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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절대가이드 - 89개 지역 700개 명소 절대가이드 시리즈
최미선 지음, 신석교 사진 / 삼성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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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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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호소력있는 이야기

군주가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철학자나 현자보다는 이야기꾼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말과 바른 말보다는 한 편의 이야기가 더 호소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의 글들은 짧막한 단편이지만 인생에 대해 좋은 글과 바른 글을 적어 놓은 많은 책들보다도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곰스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란다. 곰스크의 모습과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막연히 그곳을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갓 결혼한 아내와 전 재산을 털어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가는 여정에서 내내 우울해하는 아내를 따라 내린 중간역에서 기차를 놓치게 된다. 그곳에서 또 다른 곰스크행 기차를 기약하며 기차비를 모은다.

1년여가 흐른 후 우여곡절끝에 곰스크행 기차표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은다. 하지만 막상 기차 출발을 앞두고 아내와의 갈등끝에 결국 혼자서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칸에서 아내의 임신얘기를 듣고 다시금 곰스크행은 좌절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둘째 애까지 갖게된 후 이미 그에게 곰스크행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채워지지 않은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가 이야기의 끝이었다면 내게 이런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마을의 연로하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교사직을 맡게 되고 그 노선생님과 같이 지내게 된다. 노선생님은 부인을 먼저 보내고 점차 약해지는 시력으로 뭔가를 애타게 그리는 듯 창밖을 내다보다가 쓸쓸히 죽어간다. 노선생님의 처지는 마치 주인공의 몇 십년 후를 내다 보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노선생님은 주인공 자신의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건 뭘까, 곰스크라는 막연한 이상향을 갈망하는 우리의 자화상인가, 현실의 삶속에서 꿈과 이상을 그리기만 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가? 저자는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서 삶의 한계에 절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역설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돌아보고 다시금 각자의 곰스크를 떠올리고 앞으로 나아가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미래는 창밖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노선생님의 처량한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뜬금없이 '나의 곰스크는 어디인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부끄럽게도 나는 동경할 곰스크조차도 없었던거다. 물론 나도 수 많은 곰스크를 떠올렸지만 주인공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편도 기차표를 사본 적도 없고 되려 섣부른 수지타산으로 그 상상을 날려버리고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그러니 나의 곰스크는 이거다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배는 북서쪽으로',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등 무명의 독일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단편들을 여러 편 실고 있다. 하나 하나 모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글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삶을 되돌아보고 미래의 꿈을 꾸어도 보고 또 꿈을 다지기도 하는 좋은 독서였다. 아마 자주 이 책을 인용할 것 같고, 또 이 책은 나를 자주 고민에 빠지게도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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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기닝 - 모든 것의 시작
야자와 사이언스 오피스 지음, 장석봉 옮김 / 바다출판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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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상상하는 시도

굳이 지나간 과거를 많은 투자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파헤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무심히 하게 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면 꼭 필요하다 이다. 가령 목표를 세워서 공부하라고 하면 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수준에 맞는 목표를 세울 수 있다. 맞춤식 교육이 될 수 있다. 현 수준을 가늠하지 못한다면 너무 낮은 목표를 세우거나 또는 너무 허무맹랑한 목표를 세워서 시간낭비만 할 뿐이다.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목표를 구체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어쩌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옛 선인들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패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우리는 적을 아는데 관심을 집중하지만 이 글귀에는 그에 못지 않게 나를 아는것에도 무게를 실고 있다. 인간의 존재 의미와 무수한 생물들중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끊임없이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존재라는데 공감이 간다. 즉, 인간이 나름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서는 현재의 나를 돌아보고 나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원에 대한 연구는 필수적이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지상 최대의 쇼>와 같이 생명의 역사와 기원, 진화연구의 성과들을 풀어놓은 책들도 많지만 이 책은 우주, 은하, 태양계, 시간, 생명, 종, 인간의 순으로 거시적인 규모에서 미시적인 규모로 규모를 축소해가며 그 기원에 대해서 소개한다. 전달하는 지식의 깊이가 얇은 것 같기는 하지만 너무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흥미를 잃어버기게 하는 것에 비해서는 많은 것을 소개하기에 적절한 수준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부분은 시간의 기원에 대한 부분이다. 첫 인상은 우주, 은하, 태양계에서 생명으로 넘어가기 전에 시간이 들어있다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시간의 기원에 대해서 논한다는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저자의 의도에 대한 오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는 아주 적절한 편집으로 보여진다. 공간은 우리가 인식하고 제어하기도 쉽지만 시간은 그렇지 않다. 우주, 은하, 태양계가 공간적인 규모의 관점에서 장들이 나누어지고 다루어졌다면 시간에 대한 것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무생물과 생물을 가르는 요인중 하나를 시간으로 봤을 수도 있겠다. 제한된 시간에 한해서만 생명이라는 것을 가지는 것이 생물이니 이 둘이 전환되는 시점에 시간에 대해서 살펴봤을 수도 있겠다.


책을 보다가 불현듯 우물안 개구리라는 말이 떠오른다. 넓고 깊게 볼 수 있는데 처한 상황에 따라서 혹은 경험과 경륜의 부족으로 좁은 인식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물 밖을 평생 보지 못한 개구리에게도 이 말이 의미가 있을까라고 질문해 보고 싶다. 그나마 은하와 태양계는 벗어날 수는 없어도 멀리서나마 다른 은하와 항성과 행성을 관측할 수 있지만 우주에 관해서는 그렇지 않다. 우주는 우리 개구리를 영원히 가둬두는 우물이다. 물론 우주의 기원하는 과학자들도 이런 인식은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도전하고 있다. 혹자는 그들을 멍청한 개구리로 보겠지만 나는 그들이 쉼없이 창공은 향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로 보인다.



이 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은 지식뿐만 아니라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지금, 내 존재의미와 소명을 돌아보고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결심을 다지는 좋은 기회로 삼을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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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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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되찾아야 할 왕국, 대백제

역 사에 관한 책을 볼 때면 이토록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을 학창시절에는 왜 몰랐을까라는 의문이 간혹 듭니다. 그 당시에는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았던 탓에 역사의 묘미를 미처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자책을 하지만, 사건과 연도만 달달 외우는 획일화된 교육 탓도 안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백제와 관련해서는 남 탓을 더하게 됩니다. 백제라고 하면 의자왕과 삼천궁녀 그리고, 처자식을 죽이면서까지 백제에 충성을 바친 계백장군 정도만 기억납니다. 무감각하게 나열된 암기식 역사로는 이런 왜곡되고 자극적인 허구를 걸러내고 그들의 숨결을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대백제>는 역사 읽기의 재미와 감동을 줍니다. 제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꽃 피었던 찬란한 문화와 예술에 새삼스레 감탄하게 되고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반면 폐전국의 비애도 함께 느낍니다. 저자의 푸념처럼 백제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 왜 일본의 역사 기록과 유적을 통해야만 하는 것인지 서글프기만 합니다. 승전국으로서는 정통성을 확립하고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폐전국의 역사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미 천 사백년전의 일입니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백제의 역사를 발굴하고 연구할 시간과 기회는 충분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었고 아직도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사진 한장 한장, 글귀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집니다.

일본에 끼친 백제의 영향에 대해서는 귀동냥으로 들은 바가 있지만 일본 천황의 조상이 '백재의 화원'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들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은 '임나일본부설' 같은 허무맹랑한 역사 왜곡을 시도하고 있지만 드러난 증거만으로도 이런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기사를 찾아보니 한일 두 나라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일 역사 공동연구위원회'에서 임나일본부라는 존재 자체가 없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합니다.

" 일본 천황가의 제 1왕조는 가야세력인 스진왕조다. 그 다음에 백제 웅진에서 건너간 오진왕조가 혁명을 통하여 천황가 제 2왕조를 이룬다. 이때부터 천황가는 백제계의 혈통이 이어진다. 이후 오진왕조가 5대에 걸쳐 약 100년간 세력을 지켜가고, 그 후 왕대가 끊어지자 할 수 없이 백제에서 왕자(백제 곤지왕)을 데려와 제 3왕조 게이타이 천황으로 교체된다. <중략> 한일 월드컵을 앞둔 2001년, 현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 천황가의 믿음을 뒤엎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내용인즉 <속일본기>라는 일보 정사에 업각해 자신의 몸에 백제 무령왕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의 자왕에 대한 변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의자왕은 대백제를 폐망으로 이끈 무능한 왕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다르다고 합니다. 이런 매도의 기원은 15세기 말경 시인들이 부여에 와서 읆은 시구절 때문입니다. 오히려 삼국사기에는 의자왕을 '해동증자'라고 평가하고 있는데 여기서 증자는 공자의 제자로 성인 축에 드는 인물입니다. 백제의 기록이 부족하고 신라 위주로 기록된 삼국사기에 해동증자로 기록한 것만 봐서도 의자왕의 인물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이 책은 불교를 받아들일때의 개방성, 금동대향로 하나 만으로도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없는 빼어난 금속기술, 음악과 기악같은 예술, 조선술 등 모든 방면에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준 고대의 선진국 백제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진화한다고 합니다. 백제에 비해서 우리의 현재는 더 진화한 모습일까 생각하면 부끄러워집니다. 백제인은 분명히 우리 한국인의 선조입이다. 하지만, 그들의 정신과 기개 그리고 문화와 예술에 있어서 지금 이땅의 우리가 백제인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일본에서 그것도 시골마을의 촌부들 조차도 백제로부터 받아들인 자그마한 유물 하나도 소중히 간직하고 보존하고 자랑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백제인이 일본 천황의 조상이라는 사실과 백제가 일본에 문화를 전승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지기 이전에 그 옛날의 백제인이 누구를 자신의 후손으로 인정해줄지를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선조인 백제인이 좀 더 우리 곁으로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는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결의도 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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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신들의 귀환 - 지구 종말론의 실상
에리히 폰 데니켄 지음, 김소희 옮김 / 청년정신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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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기원의 또 다른 시각

몇 백년전 유럽에서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고 떠들고 다녔다면 화형을 당하거나 미치광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지구를 벗어나 우주로 또는 화성으로 향하는 것이 더 이상 큰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이다. 하지만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이 공인된 것은 기껏해야 몇 백년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로마 교황청이 지동설에 대해서 가한 탄압을 공식적으로 사과한 것은 최근 들어서이다. 종교적인 신념이 우선시되던 세상에서 그 기반을 흔들 수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사실이냐 거짓이냐를 따져볼 가치조차 없었던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아주 다양한 가능성과 접근방법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나름 진지한 이론적 배경과 근거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다수는 주류에 반한다는 이유만으로 진지한 검토없이 무시당하고 버림받고 있다. 외계인이나 유에프오에 대한 생각들도 그중의 하나이다. 일부 광신적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들은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한다. 이천억개의 은하가 있고 그 은하마다 약 천억에서 이천억개의 항성들을 지니고 있고 그 항성에도 한 두개 이상의 행성을 가지고 있는데 생명체가 살고 있는 행성이 지구밖에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그동안 배워온 확률의 측면에서도 황당하기 그지 없다. 그러니 당연히 어디엔가에는 우리와 같은 지적인 사고를 하는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 아마 아주 많을지도 모르겠다.

외계인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도 유에프오나 외계인의 지구 방문에 대한 얘기를 하는 사람을 보면 철없는 어린애 바라보듯이 한다. 바로 그 순간 그들은 그 옛날 갈릴레오를 탄압하던 사람들마냥 마음을 닫아버린다. 신들의 귀환은 그런 류의 이야기이다. 지구에 고도의 문명을 지닌 외계인이 왔었고 석기시대인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추정하기로는 2012년 즈음 돌아오리라는 약속과 함께.

저자는 석기시대의 불가사의한 유물을 통해서 외계인의 방문가능성을 주장한다. 아마 어떤 과학자라도 그런 유물들의 건설과 관련해서 다른 가능성을 얘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외계인은 터무니없다고 비웃겠지만 말이다. 푸마푼쿠 석재 블럭의 예를 들어보자. 여기에는 다섯 개의 구멍이 층층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 각각의 구멍에 나침반을 통과시켜 구멍마다 자침 방위가 벗어난 정도를 측정해보면 첫 번째 구멍은 5도, 두 번째 구멍은 10도, 세 번째 구멍은 20도, 네 번째 구멍은 40도, 다섯 번째 구멍은 80도라고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하지만, 이것을 포함한 다양한 사실들은 현재의 주류이론인 진화론적 관점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무시당하고 있다.

진화론이 창조론을 포함한 종교에 의해 탄압받으면서 이렇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진실을 어이없고 근거없는 믿음만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버림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울분을 토했을 것이 분명한데 이제는 진화론의 관점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과학적이로 합리적인 사실조차도 버림받고 마는 처지에 왔다. 저자의 말대로 학계의 독트린은 과거의 진실을 한낱 신화로 바꾸어 버린다. 그래야 세상이 평화로워지니까.  
 

코페르니쿠스 이전 시대에, 인간들은 지구를 우주의 기하학적 혹은 물리적 중심으로 잘못 간주했다. 하지만 요즘 존경받는 과학자들조차도 여전히 지구를 우주의 생물학적 중심으로 간주한다. 놀랍게도 과거의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진화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생명의 기원에 필요한) 유전물질이 우리 시스템의 외부에서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가 아닌 곳에서 말이다.

물론 나도 저자의 주장이 황당하게 느껴지지만 앞서 이야기하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개방된 마음을 가지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배워왔던 수 많은 과학적인 논리력을 내세워 저자의 주장에 허점이 없는지를 조목조목 따져보고 있는 무의식 저편의 또 다른 나를 느낀다. 이 책, 신들의 귀환은 석기시대의 놀라운 유적을 둘러보고 저자의 기발한 생각을 둘러보는 재미외에도 나 자신의 경직된 사고의 틀을 깨는 희열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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