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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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 조지 부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커트 보네거트 : 역사가 뭔지도 모르는 대통령이니까요. 게다가 주변에 있는 보좌관들도 역사에 도무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위대한 정치가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져 있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낡아 빠진 것, 즉 전제정치로 되돌아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자기들은 창조적인 사람들이란 착각에 빠져 있다고요. -『시대의 양심 20인 세상의 진실을 말하다』(데이비드 바사미언 인터뷰집)에서-

“부시는 역사를 모르니까 내가 하려는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다.”면서 인터뷰를 시작하는 그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내로라하는 진보적 인사들조차 이처럼 대놓고 부시를 말한 이가 있었던가? 굉장한 내공을 가졌군. 그를 최근에서야 알았다는 게 정말로 부끄러웠다.

늘 유머를 달고 다녔던 팔순의 그가 자본주의의 문명의 야만성과 미국의 폭력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는 내내, 유쾌했다. 통쾌했다. 단 여섯 장 분량의 그의 인터뷰를 읽고 완전히 그의 팬이 되었다. 블랙유머의 내공을 부러워하면서.

그는 미국 버지니아대학 총기사건으로 32명이 죽기 엿새 전, 2007년 4월11일 84세로 세상을 떴다. 소설가이자 풍자가였으며 휴머니스트였던 그를 잃은 것은 분명 불행이다. 최근 그가 죽기 5년 전 미국 잡지「인디스타임즈 In These Times」에 연재한 칼럼들을 모아 엮은 에세이집『나라 없는 사람』이 나왔다.


‘선이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천사들이 마피아들과 함께 전선을 조직해 맞설 수 있다면!’  저녁식탁자리 가족들과의 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유머를 연구했던 그의 내공은 첫 페이지에서부터 빛났다. 

책 전체를 통해 그는 우주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살 수 있는 푸른 행성을 파괴하는 ‘화석연료 중독자’들과 미국-특히 부시와 그의 수뇌부-의 폭력에 대해 일갈했다. 그의 팬들은 유고집이 된 이 책을 사랑했지만, 부시와 그의 집단들은 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정말로 부시를 미워했다. “내가 죽기보다 싫었던 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열한 세 사람의 이름이 부시, 딕, 콜린이 될 때까지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고 죽음을 목전에 둔 84세의 노인은 고백한다.

“우리 대통령이 기독교도였던가? 아돌프 히틀러도 기독교도였다.” 과거 나치가 그랬듯,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장본인들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의 금고를 털어 자신의 호주머니를 채우고 있는, 양심도 없고 동정심이나 수치심조차 없는 자들-권력에 취한 침팬지-, 이런 꼴통들과 한통속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는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우리의 자유와 정의를 위협해서 베트남을, 이라크를 침략했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는 뻔한 답 대신에 미국의 본질에 대해 반문한다.

“네이팜탄은 하버드에서 발명되었다. ‘진리(veritas)'란 그런 것인가?” “1844년 카를 마르크스는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다’라고 말했다. 마르크스가 이 말을 했을 때, 미국은 노예제도를 합법적으로 지닌 나라였다. 자비로운 하나님의 눈에도 누가 더 밉게 보였겠는가? 마르크스였겠는가, 미국이었겠는가?”

최신식 기계를 증오하는 러다이트라고 불렸던 그는 이 말을 마음에 쏙 들어했다.  불과 이백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완전히 망가뜨린 건 화석연료다.

“생각해보라. 영국인 마이클 패러데이가 최초의 발전기를 만든 것은 불과 백칠십이 년 전이었고, 카를 벤츠가 백십구년 전에 내연기관으로 움직이는 최초의 자동차를 만들었고, 미국 최초로 유정을 뚫은 것은 백사십오년 전의 일이었다. 라이트형제는 백일년 전에 최초의 비행기를 만들어 띄웠다. 그 연료는 가솔린이었다.”

우리는 ‘중독 사실을 부인하는 중증의 화석연료 중독자’가 되었고, ‘지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비트랩이 되어버렸다.’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끌어모으기 위해 미국 정부와 더러운 기업들은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천성적으로 유머가 풍부했던 그는 말년에 우울했다. 때로는 유머가 정곡을 명쾌하게 찌르는 마력을 지니지만, 미치광이 부시와 꼴통집단이 널뛰는 세상에서 유머의 한계는 명확해진다. 정말로 화성인이 우리를 침공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랄 정도였으니. 그래도 그는 희망의 끈을 놓치는 않았다. 

출산을 앞둔 한 여성팬이 무서운 세상에 아이가 태어나는 게 걱정된다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해 주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 아기가 조지 부시처럼 되면 어쩌려고!
만일 운이 좋다면 가난한 사람도 비만이 될 수 있는 사회에서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불운하다면 국가적 의료보험이나 제대로 된 공교육제도가 없고, 독극물주사(사형방법의 일종)와 전쟁이 오락거리가 되며, 대학에 가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드는 사회에서 태어날 것이다. 만일 아기가 캐나다, 스웨덴 같은 곳에서 태어난다면 그렇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이프섹스를 하든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라.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대신, 나에게 삶의 가치를 느끼게 해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음악(특히 재즈에 상당한 조예가 깊었다) 외에도 내가 만났던 성인들로, 그런 사람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성인이란 부도덕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인들에게, 우리에게 간곡하게 당부한다.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미국민 대다수가 미국 정부가 얼마나 우둔한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미국 정부가 얼마나 탐욕스럽고 부도덕한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역사도 모르는 부시와 그의 수뇌부들 보다 현명해지라고. 그리하여 당신의 생명과 우리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존경했던 사회주의자 유진 데브스의 말을 인용해 커트 보네거트는 지금도 우리에게 속닥거리고 있다. 

“하층계급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하층계급입니다. 범죄인자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나는 범죄형입니다. 구속된 영혼이 존재하는 한 나는 자유롭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가재처럼 기어 나올 때 당신은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가?

                                                                                                              2007.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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