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가는 기차 (양장)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 북인더갭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호소력있는 이야기

군주가 국민들을 설득하려면 철학자나 현자보다는 이야기꾼을 보내라는 말이 있다. 좋은 말과 바른 말보다는 한 편의 이야기가 더 호소력이 있다는 말이다. 이 책의 글들은 짧막한 단편이지만 인생에 대해 좋은 글과 바른 글을 적어 놓은 많은 책들보다도 더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주인공은 어렸을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곰스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자란다. 곰스크의 모습과 그곳에서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막연히 그곳을 동경하게 된다. 그리고 갓 결혼한 아내와 전 재산을 털어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가는 여정에서 내내 우울해하는 아내를 따라 내린 중간역에서 기차를 놓치게 된다. 그곳에서 또 다른 곰스크행 기차를 기약하며 기차비를 모은다.

1년여가 흐른 후 우여곡절끝에 곰스크행 기차표를 살 수 있는 돈을 모은다. 하지만 막상 기차 출발을 앞두고 아내와의 갈등끝에 결국 혼자서 기차에 오른다. 하지만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칸에서 아내의 임신얘기를 듣고 다시금 곰스크행은 좌절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둘째 애까지 갖게된 후 이미 그에게 곰스크행은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자 채워지지 않은 갈망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가 이야기의 끝이었다면 내게 이런 여운을 남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인공은 마을의 연로하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교사직을 맡게 되고 그 노선생님과 같이 지내게 된다. 노선생님은 부인을 먼저 보내고 점차 약해지는 시력으로 뭔가를 애타게 그리는 듯 창밖을 내다보다가 쓸쓸히 죽어간다. 노선생님의 처지는 마치 주인공의 몇 십년 후를 내다 보는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노선생님은 주인공 자신의 미래의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건 뭘까, 곰스크라는 막연한 이상향을 갈망하는 우리의 자화상인가, 현실의 삶속에서 꿈과 이상을 그리기만 하고 실현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인가? 저자는 독자들이 이 글을 통해서 삶의 한계에 절망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역설을 통해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를 돌아보고 다시금 각자의 곰스크를 떠올리고 앞으로 나아가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미래는 창밖을 애처로운 눈빛으로 멍하니 바라보는 노선생님의 처량한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뜬금없이 '나의 곰스크는 어디인가?'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부끄럽게도 나는 동경할 곰스크조차도 없었던거다. 물론 나도 수 많은 곰스크를 떠올렸지만 주인공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편도 기차표를 사본 적도 없고 되려 섣부른 수지타산으로 그 상상을 날려버리고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그러니 나의 곰스크는 이거다라고 말할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배는 북서쪽으로', '양귀비', '그가 돌아왔다' 등 무명의 독일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의 단편들을 여러 편 실고 있다. 하나 하나 모두 짙은 여운을 남기는 글이다. 한 해를 시작하는 지금 삶을 되돌아보고 미래의 꿈을 꾸어도 보고 또 꿈을 다지기도 하는 좋은 독서였다. 아마 자주 이 책을 인용할 것 같고, 또 이 책은 나를 자주 고민에 빠지게도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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