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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일용이 -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두 번째 만남

 대학에 다닐 때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에 어른거리는 아이들을 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히 나는 학원에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때 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니 달력 한 장은 건너 뛴 것처럼 한달이 지났다.

 

우리반 일용이

 토끼같은 유치원생들이 몰려와 열심히 '고,노,도,로.......'를 외우다 빠지면 강아지 같은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앉아 있다. 그리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수학 문제집을 푼다. 나는 옆에서 아이들이 문제 풀이를 할 수 있게끔 돕는다. 그러나 사실 내가 문제 풀이 만큼이나 애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경청과 공감이다.

 옆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

 그렇게 공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치마를 입고 왔어도 난 자주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검은 구슬같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씩 한번씩 웃어줄 때마다 내 마음 앞마당엔 햇살이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처음엔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싶고 공부도 많이 하고픈 욕심에 관련서적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반 일용이>였다.

 

 아이의 행동에 가장 큰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부모다. 그 다음이 선생님일 것이다. 이 책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의 선생님들이 엮은 실제 경험담이다. 한 편 한 편 차분히 읽어 넘길 때마다 눈 앞에서 아이들이 뛰 노는 듯 선연하고 '그래. 맞아!'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연발하며 참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

 책을 받은 그 날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첫 페이지 문구 부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가르치는 아이' 라니. 편견을 깨는 듯한 제목과 내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다른 감동적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맨 처음 떠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다. 나 역시 그렇다는 것. 학교의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원에서 똑같이 아이들을 만나 생활하다보면 내가 많이 배우고 깨달을 때가 많다. 그 때는 세상이 멈춘 듯 속으로 깊이 되새긴다. 오늘도 아이에게서 또 한가지 배우고 깨닫는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부여여고의 재직중인 황금성 선생님. 이름만큼이나 빛나는 성품을 가지셔서 그런지 난 학교 이름까지 단박에 외워버렸다. 이 선생님이 18년 전에 가르쳤다는 제자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게 되면서 둘둘 말린 역사의 페이지를 풀어가듯 그 때의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이야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시엔 굶는 친구들이 허다할 때였고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한다는 얘기는 생소하면서도 훈훈한 냄새가 난다. 자전거 뒤에 커다란 라면 박스를 싣고 말끔한 정장을 입은 채로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에 점점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그 날 선생님이 방문한 아이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다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결핵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야 했고 집 나간 어머니를 이해해야만 했다. 분명 어른이 되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인 것을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착하고 예쁜 아이. 밝고 선한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 아이를 보니 칭찬해 주고픈 마음이 절로 솟아나는 데 하물며 황금성 선생님은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셨을까.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한 미소가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점심을 굶는 이 아이가 걱정되 찾아나선다. 그리고 뜻밖의 상황을 마주해 적잖이 놀라신다. 며칠 전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던 문철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것이다. 서로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을 잘 이해한 만큼 문철이가 점심을 싸와 이 아이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햇살같은 풍경 속에서 얼마나 벅차셨을까.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차올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붙들고 있었다. 참으로 예쁜 아이들이다.

 

 그 대견한 아이가 자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이젠 주유소 일을 병행하며 공무원 준비까지 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를 찾아 재회까지 했다니 정말 잘 자라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교직 생활을 하신 선생님으로써도 참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실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잘 자라나 주었다는 것.

 

서투른 선생님인 내가 마음 속 깊이 되새김질 하는

 둘이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도토리를 볼에 물고 돌아다니는 남매 같아 귀여워 하는 초등생두 명이 있다. 하루는 공부를 하다 말고 오빠가 여동생의 앞에 서서 늠름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여동생의 안에 받쳐입은 옷이 삐져나와 다시 넣으려는 사이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게 오빠가 나무처럼 서서 가려주는 것이었다. 뛰고 놀기 바쁜 아이들은 남매가 왜 서있는지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도 여동생이 옷을 반듯하게 만질 때까지 멀리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총총 다시 볼에 도토리를 물고 책상에 앉는 것 같은 애들을 보니 얼마나 이쁜지 속으로 '이쁘다, 이쁘다'를 연발하면서 문제를 풀게 했다. 

 

 학원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지 또 잘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최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란 욕심은 진작에 내려놓은지 오래다. 그렇지만 매일 한 가지는 잊지 말자고 마음 속 깊이 되새김질 한다. 

 

 '오늘 하루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한다. 비난이나 통제를 하지 않는다.' 

 

 실수도 하고 당황도 하고 도움이 못 될 때가 있지만 이 것만은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적어두고 학원에 나가기 전 차분히 읽는다. 바쁜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개개인의 특성을 발견하고 칭찬해주기란 사실 쉽지 않다. 손 안에 움켜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함께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 몇 분 사이 혹은 아이들의 빛나는 장점을 발견하는 찰나 놓치지 않고 짧게라도 칭찬해주고 쓰다듬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나도 여유를 갖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말을 안 듣거나 떼를 쓰거나 반항할 때도 무조건 적인 통제를 하기에 앞서 내 마음을 살펴보려 한다. 좋은 경험담을 많이 써주신 구자행 선생님의 말대로 아이들은 믿고 기다려 주는 게 최선이자 전부일지 모른다. 작은 실수나 반항도 용납하지 않고 큰 벌을 주는 것 역시 좁아진 선생님의 마음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깐 멈추어 내 마음을 살피고 상황을 지켜보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며 기다리기. 힘든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이것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리라 믿고 나 또한 성숙해 질 것이라 확신하며 조금씩 노력해 나가고 있다.

 

 이 땅의 꽃 같고 햇살 같은 아이들. 모두 모두 자기 나름대로 잘 자라나길.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물을 부어주는 모든 선생님도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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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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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다감한 사람들
소설가 은희경, 신경숙, 백영옥, 김훈과 뮤지션 장기하와 이적 그리고 영화감독 이명세와 음악감독 박칼린 마지막으로 요리사 박찬일 그들의 여행에 이병률 시인이 동행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편하고 즐거울 것만 같은 여행. 저는 목록부터 펼쳐 가장 궁금한 이들 부터 펼쳐 보았습니다.




(제가 중국 재래시장에 갔을 때 찍은 사진입니다.)

- 여행의 정의를 묻다
책에서 묻습니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곳이냐고요.'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나였다가 익숙한 나로 돌아오는 게임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물이고, 생수고, 수도꼭지 이며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벗어나 가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명세 감독의 대답에 웃었습니다.
'책상을 걷어차고 이미지 만들기'
웃음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솔직하고 공감됐기 때문이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늘 이미지를 떠올려야 합니다. 이런 구상 작업의 기초 단계는 감독 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음악가들도 거치는 일이죠. 작품의 밑단이 되는 중요한 일을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고심만 하는 것으로 순조롭게 풀리진 않는다고 봅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끙끙대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 풀려나갔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겐 여행이 일종의 쉼표이자 또다른 지혜나 아이디어를 주울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에게도요.



(제가 중국에서 마구 먹었던 음식사진입니다.)

- 안녕, 만남의 안부
좋아하던 작가의 여행부터 찾아봤는데 다 읽고 나니 의외의 사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리사·에세이스트 박찬일 씨였는데요. 살아오면서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밥 먹고 합시다'라고 할 만큼 그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일본 규슈간 그는 기차 여행을 하며 여러 도시락을 먹어봅니다. 가끔 야외로 놀러가야지만 도시락을 싸와 나눠먹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매일 회사원들이 도시락 판매점에 줄지어 서있다고 하죠. 혼자 앉아 밥을 먹는 풍경 또한 익숙한 풍경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편하고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고 도시락이 발달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겐 세계의 어떤 풍경도 하나의 소우주처럼 담을 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도시락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중국의 만두와 찐빵, 인도의 카레, 한국의 불고기, 미국의 햄버거, 영국의 샌드위치까지 들어있다고 하니 메뉴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던 제가 재료를 들여다보고 음식에 깃든 역사를 알게 되니 음식이 좀 더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밀한 미각들이 글로 옮겨졌을 때의 느낌이 참 신선했습니다.





(중국 놀이공원 사진입니다.)

- 안녕, 헤어짐의 인사
호주,일본,캐나다,뉴칼레도니아,미크로네시아등 그들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나라로 떠난 여행기가 끝내면서 난 또 한가지를 배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열린 마음으로 낯선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죠.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관람법은 간단합니다. 즐겁게 받아들이고 함께 호응하는 것 간단한 마음가짐이나 자주 잊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리 작품과 배우에 편견을 갖고 있거나 관람 도중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거나 몰입하지 않는 경우이죠. 사실 그 자리에 앉은 건 저인데요. 앉아있을테니 나를 맘껏 즐겁게 해봐라 대신에 스스로 공연에 빠져들어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야 나만의 작품과 공연이 되는 것이죠. 설명이 길었지만 책 속 열 명의 예술가들에게도 전 같은 태도를 보았습니다.




한국음식을 권하는 가이드에게 돌아갈때까지 태국음식만 먹겠다며 향신료가 들어간 다채로운 음식을 맛보는 이명세 감독, 사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입맛이 안 맞다며 한국 음식만 찾는 경우 많습니다. 무인도 섬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바다로 들어가 거침없이 수영하는 박칼린 감독, 인기척이 없는 그 곳에서 맘껏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그녀가 가진 유쾌함 때문이 아닐까요. 신예 싱어송라이터 공연에서 만난 영국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런던에서 열리는 공연 리스트를 건네 받기도 하는 장기하, 그는 뮤지션이지만 다른 가수들이 공연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그들의 음악을 느끼는 듯 합니다. 이 외의 모든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한가지이죠. 낯선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천천히 헤어짐의 인사를 겁냅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여행산문집을 써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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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다정한 사람
은희경 외 지음 / 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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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신작 코너에서 이 책이 발간된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외국의 엽서 같은 겉 표지가 맘에 들고 좋아하던 작가와 가수의 이름을 연달아 발견하고는 서점에 가서 바로 사들고 왔습니다. 이병률 시인의 시집과 여행 산문서적을 읽어둔 경험이 있기에 느낌 좋은 사진을 넘겨 보는 것도 행복하겠다 싶었습니다.

 

 

- 다정다감한 사람들

  소설가 은희경, 신경숙, 백영옥, 김훈과 뮤지션 장기하와 이적 그리고 영화감독 이명세와 음악감독 박칼린 마지막으로 요리사 박찬일 그들의 여행에 이병률 시인이 동행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왠지 편하고 즐거울 것만 같은 여행. 저는 목록부터 펼쳐 가장 궁금한 이들 부터 펼쳐 보았습니다.

 

 

- 여행의 정의를 묻다

 책에서 묻습니다. '당신에게 여행은 어떤 곳이냐고요.' 대답이 참 재미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낯선 나였다가 익숙한 나로 돌아오는 게임이 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물이고, 생수고, 수도꼭지 이며 누군가에게는 현실을 벗어나 가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이명세 감독의 대답에 웃었습니다.

'책상을 걷어차고 이미지 만들기'

웃음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솔직하고 공감됐기 때문이죠. 영화를 만드는 일을 하는 그는 늘 이미지를 떠올려야 합니다. 이런 구상 작업의 기초 단계는 감독 뿐만이 아니라 소설가, 음악가들도 거치는 일이죠. 작품의 밑단이 되는 중요한 일을 가만히 책상에 앉아서 고심만 하는 것으로 순조롭게 풀리진 않는다고 봅니다. 제 경험을 돌이켜 보더라도 방 안에 혼자 틀어박혀 끙끙대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밖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우연히 맞닥뜨린 상황 속에서 풀려나갔던 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에겐 여행이 일종의 쉼표이자 또다른 지혜나 아이디어를 주울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저에게도요.

 

 

- 안녕, 만남의 안부

 좋아하던 작가의 여행부터 찾아봤는데 다 읽고 나니 의외의 사람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요리사·에세이스트 박찬일 씨였는데요. 살아오면서 가장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가 '밥 먹고 합시다'라고 할 만큼 그는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일본 규슈간 그는 기차 여행을 하며 여러 도시락을 먹어봅니다. 가끔 야외로 놀러가야지만 도시락을 싸와 나눠먹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매일 회사원들이 도시락 판매점에 줄지어 서있다고 하죠. 혼자 앉아 밥을 먹는 풍경 또한 익숙한 풍경이라고 합니다. 놀라운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간편하고 간소한 생활을 영위하는 일본인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고 도시락이 발달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들에겐 세계의 어떤 풍경도 하나의 소우주처럼 담을 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도시락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중국의 만두와 찐빵, 인도의 카레, 한국의 불고기, 미국의 햄버거, 영국의 샌드위치까지 들어있다고 하니 메뉴를 고르는 것만으로도 꽤 즐거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맛있게 먹을 줄만 알았던 제가 재료를 들여다보고 음식에 깃든 역사를 알게 되니 음식이 좀 더 풍성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밀한 미각들이 글로 옮겨졌을 때의 느낌이 참 신선했습니다.

 

- 안녕, 헤어짐의 인사 

 호주,일본,캐나다,뉴칼레도니아,미크로네시아등 그들의 직업만큼이나 다양한 나라로 떠난 여행기가 끝내면서 난 또 한가지를 배웠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열린 마음으로 낯선 세상을 받아들이는 태도이죠.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관객이 공연을 관람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좋은 관람법은 간단합니다. 즐겁게 받아들이고 함께 호응하는 것 간단한 마음가짐이나 자주 잊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미리 작품과 배우에 편견을 갖고 있거나 관람 도중 저항하는 마음이 생기거나 몰입하지 않는 경우이죠. 사실 그 자리에 앉은 건 저인데요. 앉아있을테니 나를 맘껏 즐겁게 해봐라 대신에 스스로 공연에 빠져들어 인물들과 함께 울고 웃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야 나만의 작품과 공연이 되는 것이죠. 설명이 길었지만 책 속 열 명의 예술가들에게도 전 같은 태도를 보았습니다.

 

 한국음식을 권하는 가이드에게 돌아갈때까지 태국음식만 먹겠다며 향신료가 들어간 다채로운 음식을 맛보는 이명세 감독, 사실 다른 나라에 가서도 입맛이 안 맞다며 한국 음식만 찾는 경우 많습니다. 무인도 섬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바다로 들어가 거침없이 수영하는 박칼린 감독, 인기척이 없는 그 곳에서 맘껏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그녀가 가진 유쾌함 때문이 아닐까요. 신예 싱어송라이터 공연에서 만난 영국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런던에서 열리는 공연 리스트를 건네 받기도 하는 장기하, 그는 뮤지션이지만 다른 가수들이 공연에서는 자신의 색깔을 지우고 그들의 음악을 느끼는 듯 합니다. 이 외의 모든 아티스트들의 공통점은 한가지이죠. 낯선 세상에 호기심을 갖고 열린 시각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여행의 시작이자 끝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천천히 헤어짐의 인사를 겁냅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여행산문집을 써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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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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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마을처럼 걷는 사람

끌림은 이병률 시인이 쓴 여행 산문집입니다. 이 책에선 바람 소리가 납니다. 그 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시인 그 자신입니다. 밤색 외투를 입고 느슨해진 카메라 끈과 편한 운동화를 한 몸처럼 끌리는 쪽을 찾아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여정 속에서 순간순간 마다 멈춰선 곳들은 글로,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멕시코이발사, 칸쿤의 구슬점을 치는 여자, 티베트 버스에서 만난 군인, 영국인 택시드라이버, 페루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옥수수청년, 중국 난징의 귀뚜라미할아버지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그들이 사는 삶의 풍경속으로 성큼 들어가 함께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색다른 경험을 하는 시인이 친화성과 융화력이 부러웠습니다. 그는 마치 지구를 마을 어디쯤으로 여기고 여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 나는 무엇에 끌렸던가

사실 지난 여름엔 영어를 배운 답시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 듯 자주 이 커피숍에 왔습니다. 늘 앉던 의자에 앉아 편한 자세로 바꿔 가며 이 책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차게 가방을 둘러 메고 떠나지 못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페이지를 넘기면 베니스 어느 호텔에 가득 짐을 풀고 있는 나, 인도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나, 산토리니 섬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보며 꿈꾸는 내 모습이 상상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 그래서 끌림

'그래서 제목이 끌림 인가 보다.'
책을 덮고 나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망설이기만 하는 사람과 그래도 떠나는 사람 혹은 이미 집을 벗어난 사람들까지도 넌지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끌림'이라는 제목이 궁금하고 작은 인형처럼 보이는 다양한 여행객들이 모여 있는 겉표지가 맘에 들고 휘리릭 넘기다 보니 느낌 좋은 사진들로 가득하니까요.



- 사람들 속에서

그렇담 나는 어떤 것들에 끌린 걸까요. 아마도 저자의 따뜻한 분위기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 속 짤막한 시인 소개에 이런 말이 있죠.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사람 냄새를 좋아한다는 그도 분명 향기로운 사람일 겁니다. 세상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누며 여행 중 물건을 도둑 맞거나 사기를 당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만약 거대한 세계지도가 필쳐지고 먼 나라의 유명한 성지와 음식 사진으로 가득한 뒤 지금 당장 당신도 떠날 수 있다라거나 이 곳에서 이 것을 해보지 않고는 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단정적 글이 있었더라면 얼마 읽지 못하고 덮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길가다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아 듣게 된 이야기 같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와 도시가 궁금해지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들으며 푹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곤 무릎을 털며 슬며시 일어나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뒷모습의 여운이 이 책이 느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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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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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떠나고 싶은 마음에 끌림

 

Ara

 

- 떠남과 머무름

 떠난다는 것과 떠나고 싶은 것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것에 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제 주변엔 언젠가 딴 나라로 떠날 거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이민 갈 계획을 세웠었지만 뜻 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의 책장엔 여행서적들과 스크랩한 파일들이 가득합니다. 저는 선뜻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잡지에 실린 사진만 보더라도 보물을 발견한 듯 열심히 가위질을 해대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정보를 찾아 헤매는 눈빛을 말이죠.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머지 않아 떠나게 된다는 계획을 사실처럼 말하는 그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사람 그 동안 떠날 생각만으로 버텨온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말이지요. 이민 갈 계획이 좌절되고 가족들와 의견이 자꾸만 엇갈릴 때 그 사람은 가만히 돌아와 책상을 마주하고 여행 서적을 펼쳤을 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들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상하게도 그를 바라봤던 내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지만 이 깨달음은 분명 한 가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간 다른 사람들의 비난 어린 걱정에 동조하진 않았어도 속으로 선을 긋고 담을 쌓았던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던 순간입니다.

 

- 지구를 마을처럼 걷는 사람

 끌림은 이병률 시인이 쓴 여행 산문집입니다. 이 책에선 바람 소리가 납니다. 그 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사람은 시인 그 자신입니다. 밤색 외투를 입고 느슨해진 카메라 끈과 편한 운동화를 한 몸처럼 끌리는 쪽을 찾아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여정 속에서 순간순간 마다 멈춰선 곳들은 글로,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멕시코이발사, 칸쿤의 구슬점을 치는 여자, 티베트 버스에서 만난 군인, 영국인 택시드라이버, 페루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옥수수청년, 중국 난징의 귀뚜라미할아버지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그들이 사는 삶의 풍경속으로 성큼 들어가 함께 대화를 하고 음식을 먹고 색다른 경험을 하는 시인이 친화성과 융화력이 부러웠습니다. 그는 마치 지구를 마을 어디쯤으로 여기고 여행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무엇에 끌렸던가 

 

 사실 지난 여름엔 영어를 배운 답시고 학원을 다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만날 사람이라도 있는 듯 자주 이 커피숍에 왔습니다. 늘 앉던 의자에 앉아 편한 자세로 바꿔 가며 이 책을 두 번이나 봤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차게 가방을 둘러 메고 떠나지 못할 것임을 잘 알면서도 페이지를 넘기면 베니스 어느 호텔에 가득 짐을 풀고 있는 나, 인도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나, 산토리니 섬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보며 꿈꾸는 내 모습이 상상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목이 끌림 인가 보다.'

책을 덮고 나니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처럼 망설이기만 하는 사람과 그래도 떠나는 사람 혹은 이미 집을 벗어난 사람들까지도 넌지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끌림'이라는 제목이 궁금하고 작은 인형처럼 보이는 다양한 여행객들이 모여 있는 겉표지가 맘에 들고 휘리릭 넘기다 보니 느낌 좋은 사진들로 가득하니까요.

 

 

 그렇담 나는 어떤 것들에 끌린 걸까요. 아마도 저자의 따뜻한 분위기와 세상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 속 짤막한 시인 소개에 이런 말이 있죠.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

 

 

 사람 냄새를 좋아한다는 그도 분명 향기로운 사람일 겁니다. 세상 누구와도 금세 친구가 되고 대화를 나누며 여행 중 물건을 도둑 맞거나 사기를 당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만약 거대한 세계지도가 필쳐지고 먼 나라의 유명한 성지와 음식 사진으로 가득한 뒤 지금 당장 당신도 떠날 수 있다라거나 이 곳에서 이 것을 해보지 않고는 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단정적 글이 있었더라면 얼마 읽지 못하고 덮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마치 길가다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아 듣게 된 이야기 같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나라와 도시가 궁금해지고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경험을 들으며 푹 빠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곤 무릎을 털며 슬며시 일어나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뒷모습의 여운이 이 책이 느낌인 것 같습니다.

 

 그 느낌이 좋아 이 책을 읽고 또 읽게 된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곤 이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떠오릅니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아직도 이민 갈 계획을 꾸리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떠나든 떠나지 않든 그 사람은 그대로 임을 또 내 즐거운 이웃이였다는 사실과 함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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