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혀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조경란이 오랜만에 장편 소설을 썼고, 그 소설의 배경이 요리와 관련된 것이라기에 주저 없이 사서 기대에 찬 마음으로 읽었다. (물론, 다른 수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구입한 시기와 실제로 읽은 시기는 몇 달간의 간격이 있음은 인정해야 겠다.)
책의 형식도, 디자인도 흐음...제법 트렌디해보이는 걸...마치 트렌디하고 쿨한 일본 소설 같아 보인다고 생각하며 부담 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조경란은 한국 작가였다. 사람마다 트렌디한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서) 다 다르겠지만 내가 일본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담백한 문체, 편안하게 물 흐르듯 읽히는 스토리라인 때문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작가들은 굉장히 멋을 부린 문체로 꼬고 또 꼬아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공통점과 스토리라인이 억지스럽다 (아마도 그 멋 부린 문체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는 공통점이 있다. 작가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뭐, 일본 소설의 경우에는 일본 소설을 한국어로 번역한 번역본이기 때문에 단순화된 문체가 되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모국어라고 해서 꼭 문장을 뒤틀고 복잡하게 만들어야만 작가라고 할 수 있다는 건 좀 우습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는, 한국 소설들은 같은 주제를 다루더라도 이상하게 무섭고 너무 진지하다. 너무 진지하다 못해 분위기가 참...추리해진다. 왜 그렇게 추적추적 우울해야만 할까?
조경란의 단편집 '불란서 안경원'이 괜찮았던 기억이 있어 이번 소설도 기대를 했었다. 그보다는 좀 더 가벼울 것 같다는 "겉모습" 때문에 더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배경이 트렌디했을 뿐 조경란은 조경란이었다. 왜?라는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하나도 없었다. 왜 여주인공이 갑자기 그런 돌발적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동기가 충분히 설명이 안 되었으니까)행동을 했는지, 왜 알콜중독자인 삼촌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동기도 없고, 왜 남자친구는 주인공을 떠나버린 것인지 (아, 예쁜 전직 모델한테 가버린 것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고 한다면 뭐 딱히 할 말은 없다만...), 왜 6개월이나 지나서야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가버린 두 사람에 처절한 복수를 한 것이지 등등 도대체가 구성이 너무 엉성한 것이다.어떻게 보면 구성은 매우 심플하다. 음식과 남자가 전부였던 여자가 남자를 잃고 음식으로 그 남자에게 복수한다는 플랏. 그러나 처음에서 끝으로 가는 여정이 설명이 안 되니 공감이 가지를 않는다.
물론 모든 소설의 스토리가 앞뒤가 맞아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황당하니까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훨씬 더 황당하고 비논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만 "공감"은 잘 만들어진 소설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덕목이라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