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이야, 너희가 희망이야 - 프랑스 최고의 작가 10인이 말하는 어린이 권리 이야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넬리 비슈 드 베르 그림, 조은미 옮김 / 푸른나무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11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아동권리의 날’이다. 어린이들도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릴 권리가 있다고 선포한 날이다. 이 책은 아동권리의 날을 기념해, 어린이의 권리 향상을 위해 활동을 하고 있는 유니세프(UNICEF)를 돕기 위해 프랑스의 작가 10명이 2005년 공동 작업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7년 11월17일 출판됐다.

어린이의 인권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전쟁, 가난, 폭력, 그리고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유전자조작 식품 등에 의한 건강의 위협까지 전방위적으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올해 초 발표된 2008세계아동현황보고서는 어린이의 인권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2만6천명이 넘는 5세 미만의 어린이가 매일 죽어가고 있다. 여전히 1억4천3백만 명의 5세 미만 아동들이 영양실조를 겪고 있다.  가난 때문에 1억 명 이상의 어린이들이 학교를 가지 못하고, 2억3천만 명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한다. 대도시 거리를 떠돌며 살아가는 어린이의 수도 1억명이나 된다. 또 25만 명의 어린이들이 소년병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수치는 인간성을 상실한 자본의 탐욕이 수많은 목숨들, 특히 어린이들의 목숨을 피로 물들이면서 만들어낸 비극적 지표이다.

유엔은 1989년 11월20일 어린이의 권리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아동권리협약을 제정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 193개국이 이 협약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전문과 54개 조항으로 구성된 이 조약은 건강하게 자랄 권리, 교육받을 권리, 놀 권리 등 어린이가 누려야 할 권리를 모두 담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 어른들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추악한 탐욕이 빚어낸 어린들의 죽음과 함께 아동권리협약은 매장된 것이다.

전쟁, 가난 등이 어린이의 인권을 공격하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란 점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의 아동인권침해 또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얘가 뭘 안다고?”라면서 어린이의 의견 묵살하기, 일기장, 소지품 검사하며 사생활을 침해하기, 두발 규제 등 아동을 인권의 주체로 인식하지 못하는 침해행위들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아동권리협약에 대해 알고 있을까? 또 얼마나 많은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 책은 어린이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시, 동화,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와 삽화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비롯한 프랑스 작가 10명이 건강할 권리, 가족을 가질 권리, 먹을 권리,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정체성의 권리, 교육받을 권리, 평화의 권리, 표현의 권리, 보호받을 권리, 평등의 권리 등 10가지 어린이의 권리를 주제로 썼다.

동화라고 해서 술술 읽을 요량이라면 오산. 프랑스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프랑스의 문학적 기풍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추리소설가, 기자, SF작가 등 참여한 작가들의 색채가 다양한데다가 깊이 있는 시각으로 에둘러 표현하고 있어서, 어떤 작품은 그 의미를 파악하는데 한참을 공들여야만 했다.

가령 ‘정체성의 권리’를 표현하고 있는 「창문 닦는 소녀」 단편(단 프랑크 작품)은 신호대기에 걸린 차들을 닦아주면서 생계를 잇는 가난한 소녀를 대신해 운전자가 다른 차들까지 세차해 준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어쨌단 거지? 이게 인권적 시각인가? 도대체 뭐가 정체성의 권리란 말이지? 한참을 머리 긁적이다가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어봤다.


"이제 소녀의 얼굴에는 나이에 맞지 않던 주름도, 어떤 학대 때문인지 모를 괴로움도 어느새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소녀는 이제야 어린 아이의 표정과 마음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어린이는 건강하고 해맑게 자라야 한다는 것, 그것이 어린이로서의 정체성의 권리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이 책은 또한 어린이의 권리에 대한 폭넓은 시각을 담고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가난과 질병, 전쟁에 고통받는 아이들의 모습만을 그리고 있지 않다. 고질적인 어린이 인권 유린의 실태는 물론, 현대 사회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어린이 권리 침해 현실에 대해서도 풍자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에 관한 단편, 「천하무적 딸기맨」(브루노 가치오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착취’하면 으레 떠오르는 아동노동착취나 성 착취(정말 심각한 인권침해이다)에서 시각을 확장시킨다. 화학약품으로 만든 과자, 음식 등 인체에 유해한 먹거리로 어린이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는(착취하고 있는) 식품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여섯 명의 뚱뚱보 아이들이 아이들의 입맛을 자극적인 화학 약품에 길들여 상품을 팔아 온 악덕 사기꾼을 납치하여 혼내주는 내용으로, 어린이의 건강을 위협하는 어른들의 무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시 형식으로 된 ‘건강할 권리’의 「세상의 아이」(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작품)는 기아로, 쓰나미로, 전쟁으로, 어른들의 방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불러가며 위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라”고, “미래는 너희에게 달려 있다”고 외치고 있다.

읽는 내내 기발한 발상에 웃음도 났지만, 부유한 나라의 아이들과 가난한 나라의 아이들의 상황을 대비하면서 그려낸  ‘먹을 권리’의 「도둑이 된 엄마」나 ‘평화의 권리’를 담은 「장, 모래밭 놀이터의 영웅」편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전쟁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넌 전쟁, 총, 죽음, 두려움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을 거야. 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시체가 널려 있더라도 넌 절대 이해할 수 없어. 왜냐고? 넌 언제든지 여길 떠나면 되잖아. 떠날 수 있는 자에겐 전쟁은 그냥 구경거리지, 전쟁이 아냐! 나도 엄마를 부르며 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엄마는 이미 죽었어. 그래, 너도 여기서 무엇인가는 느끼겠지. 그러다가 두려워지면 적당할 때를 선택하겠지. 이제는 됐다고 말이야. 그리고 넌 집으로 가는 거야. 나? 나는 여기 남겠지. 다른 곳으로 갈 데도 없고, 갈 수도 없어. 선택할 게 없다고. 이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난 총을 들어야 하고, 전쟁을 하는 거야. 그게 내 전쟁이야.” 「장, 모래밭 놀이터의 영웅」

전쟁지역의 열다섯 살 소녀의 입술이 오래도록 심장을 누른다.

‘1세계 나라의 인권’적 관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가령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학교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통해 ‘교육받을 권리’를 표현하는 내용에서는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했다-어른이나 아이들에게 인권의 감수성을 일깨워주는 데는 좋은 책이다.

한편으로는 어린이의 인권을 알리기 위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한데 뭉치는 프랑스의 문화풍토가 내심 부러웠다. 사회현실을 자양분으로 하던 문학적 토양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참에 인권의 감수성을, 어린이의 인권 가치를 담은 동화를 써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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