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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 오백년 3 - 조선야사실록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네 권으로 묶여 출간된 책의 제목은 "오백년"이다. 표지에는 "조선야사실록"이라는 부제도 붙어 있다(사실 "야사"와 "실록"은 함께 쓰이기에는 조금 어색하다). 제목은 "오백년"이지만, 네 번째 책은 성종으로 끝맺고, 함께 출간된 "연산군"이 세 권짜리이므로, 아마도 "야사로 보는 조선왕조 오백년" 정도를 꿈꿨을 저자의 야심은 연산군의 폐위로 접어야 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만화의 출판문화가 자리잡히기 전이므로, 신문사와의 문제가 있던 게 아닐까. 아무튼 "오백년"(그리고 뒤이은 "연산군")은 제목과는 달리 조선왕조 초기 백여 년을 다루는 데에서 끝이 난다.
이 시리즈에 대한 유일한 불만은 나머지 사백 년을 다루지 못하고 백 년에서 끝났다는 점 뿐이다. 선생의 필치는 여전히 대범하며, 골계미는 명불허전. "이긴 자"들에 대한 야유는 예술가의 특권일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패배한 자"들이 이겼더라면 역사가 어찌 되었으리라는 등의 무책임한 선동도 하지 않는다. 역사에도, 심지어 야사에도 제대로 남지 못한 자들을 오히려 위로한다.
[아래는 제3권에 대해서만]
제2권의 말미부터 제3권을 통틀어, 그리고 무려 제4권의 앞부분까지 세조 시대의 야사이다. 이어지는 세 권짜리 "연산군"을 제외하면 "오백년" 시리즈 중에 가장 압도적인 분량이라고 할 수 있다. 소개된 야사들도 그다지 낯설지 않고, 그러고 보면 조선 시대 국왕 중에 가장 야사가 많은 왕 중에 하나인 것도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세조가 즉위 기간이 엄청나게 긴 것인가 하면, 불과 13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야사에서 홀대받는 성종의 재위 기간 25년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세조에 대한 야사가 많은 것은 무엇일까. 그만큼 세조의 쿠데타에 의문을 갖는 민심이 강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비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한편으로는 세조 시기에 국정이 안정되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 상황에서 세조의 인간적인 취약한 점(악몽이라거나 피부병 등)이라거나 뉘우침(혹은 뉘우치기를 바라는 민간의 마음)을 다루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으리라고 생각할 만하다.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몰래 도망쳐 살았다는 이야기도 고종 때 이야기책인 [금계필담]에 실린 이야기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 전혀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두 역사 인물을 '이야기'에서나마 화해시키려는 민심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흥미로운 것은, 수양대군이 김종서를 살해하는 장면이야말로 어느 이야기보다 드라마틱한 장면일 것인데, 이 책에서는 상세히 다루고 있지 않다. 그 장면은 정사 중의 정사, 조선왕조실록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은 역시, "야사"를 다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