼 공감 무능력자, 혹은 남들에게 크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헬렐은 겉보기에는 평범하고 귀여운 고양이로, 때로는 정인을 지극히 생각하는 동료처럼 그려진다. 
헬렐은 정인이 도피처가 필요할 때 찾는 쓰레기장에서 말동무가 되어준다. 고급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게도 해준다. 그럼에도 정인은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소설 중반부까지 그의 손을 잡지 않는다. 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착하지 않다고 칭하기 때문일까. '그렇게 영리하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고, 꿋꿋하지도 않은' 아이에게 후원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스스로 반문하며 복지관 선생님의 손길조차 거절하는 정인에게, 헬렐의 존재는 거부의 대상 그 자체이다.
성경에서 예수가 광야로 가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악마가 찾아왔던 것처럼, 주변을 이루는 모든 것이 모래처럼 부서지려 할 때 정인은 결국 헬렐의 손을 잡게 된다. 밑창이 다 떨어진 운동화, 주 5일 근무를 꿈꾸던 가게의 깨져버린 유리창, 교통사고로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간 할머니. 모든 것이 나비 효과처럼 날아가고 있기에 정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이미 절망밖에 없을 위치에서 그리는 미래란 좀 더 근사해도 될 텐데, 어쩐지 헬렐이 보인 문 건너편에서 정인이 보는 장면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상상조차 자신이 아는 최선의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 엄연히 지옥, 이승과 저승의 경계로 아발론이라 불리는 곳이다.
아발론에서 정인은 세 가지 문을 넘으며 비행기 퍼스트클래스를 타게 되고, 재아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눈 뒤 고급 호텔에서 할머니와의 식사를 하게 된다. 그동안 정인이 원했던 것들이다. 사실 이 세 가지 모두 정인이 간절히 진정으로 원했다고 하기에는 앞서 언급한 알고리즘 같은 선택 같아 보인다. 퍼스트클래스는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데에서, 좋아하는 이성 친구의 대화는 헬렐이 불을 지핀 데에서, 고급 레스토랑은 헬렐이 데려간 호텔에서 보았던 메뉴판에서. 그러니 진짜 소원이라고 보기는 조금 애매하다.
마테를링크만의 희곡 『파랑새』에서는 주인공들이 파랑새, 곧 진정한 행복을 찾아 떠난 여정에서 의인화된 행복들을 만나게 된다. 그것들은 뚱뚱한 행복들로, 각각 사치스러운 행복, 소유하는 행복,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행복, 잠만 자는 행복 등의 이름을 가진다. 비록 백 년 전에 쓰인 작품이지만, 여기서 시사하는 바는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도 빗대 볼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빈둥거리며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 느끼는 행복은 사실 이 뚱뚱한 행복들, 다시 말해 한 꺼풀 벗겨보면 불행에 가까운 행복들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제목인 클로버도 불행에 가까운 행복을 뜻한다. 클로버(trifolium)의 학명은 세(tri-)잎(-folium)이란 뜻으로 기본형이 3개 잎인 콩과 식물이다. 어쩌다보면 네 개의 잎이 달려 있는 경우가 있어, 왠지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는 기분으로 즐거워지기도 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네잎클로버는 행운을,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 약속, 희망 등이고 ‘잎말’은 그 어느 식물도 가지지 않는다.
일본의 한 농부가 클로버 잎의 개수를 18개, 21개, 56개까지 개량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는데, 사진을 찾아보면 기괴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인간의 욕망이 잔뜩 들어가 있단 걸 증명해보이기만 하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헬렐도 한평생을 부자로 살아왔지만 소문난 구두쇠였던 진 폴 게티의 말을 들먹이며 말한다. ‘가진 돈을 셀 수 있다면 그건 부자가 아니다’라고. ‘한 잔은 너무 많고 천 잔은 너무 적다’고. 
클로버의 열매나 씨앗, 꽃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잎만 보는 세태는 『클로버』 속에서 정인을 대하는 사람들의 것과 닮아 있다. 동정과 무시가 기저에 있는 어른들의 시선은 아직 꽃도 피우지 않고 이제 막 생을 시작한 미숙한 생명체인 클로버를 잎의 개수만 보고 속단하는 것과 같다.
이 책은 희망과 욕망이 딱 떨어지는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후유증 없이 깨어나는 것 같지도 않고, 후원자와 관계를 맺게 된다고 해서 정인의 사정이 나아진다거나 태주의 놀림이 없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정인은 헬렐이 제시한 모든 만약을 거절하고 낡아빠진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지금은 그냥 한 번 더 진짜를 살아볼게요.’
그동안 스스로를 응달에서 사는 아이로 일컫던 정인은 다시 세상을 향해 뛰어나간다. '못난 꼴, 못난 마음을 훤히 비추는 빛이 싫어서, 비와 어둠 속에 숨고 싶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비록 미련하고 비굴해보이고 미완일지라도, 현재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내 보려고 말이다. 비로소 정인은 선택의 여지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자신의 파랑새를 찾게 된다.
모든 ‘만약에’를 뿌리치고 다시 돌아간 단칸방에는 여전히 볕이 잘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재고해 볼 것은 주인공 정인의 이름 뜻이 빛나는 사람炡人이란 것이다. 그러니 부디 세상의 모든 빛나는 사람들이 주변의 응달에도 불구하고, 걸어가는 길에 짙은 어둠이 깔려있더라도, 당신이란 사람 자체가 빛이란 걸 불현듯 깨닫길 바란다. '작열하며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을 노동하게 하는 햇빛과 달리 뭉근하게 뜸을 들이며 상념이라는 김을 뿜어내는 달빛'과 더 닮아 있을 악마의 이름에조차 빛이 있는 것처럼, 어쩐지 나는 응달에서 피는 꽃을 더 응원하고 싶다.
힘이 드는 순간이 오면 그늘에서도 자라는 유머를 보여주는 클로버를 떠올려보자.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다면 또 한걸음, 다시 한 걸음은 전혀 어렵지 않단 걸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동의할 수 없더라도, 유모레스크 인생이니까.


※ 이 책에서 가져온 몇 개 구절은 작은따옴표 안에서 인용하였습니다.
※ ‘23/05/13 대구 고산도서관에서 진행한 저자 강연(’만약에’가 가득한 세상에서 선택의 가치)에서 참고한 내용이 있습니다.



"당신이 먹은 것이 무엇인지 말해 달라.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겠다." (『브리야 사바랭의 미식 예찬』 중에서) - P45

"’유모레스크’라는 곡이야. (중략) ‘유머 있는’이라는 뜻이래." 하지만 이름을 풀어서 설명해 주자 한결 외우기 쉽다. 그 뜻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 P60

햇빛은 작열하며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을 노동하게 하지만 달빛은 뭉근하게 뜸을 들이며 상념이라는 김을 뿜어낸다. - P124

정인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자기가 왜 화가 나는지도 몰랐고, 왜 눈물이 나는지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아니라고 했다. 할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더 물어 봤자 어쩔 수 없다는 걸 이미 알았다. 그냥, 그게 할머니와 정인의 방식이었다. 자신이 못나 보인다 싶으면 학교 뒤꼍에 숨었고 약해졌다 싶으면 그림자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안 보이는 척, 모르는 척, 슬쩍 덮어놓고 살다 보면 지나갔다. 어떻게든 살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그게 잘 안 됐다. - P136

정인은 쓰레기통 옆에 쪼그려 앉았다. 여기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새벽에 수거차가 와서 날 싣고 가지 않을까. - P137

"다 아저씨 때문이에요." "뭐가?" "난 괜찮았는데." "……." "뭐가 괜찮았는데?" 악마는 기어코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네 일? 아니면 네 집? 그것도 아니면 네 신발? 뭐가 괜찮았는데? 내가 뭘 괜찮지 않게 만들었지?" - P138

"재미있냐고? 재밌지 않을 리 없잖아? 폭력은 비디오 게임, 전쟁은 뉴스 속보, 착취는 초콜릿, 생명 경시는 모피 코트, 환경 오염은 아보카도와 스포츠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신명 나는 파티의 클라이맥스에선 돈이 비처럼 내려. 모두가 쇼를 좋아하잖아? ‘쇼는 계속될지어다!’" (중략) "난 야구였구나." "뭐?" 정인이 피식 웃었다. "나한테는 지긋지긋한 이 시간이 누군가한테는 이야기고 스포츠고 파티인 거에요?" "바로 맞혔어! 하지만 넌 그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지. 평생 햄버거를 씹으며 진열장 너머 반짝이는 걸 구경만 할 거야?" - P140

"그분이 저한테 실망하면 어쩌죠? 저 그렇게 착하지 않은데. 저는 그렇게 영리하지도 않고 바르지도 않고 꿋꿋하지도 않아요." - P167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그 빛이 보기에 좋았다는데……. 정인은 빛이 싫었다. 못난 꼴, 못난 마음을 훤히 비추는 빛이 싫었다. 비와 어둠 속에 숨고 싶었다. - P168

"철이 당겨서 들긴 했어요. 왜, 식물에 햇빛이 부족하면 위로만 가늘게 웃자란다면서요. 제가 좀 웃자랄 환경이었거든요." 헬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웃자란 식물에게는 늦거름을 줘야지. (중략)" - P176

‘해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똑같이 비추고, 비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 모두에게 내린다.’ (「마태복음」 5장 45절에서 변형하여 인용) -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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