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 푸른숲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자고 일어나니 2008년 1월1일이었다. 일상의 한 날(日)이었다. 그렇다고 늙었다고 함부로 단정하지 말지어다. 불혹을 넘겼음에도 여전히 불혹하지 않는 것은 내 안에 호기심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젊음의 조건 아닌가.ㅋㅋㅋ

새날에 대한 특별한 감흥도 없던 내가, 새해 들어 첫 책 소개는 어지간한 고민꺼리였다. 무슨 책을 쓸까. 책장을 훑어본다. 연필 꾹꾹 눌러가며 이명박 정부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를 주제로 써볼까. 인문학/사회과학 서적 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소설, 시, 여행서적은 어떨까...

그러던 차에 한통의 메일을 받았다. 한 인터넷사이트에서 무료로 신년토정비결을 봐줬다. 올해 나의 운세는 결론적으로 운수대통이다. 단, 조건이 있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던 만사형통이요 빛이 날 거란다. 태어난 시(時)까지 넘겨야 하는 위험부담 대가로서는 손색없는 답변이다.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라. 몸뚱이로 살아라. 발바닥에 굳은살 박이도록 살아라...

보리처럼 살아라. 개처럼 살아라. “내 공부는 오직 몸뚱이로 비벼서 알아내는 것”이라며 우우우, 우우,,,컹컹, 짖어대던 진돗개 보리처럼.

김훈은 2005년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이란 부제를 단 장편소설 『개』를 냈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이 소설 속 주인공이 바로 보리다. 수몰지구에서, 갯비린내 나는 어촌마을 사람들 곁에서 개의 운명으로 힘차게 살아가는 보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김세현작가의 수묵화가 곁들여져 정말로 한편의 동화 같다.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우선 선행할 것이 바로 자신을 가다듬는 일일 테고, 마침 올해 점괴의 조언도 있고 해서, 김훈의 소설 『개』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먼 마을에, 주인 없는 개들이 울부짖었다. 개들은 못 먹어서 비쩍 말랐으나, 야생에 길들여지면서 사납게 긴장되어 있었다. 나를 보자 털을 세우며 으르렁거렸는데, 어떤 개는 다가와서 내 발등을 핥았다. 나는 개를 쓰다듬어 적개심을 달래주고, 개발바닥을 들여다보았다. 발바닥에 새카만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었다. 굳은살은 땅을 딛고 달릴 만큼 단단했고 충격을 버틸 만큼 폭신했다...” -작가의 말 중에서-

부제에도 썼듯이, 김훈은 곳곳에 버려진 강토를 자전거로 싸돌아다녔다. 그 길에서 만난 살아있는 것들의 비릿하고도 싱싱한 생명에 대한 기록이다. 김훈은 “세상의 개들을 대신해서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는 것을, 인간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알게 될 때까지 짖고 또 짖기”로 작정했으며, 그 순간부터 그는 굳은살 단단하게 박인 보리였다. 읽는 내내 나도, ‘충격을 버틸 만큼 푹신한’ 굳은살을 갖기 위해 이 세상을 싸돌아다닐 준비태세를 하며 우우우, 컹컹, 짖는다.

보리는 수몰지구에서 곧 보따리를 싸야 할 노부부집에서 5형제 중 세 번째로 태어난, 진돗개 수놈이었다. 머리에서 꼬리까지 신바람이 뻗쳐 있어서, 하루가 신나고 바쁜 개다.

“개로 태어났으므로 나는 내 고향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은 사람들에게나 대단하고, 나는 내 몸뚱이로 뒹구는 흙과 햇볕의 냄새가 중요하다...사람들은 어느 고장의 이름을 말해주어야만 겨우 어떤 땅인지를 짐작할 수 있지만, 개들은 늘 바쁘고 신나서 고향의 이름 따위는 하찮은 쓰레기일 뿐이다. 개들은, 안개냄새 나는 고장, 갯비린내 나는 고장, 새들이 날개 치는 소리 나는 고장, 처럼 몸 속에서부터 분명하게 고향을 기억한다.”(첫 장)

냄새로 세상을 알아가는 개들에게, 공부란 부지런히 몸을 놀리는 일이다. 세상의 온갖 구석구석을 몸뚱이로 부딪치고 뒹굴면서 그 느낌을 자기의 것으로 삼는 것, 그래서 ‘개의 공부는 매우 복잡하다.’ 온 천지가 개들의 선생님이며, 이 많은 선생님들을 찾아가서 함께 뒹굴면서 스스로 배우는 거라, ‘정확하고도 빈틈없는 공부’다. 여기서 관건은 신바람이다. 신바람이 있어야 이 공부를 끝까지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보리는 아침에 나가 저녁나절까지 종일 싸돌아다녀도 늘, 하루가 부족하다.

신바람은 슬픔과 고통을 견뎌내는 힘이기도 하다. 본디 개는 슬픔을 짊어지고 가는 족속이다. 눈치 없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투성이 되기 다반사고, 언제 가마솥에서 흔적 없이 녹아 버릴지 모르는 척박한 운명이다. 보리의 엄마가 그러했고, 가슴 가득 환하게 벚꽃 흩날리게 했던 첫사랑 흰순이도 그러했다.

“그날, 엄마는 주인할머니한테 끌려가서 죽도록 매를 맞았어. 엄마는 꿇어앉아서 주둥이를 땅에 박은 채 비명 한마디도 지르지 않고 그 모진 매를 다 맞았어...잡아먹은 게 아닌데, 배를 채우려고 먹은 게 아닌데, 제자리로 돌려보낸 것인데...주인할머니는 그걸 잡아먹었다고 하면서 엄마를 마구 때렸어....엄마의 모든 슬픔은 엄마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것이 엄마의 본래의 마음이야. 그러니까, 슬픔조차도 본래부터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지.”(20~23쪽)

엄마는 태어날 때 앞다리를 다쳐 시름시름 죽어가는 맏이를 삼켜버렸고, 착하지만 눈치 없는 주인장 부부는 제 새끼 잡아먹은 놈이라며 두들겨 팼다. 엄마는 원래 있던 어둡고 포근한 자궁으로 자식을 돌려보낸 것인데, 사람들은 모른다.

‘깊게 들여다보는 눈을 가진’ ‘풀이 돋아나듯이 바람이 불어오듯이 저절로 이 세상에 태어난’ 첫사랑 흰순이가 옆집 군대 가는 아들 몸보신 감으로 죽은 날, 흰순이의 ‘앞발의 굳은살이 밤새도록 마음에 어른거려’ 잠들지 못했던 보리다.

몸뚱이로 살아야 하는 족속들에게 슬픔도, 기쁨도 저절로 오고, 가는 것이다. 온몸에 신바람이 뻗친 개들에게, 엄마의, 자신의 본연의 슬픔은 다가올 기쁨 앞에서 무기력하다.

수몰지구를 떠나 새로운 냄새로 가득한 어촌마을을 알아가기엔 하루가 바쁘고, 벅차다. 새 주인은 노부부네 둘째아들로, 바닷가에서 통통배로 하루의 생계만큼 물고기를 잡는 어부였다. 바닷가에서 돌아온 주인장의 배를 뭍에 정박시키면서, 비릿한 새벽안개 냄새를 좋아했고, 아이들을 학교까지 안내하면서 만나는 풀들, 벼의 싱그러운 냄새에 가슴 벅찼지만, 보리가 사랑한 냄새는 따로 있다.

“배에서 내릴 때 주인님의 몸에서는 경유냄새가 났다. 주인님의 몸에서 나는 경유냄새는 고단하고도 힘찬 냄새였는데, 어딘지 쓸쓸한 슬픔도 느껴지는 냄새였다. 나는 그 경유냄새를 아침바다의 차갑고 싱싱한 안개냄새보다 더 사랑했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이 풍기는 냄새였고, 내가 지키고 따르고 사랑해야 하는 냄새였다.”(69쪽)

그 주인은 비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바다에 나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보리야”하면서 된장국에 밥 말아주던, 배추밭에 주저앉아 “이 땅을 못 떠난다.”며 울부짖던 주인할머니의 구수한 냄새와도 이별해야 한다.

고향에서 쫓겨나야 하는 사람들, 하루의 생계를 위해 고단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 눈치 없는 사람들, 죽음...그래도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의 아름다움을 결코 놓지 않았던 보리는 ‘내 발바닥 굳은살로는 건너갈 수 없는 사람들의 세상에 가슴이 저렸다.’

사랑해야 할 냄새들과의 이별 후 어촌마을에서의 보리의 마지막 며칠은 ‘가을볕에 말라서 바스락거렸고 습기 빠진 바람 속에서 가벼웠다.’ 그러나 지나간 슬픔보다 다가올 기쁨에 충만해지는 게 개의 유전적 기질 아닌가. 몸뚱이로 살아야 할, 날 것의 비릿한 냄새를 지닌 족속들이 그러하듯.

“어디로 가든 거기에는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저녁의 노을이 나에게 말을 걸어올 것이고 세상의 온갖 냄새들로 내 콧구멍은 벌름거릴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여전히 흰순이와 악돌이 들이 살아 있을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여전히 냄새 맡고 핥아먹고 싸워야 할 것이었다. 어디로 가든, 내 발바닥의 굳은살이 그 땅을 밟을 것이고 나는 굳은살의 탄력으로 땅 위를 달리게 될 것이다.“ (230~231쪽)

개의 운명에 갇혀 살아가는 보리를 숙명론으로 받아들여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건 정말 눈치 없는 사람이다. 남성주의시각이 살짝 엿보이기도 하지만, 읽는 내내 정작 내 신경을 건드린 건 오히려 내 신체다. 내 미끈한 발바닥에 마음이 불편했다.

점점 손발의 쓰임새가 줄어드는 삶에서, 발바닥의 굳은살이 이 세상의 모든 것과 맞먹는 개처럼 살고 싶다.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충격에도 거뜬히 일어나, 핥고, 싸울 수 있는, 단단하고 야무진 굳은살을 만들어야겠다. 보리야, “개들아, 죽지 마라.”




                                                                   2008.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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