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신성가족 - 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희망제작소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7
김두식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기억
그가 경찰서에 끌려갔던 것은 1991년 11월이었다. 2년여에 걸친 수배생활로 초췌해질 대로 초췌해진 모습으로 그는 오동동아케이드 앞 전화박스에 잠복해있던 형사에게 덜미를 잡혔다. 굵은 뿔테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수첩에 사진을 끼워 넣고 수없이 쳐다보았을 그를 그들은 알아보았다. 좁디좁은 사제 승용차에 전리품처럼 던져진 그는 사복들의 만세소리와 머리위로 달려드는 붉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모든 것을 체념했었다.

다음날 아침, 유치장에서 간신히 눈을 뗀 그를 구경하기 위해 출근하는 경찰관들이 몰려들었다. 그중에 꽤 높은 듯이 보이는 정복차림이 말했다. “음~ 듣던 대로 그렇게 잘 생긴 것은 아니네.” 그러자 옆에 있던 형사가 얼른 말을 받았다. “아닙니다. 계속 쫓겨 다닌 데다 수염도 못 깎고 세수도 안 해서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그는 그저 우리에 갇힌 원숭이였다.  

전날 밤, 모두들 잠든 시간에 공중전화 박스에서 잠복하던 형사가 그를 불러내었다. 수갑은 물론이고 양발에 채운 족쇄를 끌며 컴컴한 지하실로 가자 형사는 통닭 한 마리와 소주 몇 병을 사놓고 기다렸다. 그러면서 그에게 소주를 부어주고 담배를 권하며 말했다. “이제 마음이 편하제? 진작 들어왔으면 고생을 덜 했을 거 아이가. 이자, 모든 걸 잊고 소주나 한잔해라.”

형사는 일계급 특진을 했다고 했다. 그에게 붙었던 현상금 이백만 원을 미리 가불해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형사는 그에게 혹시 잘 아는 변호사가 있냐고 물었다. 만약 아는 변호사가 없다면 자기가 소개해줄 수 있다고 했다. 그 김모 변호사는 매우 훌륭한 법조인이고 그분을 선임한다면 아마도 경찰조서도 수월할 것이라는 조언도 겸해서…

그는 형사의 제안이 매우 고마웠지만,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미 구속된 사실을 바깥에 있는 노조의 동지들이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이 남은 일은 처리하지 않겠느냐고 말해주었다. 자기가 할 일은 이제 형무소에 가서 편히 쉬는 일뿐이라고… 그러자 형사는 다시 잘 생각해보라는 말과 함께 그를 다시 유치장으로 밀어 넣었다.

고독하고 절대적인, 그러나 자기만족으로 함께 부패하는 신성가족이 된다는 것
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거리에서 유치장을 거쳐 교도소로 가던 바로 그해 가을, 『불멸의 신성가족』(이하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사법시험 합격통보를 받았다. 1991년 9월 19일, 저자는 네 편의 홍콩느와르와 함께 뒹굴 참이었다. 다음날이면 백수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가 결판나는 날이었기 때문에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오후 4시, 저자는 미리 백수인생은 끝났으며 드디어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통보받았다. 어쩌면 발표일보다 미리 결과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신성가족에 대한 예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그렇지는 않았겠지만. 신성가족은 맑스와 엥겔스의 첫 번째 공동저작 『신성가족, ‘비판적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 브루노 바우어와 그 일파를 논박한다』에서 유래한 말이다.

저자는 검찰과 법원, 변호사로 이루어진 법조계를 신성가족에 비유했다. 신성가족. 맑스에 의하면 신성가족은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 해방된… 고독한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였다. 이 책의 저자 김두식은 그가 찬바람 부는 거리를 떠돌다 형무소로 향할 때 고시생의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그 신성가족에 입문한 것이다.

다음날부터 저자에 대한 예우는 당장 달라졌다. 친척들의 모임에서조차 사람들이 자기와 앞다투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대한 겸손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저자가 검사를 그만 두었을 때 어머니로부터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아마 이런 이야기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정도의 감수성을 가진 저자였기에 검찰생활을 오래 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금은 대학교수다. 

“두식아, 이모가 그러는데 전에는 안 그러더니 네가 검사가 된 이후로는 젊은 애가 왜 늘 뒷짐을 지고 걷는지, 애가 좀 이상해졌나 생각했대. 어른들을 모신 자리에서도 왜 늘 중심에 있으려고 하는지, 쟤가 원래는 안 그랬는데 검사가 되더니 아예 영감노릇을 하려나 생각했다고 하더라.”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는 교도소에서 두 번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검찰 유치장에서 차례를 기다렸다가 포승줄에 묶인 채로 검사실로 가서 바로 앞 순서가 끝나기를 기다렸는데, 세 명의 소년수들이었다. 조사는 서기가 대신하고 있었으며 검사는 의자를 창가로 돌린 채 자고 있었다. 한참을 자던 검사는 배가 고팠던지 일어나 식당에 간다며 나가려다 나란히 묶여있는 소년들을 쳐다보았다. 

소년들을 권태로운 눈길로 물끄러미 쳐다보던 검사는 갑자기 책상위에 있던 서류철을 집어 들고 소년들의 머리를 차례로 내리쳤다. “이 버러지만도 못한 놈들. 똑바로 다 불어.” 그러더니 구석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 “이건 또 뭐야?” “네, 그 친구는 시국사범입니다.” “그래?” 검사는 그를 한심하다는 듯 한참을 내려다보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그때 생각했다. “이런, 제길, 저놈들은 내가 누군지 관심도 없구나. 아예 누군지도 모르고 있어. 그러면서 무슨 검사랍시고.” 당시로서는 그래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그는 자존심에 꽤나 상처를 입었다. 그때는 한창 피가 끓는 젊을 때였으니까 그가 상처를 입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검사의 입장에서는 매우 귀찮은 범법자의 한 명이었을 테지.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공소장이 교도소 안으로 배달되었고 그는 재판을 받으러 법정에 나가게 되었다. 재판 첫날, 구속 된지 거의 두 달 만에 잡힌 재판일정이었다. 오랜만의 외출에 설렘 반 재판에 대한 불안함 반으로 푸른 수의에 수갑을 차고 법정에 앉았다. 간단한 인정신문이 끝나고 검사가 무엇인가를 읽기 시작 하고 이어 판사가 뭐라고 중얼대더니 그만 일어나란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시 유치장에 들어가는 그를 향해 간수가 설명해주었다. “속행이야. 4주 속행. 4주 후에 다시 재판을 한단 말이지.” 허탈했다. 그는 오늘의 재판을 위해 두 달 동안 감방에서 준비를 했다. “우리는 왜 민주노조를 만들었으며 파업을 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아니 그는 그보다 자신을 세워두고 하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내가 판사하고 이미 이야기를 다 했다니까요"
그렇게 재판은 4주에 한 번씩 열렸으며 4개월을 끌었다. 그러니까 1심 재판의 미결수로써 그는 무려 6개월을 감옥에 갇혀 있었던 셈이다. 중간에 설날연휴가 끼었을 때는 한 파스를 거르기도 했다. 그가 감옥에서 겪을 하루의 고통 따위는 아무도 안중에 없는 듯했다. 마침내 6개월 만에 검사의 구형을 받고 최후진술을 할 기회를 얻었다.

4개월 동안 이어진 재판에서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자기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속삭였었다. 그는 그게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왜? 내가 이럴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변호사는 면담 자리에서 그에게 말했었다. “그냥 가만히 앉아 계세요.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판사하고도 이야기를 다 했어요.”

담당 변호사는 말하자면, 그에게 반성하는 표정으로 피고석에 묵묵히 앉아 있기를 원했다. 그럼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거였다. 이미 판사하고도 이야기가 끝났다고 했다. 그럼 이 재판은 뭔가? 변호사는 그가 실형을 얼마나 많이 살게 될 건지보다 어떻게든 자기 행동의 이유를 말하고 싶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를 못했다.

변호사는 최후진술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그냥 선처를 바란다는 말만 하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공장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고 왜 노동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그리고 만약 실정법을 어긴 것이 있다면 당당하게 벌을 받겠지만,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며 장황하게 최후진술을 하고 말았다.

6개월을 갇혀있는 동안 공식 면담 외에 한 번도 대화가 없었던 변호사는 일부러 검찰유치장에 앉아있는 그를 찾아왔다. 변호사는 버럭 화를 내었다. 왜 시키지 않은 짓을 해서 일을 망치느냐는 거였다. 그러면서 자기는 모르겠으니 이후의 일은 책임질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변호사에게 말했다. “책임질 필요 없으십니다. 살아도 제가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망제작소의 프로젝트 '우리시대 희망찾기'
저자는 이미 2004년에 『헌법의 풍경』이란 책을 통해 법조사회의 비리에 대하여 신랄한 비판을 한 바가 있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책도 반드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법조사회가 얼마나 부패했으며 그 피해를 국민들이 얼마나 짊어져야만 할 것인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이 책은 희망제작소가 진행한 <우리시대 희망찾기> 프로젝트 중 ‘사법’ 분야 연구의 결과물이다. 이 책의 저자는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렸다고 했다. 그 스스로 사법시험이 보장해준 특권을 버렸다고는 하지만, 그는 여전히 법조계의 한사람이었으며 젊은 나이에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담스럽고 두렵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처음엔 무조건 이유 없이 거절하려고 했지만 법학분야에선 흔치 않은 질적 연구란 점이 묘한 흥미를 끌었다. 질적 연구란 문제를 정해놓고 여러 가지 가설을 제시하며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수집하는 양적 연구와 달리 대화를 통해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상상하고 창조하도록 돕는 실천적 수단의 하나다. <우리시대 희망찾기>는 심층면담을 질적 연구방법으로 채택했다.   

저자에게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내용을 녹취하여 분석하고 재구성하여 책을 집필한다는 것은 양적 연구조차 거의 하지 않는 법학분야에서는 흔치 않은 기회로서 여러 모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양적 연구나 질적 연구, 혹은 연역법이나 귀납법과 같은 전문적이고 고리타분한 느낌은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은 한적한 대포집에 앉아 저자의 경험담을 듣는 것처럼 편안하다. 그의 글은 법조인 출신답지 않게 매우 친절하고 부드럽다. 그에게서는 신성가족의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고백했듯이 끊임없이 겸손해지려고 노력했던 탓이기도 하겠지만, 이 책의 내용이 말하듯 치열한 자기반성의 결과였을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법조계의 검은 커넥션을, 그러나 부드럽고 친절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
내가 이 책 이야기를 하면서 왜 ‘그’에게 들었던 오래된 기억을 먼저 들추었을까? 그것은 오래 전 들었던 그의 경험담 속에는 이 책에서 통렬히 비판하는 신성가족의 비리가 태연히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한때 검사였던 저자가 만난 여러 명의 현직 판검사, 변호사의 입을 통해 밝혀지는 거대한 커넥션의 뿌리는, 그러나 우리가 이미 익히 알고 있고 겪기도 했던 실체들 중 일부였던 것이다.

이토록 짧은―또는 짧아야만 하는―서평으로 신성가족이 만들어놓은 검은 실체를 모두 보여준다는 것은 무리다. 그걸 모두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차분한 설명도 들어있다. 신영철 사태는 신영철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아니라 신성가족의 문제였다. 

이 책을 쓰게 된 연구프로젝트는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신영철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모든 작업을 마치고 집필 작업에 들어갔으며 출판을 준비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 책 속에 이미 신영철 사태가 예견되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신영철 사태는 신성가족으로 말하자면, 그저 지극히 자연스럽고 온당한 하나의 일상이었다.

대법관은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최후의 목적지다. 그러나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하나의 사건에 이름만 빌려주고도 수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다는 소문은 대법관 자리가 순수한 명예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현실을 절감케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도 대법관 출신의 변호사 시절 사건을 수임했지만 변론은 김앤장이 도맡았던 때문에 명의만 빌려준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에 시달렸었다.

이 대법원장이 여기에 발끈해 세무자료까지 제출하며 자신의 청렴을 강조한 것은 나름대로 절제한 자신의 변호사 생활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대법관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한 5년 동안 60억 원에 달하는 수임료를 벌어들이는 기록을 세운다. 그렇게 청렴에 자신 있다던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 정도라면 다른 대법관 출신 변호사들의 수입은 어느 정도일까.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
이 책의 주제들은 우리에게 하나같이 낯설지 않은 것들이다. ‘전관예우’ ‘거절할 수 없는 돈’ ‘청탁’ ‘압력’ ‘평판’… 신영철이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이름으로 현직 재판관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이 이 모든 주제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자신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원장의 전화에 헌법상 재판권 독립 운운하며 맞설 수 있었을까?

슬픈 일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사법시스템이 신성가족에 점령당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책 속의 구술자들이 말하듯 억울한 일을 당해도 법에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봐야 나만 더 힘들어지고 내 생활만 파탄 날 뿐이니까…’ 의외로 사법제도에 대한 불신은 심각했다. 변 교수라고 밝힌 한 구술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기업들이 노조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민주노총의 집계에 따르면 한때 노조원에게 요구한 손해배상의 규모가 2000억 원을 넘어선 적도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법률남용은 ‘모든 저항과 자기 권리 구제에 따른 손실을 개인에게 책임지게 함으로써 실제로는 법으로 저항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손해액을 계산하는 것도 결국은 자본가와 법률가들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이래로 법은 완전히 자본의 하수인이 되었으며, 약자가 몸을 일으키는 순간 불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우리 사법시스템에 대한 변 교수의 통찰에 귀 기울일 점이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우리 사법시스템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의 문제이다.

판검사들이 제아무리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존재는 거대한 신성가족에 파묻힌 그들을 결국은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원치 않으나 남들이 다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게 되는 이 거절할 수 없는 돈의 정체를 이 책은 신성가족이란 이름으로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도 신성가족이 만든 관계망이 만들어낸 일각일 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결국 이 거절할 수 없는 돈과 신영철의 eMail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커넥션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저자가 말한 신성가족의 관계망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얻게 될 엄청난 부도 있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연구에 응해준 현직 판검사 출신 구술자들은 “판검사들은 어떤 경우에 돈을 받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어야 하고, 둘째, 잘 아는 사람들, 특히 판검사 생활을 함께 했던 변호사들의 돈이어야 하며, 셋째, 액수가 너무 크지 않아야 한다. 경우에 따라 ‘거절할 수 없는’ 인간관계가 개입되면 돈이 좋아서가 아니라, 대열을 무너뜨릴 수 없어서 받아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들은 성실하게 면담에 응하기 했지만 역시 신성가족의 일원이란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럼 판검사들에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돈은 누구의 돈일까? 아마도 준(準)국가에 해당하는 삼성의 돈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자기가 맡은 삼성 관련 사건이 없는데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이 꾸준하게 몇백만 원 수준의 돈을 “좋은데 쓰시라”며 가져다 준다면? 이 안전하고 지속적인 돈을 누가 거절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저자는 돈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아니라고 말한다. 면담을 진행할수록 문제는 돈이 아니며 바로 ‘거절할 수 없는 돈’을 만들어내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일부 판검사들이 그냥 돈이 좋아, 골프가 좋아, 술이 좋아 아무한테나 접대를 받는 게 문제라면 그것은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 썩은 사과는 골라내면 그만이니까…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그 관계망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영철 대법관 사태의 본질도 그 관계망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그 관계망을 이해하게 되면 그 관계망에서 자라온 판검사들이 현 법조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실정으로부터 몇 차례의 사법파동을 더 겪어야만 해소될 것이라는 슬픈 현실도 보게 될 것이다. 

『불멸의 신성가족』이 신성가족을 향한 고독한 투쟁이 되지 않기를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모든 국민이 한사람도 빼놓지 말고 읽었으면 하고 바란다. 특히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이 책을 사서 읽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사서 읽는 자체도 대한민국을 깨끗하게 만드는 시민운동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법조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 책을 읽으며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서 우선 나부터 이 책을 내 주변의 친구들과 내가 속한 단체의 동료들에게 사서 읽기를 권할 생각이다. 말로만 사법비리를 탓하고 개혁을 외칠 것이 아니라 직접 이 책을 사서 읽는 것부터 실천하자. 이 책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사법개혁은 가까워질 것이며, 민주주의도 그만큼 넓어지지 않겠느냐고 말하면서 말이다. 

우리 모두는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그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우리는 늘 법속에서 법과 함께 살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동안에도 신성가족은 끊임없이 자기들만의 규율과 질서를 만들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신영철 대법관 사태처럼 신성가족들이 저지르는 사법비리는 운명인가? ―나는 신영철의 행동이 대법관이 되기 위한 포석의 하나였고, 대법관이란 자리는 궁극적으로 엄청난 돈을 보장하는 자리란 점에서 확실히 비리라고 생각한다―박재영 판사처럼 저항수단은 오로지 사표를 던지는 길밖에 없는가? 그렇지 않다.

신성가족을 만들어낸 것은 실은 다름 아닌 우리들이기 때문에―사실은 신성가족을 비판하는 우리도 전관변호사를 찾지 않나―, 결자해지란 말처럼 매듭을 풀 책임도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할 것이고 그 힘과 지혜도 우리에게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매듭을 풀어가는 출발은 현실을 아는 것이고 분노할 줄 아는 것이 아닐까. 

바로 이 책 『불멸의 신성가족』에는 숨겨진 현실을 까발기고 분노하는 마음을 담아놓았다. 다른 이들도 이 책을 읽다보면 원래는 우리 모두가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을 하나씩 깨닫는 분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신영철 같은 부패한 인물들이 사법부에서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란다.        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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