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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제시카 브루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3월
평점 :
* 큰 따옴표 내 구절은 모두 책에 나온 인용구입니다.
> ‘22/04/22 온라인 독서모임 북클럽웨비나와 함께.
'희망'이란 단어는 자칫 잘못 사용하면 어째 교훈적이거나 낙천적인 어조가 될 수 있으니 직접적인 사용은 피하는 편이지만, 독후감을 작성하며 제목을 정할 때 여러 말들을 이리 조합하고 저리 붙여보다가 결국엔 빼지 못했다.
그만큼 아름다운 책이다. 건조하나 아름답다.
이렇게 표현한 가장 큰 연유로는 글쓴이가 내내 어쩌면 인생의 밑바닥을 쳤을 지도 모를 사람들에 대해 밝히지만 마냥 슬프거나 비장한 어투로 그들을 어떤 현상, 또는 어떤 대상으로써 규정하고 설명하려 들지 않아서이다. 다시 말해, 오랜 시간에 걸쳐 노마드와 워캠퍼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기까지 하나 본인을 주인공의 입장에 내세우지 않고, 그렇다고 제 3의 관찰자나 사회비판자의 관점도 아닌 위치에서 덤덤하게 기록을 읊고 또 곁에서 묵묵히 지지하는 역할을 고수하며 도로 위 찬란한 삶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장에 겪게 된 어려움을 받아들인 뒤 후련하고 당당한 삶을 살아가는 그들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 어느 경로로 그렇게 되었는가?
어느 순간부터 자가 마련이 인생의 가장 큰 목표이자 성공의 증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는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주住가 한낱 자동차인 삶’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흔히들 ‘은퇴라는 개념이 없어지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니 평생 세 번의 직업을 가지게 된다’라고 말하는데, 그 중 마지막 임기에 밴 한구석에서 식사와 취미 활동과 수면을 취하는 미래를 마주하고 싶진 않을 것이란 소리다.
아마 이것은 노인을 위한 일자리의 문제도 아니고,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이 공감의 부재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노출되지 않는 홈리스, 하우스리스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의해 발생한다.
완독을 하고 난 뒤 남은 거라곤 겨우 역지사지와 감정 이입을 통한 미니멀리즘의 재고가 다일 수도 있다. 허나 비록 소비가치관에 대한 통찰만이 이 책이 남겨주는 감계가 되더라도, 지구 저편의 어느 무수한 사람들은 동종의 생활 방식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엮이고, 개성을 드러내고, 때론 메마르고, 때론 희망차게 RV를 타고 달린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해서 지워지지 않는 생활 방식도 분명히 있는 법이다.
우연찮게도 이 책을 읽을때에 오아시스의 ‘Champagne Supernova’를 반복 재생했는데, 지금도 독후감을 쓰는 내내 틀어놓고 있다. 그 가사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How many special people change? How many lives are living strange?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특별해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삶을 살까?
‘Cus people believe that they're gonna get away for the summer.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언제나 젊음을 느낄거라고 믿고있으니까.
But you and I, we live and die. The world's still spinning round.
하지만 너와 난 그냥 살다가 죽겠지. 그럼에도 세상은 계속 돌아가.
We don't know why. Why, why, why, why.
우린 왜 그런지 모르지. 왜, 왜, 왜, 왜
갤러거 형제가 노래한 것처럼 특별하거나 비정상인 삶 모두 살아가고 있다. 어쨌거나 세상은 돌아가기에.
그럼 “무력한 희생자들도, 걱정 없는 모험가들”도 아닌 그들의 다음 행선지는 정해져있을까? 아니, 과연 우리가 향해야 할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도로 위, 갓길, 대형마트 주차장 한 켠, 넓은 공터, 부지, 사막. 미국의 곳곳에 도처한 이 장소들은 노마드가 언제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며 언어 유희와 유머가 항상 공존하는 장소이다.
여기서 ‘공동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데, 작가의 말마따나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데에 힘을 싣는 게 바로 커뮤니티이기 때문이다.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은 상호간의 “많은 가르침과 조언, 자원, 그리고 기꺼이 들어줄 귀를 가진 깊이 있고 다양한 부족들이 밖에 있기에 증명”된다.
그렇다. <노마드랜드>는 행복한 삶이든, 불행한 삶이든, 그 순간 순간들을 감내하면서 웃음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 사람간의 관계에 있단 걸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기에 나는 ‘희망’이란 한 낱말로 이 주제를 관통하고 묘사하고자 한다.
그러니 우리도 자기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노출시켜보거나 다양한 관심사를 가져보자. 그러면 언젠가 허탈한 순간이 도래한다 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보일 것이다.
미국의 마지막 자유 공간으로 주차 구역이 있다는 사실에. - P16
여성의 생애 임금은 더 적고, 누적 저축액도 적다. 그리고 여성의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 ―남성보다 평균 5년 더 오래 산다― 그 돈은 더 먼 미래까지 버텨줘야 한다. - P71
그들은 사회적 계약에서 자기 몫의 의무를 다했으나 시스템은 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 P127
"중국산 쓰레기 열네 통이 카트에 실려 있죠. 우울한 건, 그 모든 물건이 결국 쓰레기 매립지로 가게 되리란 걸 내가 알고 있었다는 거예요. 물건이 거기 도착할 때까지 들어간 모든 자원에 대해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그냥 ‘쓰고 버리자’인 거예요." - P168
무엇으로부터 숨어 있는데요? 내가 물었다. 수치스러움으로부터, 가난으로부터, 추운 날씨로부터. 그의 대답이었다. - P217
‘부적응자’란 패배자나 낙오자라는 뜻이 아니다. - P248
내가 찾아낸 대부분의 자료들은 워캠핑을, 미국인들이 집값 때문에 전통적인 주거지 밖으로 밀려나 최저임금을 벌려고 분투하는 시대의 생존 전략이라기보다는, 쾌활한 생활방식처럼, 혹은 심지어 기발한 취미처럼 느껴지게 했다. - P269
이토록 많은 가르침과 조언, 자원, 그리고 기꺼이 들어줄 귀를 가진 깊이 있고 다양한 부족들이 밖에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이것은 예전 중산층 계층의 진화일까? 우리는 현대판 수렵-채집자 계층의 등장을 보고 있는 것일까? - P290
"공유지의 무단 거주자로서 여기저기 잠깐씩 옮겨 다니면서 살고, 기생(氣生)식물처럼 뿌리가 없으며, 세금도 전혀 내지 않으면서 새로운 종류의 자동차 빈민가를 만들어내고 있는 이 떠돌이 무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 P332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지만, 국민들은 대체로 가난하며, 가난한 미국인들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도록 강요받는다(…). 가난했으나 (…) 누구보다도 존중받아 마땅했던 사람들에 관한 민간 전승이 다른 모든 국가에는 있다. 가난한 미국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조롱하고, 자신보다 잘사는 사람들을 예찬할 뿐이다. - P337
부자들은 점점 더 부자가 되는 반면 우리는 여기 앉은 채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다는 거예요. - P347
그는 소비문화에 대해, 사람들이 자신들의 짧은 삶을 얼마나 많은 쓰레기로 채우는지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 P388
그 창고는 그런 쓰레기를 사기 위해 자신의 신용을 사용하는 구매자들을 노예로 만들었어요. 그들이 그 빚을 갚기 위해 자신들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하게 하고요. - P390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 P400
이것은 임금 격차가 아니라 차라리 하나의 단절이다. - P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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