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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일용이 -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들, 두 번째 만남
대학에 다닐 때 휴학을 하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었다. 그리고 다시 눈 앞에 어른거리는 아이들을 볼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대학 졸업 후에도 여전히 나는 학원에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때 보다 더 많은 수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니 달력 한 장은 건너 뛴 것처럼 한달이 지났다.
우리반 일용이
토끼같은 유치원생들이 몰려와 열심히 '고,노,도,로.......'를 외우다 빠지면 강아지 같은 초등학생들이 몰려와 앉아 있다. 그리곤 손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하며 수학 문제집을 푼다. 나는 옆에서 아이들이 문제 풀이를 할 수 있게끔 돕는다. 그러나 사실 내가 문제 풀이 만큼이나 애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경청과 공감이다.
옆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것.
그렇게 공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치마를 입고 왔어도 난 자주 무릎을 꿇고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반짝거리는 아이들의 검은 구슬같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씩 한번씩 웃어줄 때마다 내 마음 앞마당엔 햇살이 들어온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아이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처음엔 아이들의 심리를 잘 이해하고 싶고 공부도 많이 하고픈 욕심에 관련서적들을 많이 찾아봤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반 일용이>였다.
아이의 행동에 가장 큰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 부모다. 그 다음이 선생님일 것이다. 이 책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의 선생님들이 엮은 실제 경험담이다. 한 편 한 편 차분히 읽어 넘길 때마다 눈 앞에서 아이들이 뛰 노는 듯 선연하고 '그래. 맞아!'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연발하며 참 재미있게 읽었다.
지금도 나를 가르치는 아이
책을 받은 그 날 단숨에 다 읽어 버렸다. 첫 페이지 문구 부터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를 가르치는 아이' 라니. 편견을 깨는 듯한 제목과 내용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다른 감동적인 선생님의 이야기를 읽고 나서도 맨 처음 떠올랐다. 그 이유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니 답은 하나다. 나 역시 그렇다는 것. 학교의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원에서 똑같이 아이들을 만나 생활하다보면 내가 많이 배우고 깨달을 때가 많다. 그 때는 세상이 멈춘 듯 속으로 깊이 되새긴다. 오늘도 아이에게서 또 한가지 배우고 깨닫는다고. 그래서 참 고맙다고.
부여여고의 재직중인 황금성 선생님. 이름만큼이나 빛나는 성품을 가지셔서 그런지 난 학교 이름까지 단박에 외워버렸다. 이 선생님이 18년 전에 가르쳤다는 제자로부터 반가운 전화를 받게 되면서 둘둘 말린 역사의 페이지를 풀어가듯 그 때의 시절로 돌아간다.
지금이야 찾아보기 힘들지만 당시엔 굶는 친구들이 허다할 때였고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한다는 얘기는 생소하면서도 훈훈한 냄새가 난다. 자전거 뒤에 커다란 라면 박스를 싣고 말끔한 정장을 입은 채로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선생님의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에 점점 따뜻한 온기가 올라오는 것 같다. 그 날 선생님이 방문한 아이는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다 부모님의 온전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결핵에 걸린 아버지의 죽음을 맞아야 했고 집 나간 어머니를 이해해야만 했다. 분명 어른이 되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인 것을 이 아이는 부모에 대한 무조건 적인 사랑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착하고 예쁜 아이. 밝고 선한 마음을 잊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 아이를 보니 칭찬해 주고픈 마음이 절로 솟아나는 데 하물며 황금성 선생님은 얼마나 기특하고 대견하셨을까. 볼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한 미소가 자라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점심을 굶는 이 아이가 걱정되 찾아나선다. 그리고 뜻밖의 상황을 마주해 적잖이 놀라신다. 며칠 전 어머니의 장례를 치렀던 문철이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는것이다. 서로가 넉넉하지 못한 상황을 잘 이해한 만큼 문철이가 점심을 싸와 이 아이에게 나눠 주고 있었다. 선생님은 그 햇살같은 풍경 속에서 얼마나 벅차셨을까. 내 눈에도 눈물이 가득 차올라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한동안 붙들고 있었다. 참으로 예쁜 아이들이다.
그 대견한 아이가 자라 중학교, 고등학교도 졸업했고 이젠 주유소 일을 병행하며 공무원 준비까지 하고 있단다. 그리고 오래 전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를 찾아 재회까지 했다니 정말 잘 자라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교직 생활을 하신 선생님으로써도 참된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실 거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잘 자라나 주었다는 것.
서투른 선생님인 내가 마음 속 깊이 되새김질 하는 것
둘이 돌아다니는 것만 봐도 도토리를 볼에 물고 돌아다니는 남매 같아 귀여워 하는 초등생두 명이 있다. 하루는 공부를 하다 말고 오빠가 여동생의 앞에 서서 늠름히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슨 일인가 싶었더니 여동생의 안에 받쳐입은 옷이 삐져나와 다시 넣으려는 사이 다른 친구들이 보지 않게 오빠가 나무처럼 서서 가려주는 것이었다. 뛰고 놀기 바쁜 아이들은 남매가 왜 서있는지 신경쓰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그렇게 잠깐 서 있었다. 그리고 나도 여동생이 옷을 반듯하게 만질 때까지 멀리서 기다려 주었다. 그리고 총총 다시 볼에 도토리를 물고 책상에 앉는 것 같은 애들을 보니 얼마나 이쁜지 속으로 '이쁘다, 이쁘다'를 연발하면서 문제를 풀게 했다.
학원 선생님으로써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지 또 잘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최고 좋은 선생님이 되어야지란 욕심은 진작에 내려놓은지 오래다. 그렇지만 매일 한 가지는 잊지 말자고 마음 속 깊이 되새김질 한다.
'오늘 하루 아이들의 장점을 발견한다. 비난이나 통제를 하지 않는다.'
실수도 하고 당황도 하고 도움이 못 될 때가 있지만 이 것만은 잊지 않기 위해 수첩에 적어두고 학원에 나가기 전 차분히 읽는다. 바쁜 아이들과의 생활 속에서 개개인의 특성을 발견하고 칭찬해주기란 사실 쉽지 않다. 손 안에 움켜쥐었던 모래가 빠져나가듯 함께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이 화살처럼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 몇 분 사이 혹은 아이들의 빛나는 장점을 발견하는 찰나 놓치지 않고 짧게라도 칭찬해주고 쓰다듬어 주려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나도 여유를 갖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또 하나 말을 안 듣거나 떼를 쓰거나 반항할 때도 무조건 적인 통제를 하기에 앞서 내 마음을 살펴보려 한다. 좋은 경험담을 많이 써주신 구자행 선생님의 말대로 아이들은 믿고 기다려 주는 게 최선이자 전부일지 모른다. 작은 실수나 반항도 용납하지 않고 큰 벌을 주는 것 역시 좁아진 선생님의 마음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잠깐 멈추어 내 마음을 살피고 상황을 지켜보고 아이들의 마음을 들어주며 기다리기. 힘든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이것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리라 믿고 나 또한 성숙해 질 것이라 확신하며 조금씩 노력해 나가고 있다.
이 땅의 꽃 같고 햇살 같은 아이들. 모두 모두 자기 나름대로 잘 자라나길.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물을 부어주는 모든 선생님도 참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