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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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다’에서 ‘노동자’로, ‘해고자’로

삶의 굽이굽이에서 온 몸으로 기록한 노동자의 삶

“일은 할만 하니?” 휴대폰단말기를 하청 받아 만드는 공장에 취업한 후배에게 묻자 긴 한숨부터 토해냈다. 아침 8시30분부터 저녁7시30분까지 11시간을 꼬박 서서 일한다. 오전, 오후 각 10분씩 정해진 휴게시간과 식사시간 40분만이 유일하게 앉을 수 있는 시간이다. 컨베이어 벨트작업이라 단 한순간도 자리를 비울 수가 없는 곳. 화장실이 급해도 10분간의 휴게시간까지 참아야 한다. 200명 남짓한 여성노동자들 사업장, 그 많은 인원이 10분 동안 화장실을 가야 하니, 그야말로 전쟁 통이다. 식당 의자에 앉을라치면 무릎 관절에서 뚝. 뚝. 소리가 나서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후루룩 밥을 먹었는지 마셨는지 모르게 해치우고나면 다시 컨베이어 벨트에 서야 한다.  

이렇게 꼬박 주 6일 일해서 받는 월급 66만원, 최저임금도 안 된다. 2008년 4월의 일이다. 첫 월급 탔다며 밥 사주겠다는 데, 자꾸만 목이 멨다. 부대찌개의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후배의 마음 같아서, 선뜻 숟가락질을 할 수 없었다. 새벽녘에 출근해야 하는 후배는 그 좋아하던 술자리도 서둘러 파하고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며칠 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님이 쓴 『소금꽃나무』를 읽었다. 이 땅 노동자로 살아가고자 했던 그녀의 이력 앞에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7~80년대 노동자라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엄혹했던 시절, ‘공돌이’ ‘공순이’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한 시절이 무섭고 또 가여워서, ‘노동자’란 말에 담겨 있는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게 더 겁나서 읽는 내내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 책은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김진숙의 삶의 기록이자 내 후배 같은, 이 땅 일하는 사람들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보고서이기도 하다. 처음 책을 보면서 우리의 노동현실을 기록한 책치고는 제목이 참 예쁘다, 했다. 사실 이 책을 가슴으로 읽게 하는 데는 그녀의 문장력도 한 몫 한다. 현장에서 몸으로 체득한 언어는 문필가의 문장보다 생동감 있고, 일하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은 한없이 따스하다. 그래도 그렇지, 눈꽃나무는 들어봤어도 소금꽃나무라니.

잎사귀도 없이 꽃만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황금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아침 조회 시간에 사람들이 ‘나래비’를 죽 서 있으면 그들의 등짝엔
허연 소금꽃이 만개하곤 했다.
내 뒤에 선 누군가는 내 등짝을 또 그렇게 보며
“ ‘화이바’ 똑바로 써라. 안전화 끄내끼 단디 매라. 작업복 단추 매매 채아라.”
그 지엄하신 훈시를 귓등으로 흘리고 있었을 게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서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러이 지는 꽃.(7쪽 책을 내며)

선박 용접공들의 등짝에 하얗게 피는 소금꽃. 나도 매일 그 꽃을 본다. 찜통같은 더위와 싸우며, 시멘트가루 먹어가며 건설현장 일용노동자로 일하는 남편의 등짝에서. 땀띠로 울긋불긋 수놓아진, 더러는 짓물러서 붉은 꽃 무덤이 되는, 국어사전에도 없는 그 꽃을. 꽃이라고 모두 아름답기만 한가. 

김진숙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3월14일 창원 시청 앞 두산중공업 해고노동자였던 배달호열사의 노제였다. 22년 동안 일한 곳에서 단지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되고 평생 벌어도 갚을 수 없는 가압류와 노조활동 중단을 요구하는 회사의 압박에 분신으로 저항하였던 사람이었다. 창원 하늘이 쩌렁쩌렁 갈라지도록 울려 퍼지는 분노와 슬픔이 묻어있는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50년 그 긴긴 세월 그 몸뚱아리 하나로 살았으면서도, 기름기 흐르게 먹여 본 적도, 늘어지게 쉬게 한 적도, 한 번 잘 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 몸뚱아리를 그에 횃불로 밝혔던, 그를 아십니까? 이 세상에서 입어보는 가장 비싼 옷이 수의가 된 지지리도 못난 사내, 그를 아십니까? (133쪽)

그 해 10월 한진중공업 35미터의 크레인 위에서 129일을 버티다 재벌의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했던 김주익열사의 주검 앞에서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에 치떨면서 피눈물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둥둥 불어 죽어도, 인명은 제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 걸 그랬나봅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20~121쪽)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저토록 절절하게 추모사를 띄워 하늘길 가는 사람 잡고, 그 길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 눈물콧물 다 짜며 꺼이꺼이 울게 할까?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조선소의 유일한 처녀용접사로 일하다가 노동조합 활동 때문에 해고되고, 20년이 넘도록 해고자이자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사람.’ 책에 요약된 김진숙의 이력은 이렇다. 어찌 이 한 문장으로 삶의 굵은 주름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책 맨 마지막에 실린 「항소이유서」에는 열여덟 살 나이에 공장생활을 시작해서 ‘시다’ ‘공순이’ ‘버스안내양’에서 ‘노동자’로, 그리고 해고자로 살아온 결코 간단치 않은 삶이 기록돼 있다.

버스 문짝에 대롱대롱 매달리듯 살아온 청춘의 시간들. 그저 남자들이 하는 일이니 돈을 더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1981년 한진중공업 용접공이 된 사람이었다.

한쪽 어깨엔 40킬로그램짜리 홀더를 메고, 또 한쪽 어깨엔 작업 공구통을 메고 저 높은 배 위를 아슬아슬한 사다리를 타고 오를 수 있을까...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만 듯이 넘어지는 철판에 깔리는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지금도 오른쪽 발목이 온전치를 못합니다. 그때 병원에 문병을 오셨던 동료 분들이 그러시더군요. “기름밥 묵기가 쉬분 줄 아나. 그래야 옳은 땜쟁이가 되는 기다. 3년 넘은 사람 중에 빙신 아닌 사람이 하나도 없다.”(258쪽)   

그렇게 옳은 땜쟁이가 되어 갔고, 그렇게 서러운 기름밥 그릇수가 쌓여 갔던 시절. 아침 출근 타각기를 찍을 때 내가 무사히 살아서 저녁 퇴근 타각기를 찍을 수 있을까 두려울 뿐이었고, 저녁 퇴근 타각기를 찍을 때면 오늘도 살아 냈구나, 안도하는 그런 생활들의 연속이었다. 괴물 같은 철판 앞에서 하루 살고, 또 내일을 걱정하는 게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때 제가 일하던 배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작업 중이던 갑판 위에서 동료 한 분이 수십 미터 바닥으로 떨어져 뇌가 수박처럼 쪼개져 즉사했습니다...관리자들이 찾아오고,,,바람도 많이 불고 몹시 춥고, 그래서 바람막이 하나 없는 바다 위 갑판 작업은 무리였다는 얘기는 하나도 없고 그저 그들이 작성해 온 문구는, 사고자가 옷을 너무 많이 껴입어, 행동이 둔해서 추락한 걸로 적혀 있고, 거기에 지장만 찍으라더군요...1년에도 수차례 일어나는 동료들의 주검 앞에 그런 보고서가 작성되었을 거고, 제가 그렇게 죽어도 저런 보고서가 작성되려니 생각하니 그저 남의 일일 수만은 없었습니다.(259쪽)

‘유가족에게 보상이라도 제대로 받게 해드리겠다’는 심정으로 한진중공업 입사 5년 차에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어용노조이어서 진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조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싸웠으나 그 결과는 해고였다. 86년 7월14일, 최초의 여성용접공이라고, 일 잘 한다며 자랑하던 회사에서 단지 노동자 권리를 말했다는 이유로 자른 것이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녀는 아직도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차림으로 봄나들이 한 번 못 해 본 청춘이었기에, 빨갱이로 찍혀 대공분실로, 감옥으로 끌려가 죽을 것만 같은 공포를 숱하게 견디며 살아왔기에, 또 기막힌 가족사를 어찌 다 감내했을까, 숙연해진다.

삶의 굽이굽이 모진 길이었지만, 언제나 치열하게 일하고 싸우는 노동자들과 함께 있었다. ‘거북선을 만드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현장노동자들의 진솔한 삶을 보았고,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을 이루고자 죽음으로 저항했던 숱한 주검들 앞에서 피눈물로 추모사를 낭독했다. 동료를 가슴에 묻고, 새로운 동료들을 거리에서 만나면서 살아온 지 20년, 그녀는 우리의 노동현실을 발바닥 굳은살로 기록했다.

하여 이 책 어느 페이지를 펼치건, 한 달 사이 핏기를 잃은 후배가, 천 일 넘게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그 안에 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며 목숨을 걸고 싸웠던 지난 시절의 분노가 2008년에서도 여전히 똑같은 상황으로 읽혀지고 있다.

기륭전자 1000일, KTX 승무원 800일, 뉴코아 330일, 이랜드 330일, 재능학습지 150일, 해고 위협 없이 일하고 싶다고, 최저임금에서 10만원만 더 받겠다고, 정규직과 차별 없이 일하고 싶다고 울부짖던 시간들이다.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한 그 처절한 시간 동안, 이들은 1인 시위, 점거투쟁, 단식투쟁, 삼보일배, 삭발투쟁,,, 그야말로 죽는 것 빼고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게다가 7월부터 비정규직법이 개악돼 시행되면서 그야말로 ‘비정규직 바다’를 이루고 있다. 

구조조정의 끝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자본이 해야 할 말을 같은 노동자가 하게 되는 이 기가 막히는 상황이야말로 신자유주의의 본질일 것입니다...철도, 이랜드, 롯데호텔, 한국항공우주산업, 부산은행 등 정규직이 연대한 비정규직 싸움은 다 승리했고, 그 승리는 정규직의 고용까지 담보했지만, 비정규직들끼리만 싸웠던 한국통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등은 다 패배해 결국은 정규직도 구조조정의 칼날 앞에 내몰려야 했습니다. 평등해야 강해진다 했습니다.(155쪽)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같은 정규직노동자로부터 차별받는 현실에서, 그녀는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미래’라며 정규직노동자들의 각성을 핏대 세워 외쳐왔다.

연대를 말하려거든 100일째 펄럭이는 천막엘 가보라.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161쪽)

미싱만 잘 밟으면 되는 공순이가 그림 잘 그렸던 기억을 간직하는 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글 잘 쓰던 미경이가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는 유서를 왼쪽 팔뚝에 새겨 넣고 고단한 삶을 정리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를 가슴으로 아는 사람, 김진숙의 꿈은 오직 하나다. “노동자 스스로 자랑스러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잔인하다. 그래도 인간의 조직이 아름다울 때가 있지 않은가. 처음으로 ‘사는 것 같다’고 느끼게 해 준 동료들, ‘철의 노동자’를 ‘사랑은 아무나 하나’처럼 부르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  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 몸이 함께 할 수 없으면 글로 함께 했던 가슴 따뜻한 노동자 김진숙.


부디 용접공으로 복직돼 내년 봄에는 하늘거리는 원피스 차림으로 봄나들이 나서는 멋진 사람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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