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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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슬픔의 물리학

<슬픔의 물리학>(문학동네, 2026)은 "강박적 공감-신체화 증후군"이라는 병을 지닌 작가인 게오르기가 종말을 위해 수집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다른 사람의 기억에 들어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고모할머니의 기억 속에서 그는 버림받은 기억, 사랑했던 기억을 찾아낸다. 그의 능력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그는 미노타우로스, 황소, 파리 등 비인간 존재에게도 이입한다.

나이가 들어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그는 이야기를 수집한다. 아이를 낳아 돈을 버는 사람, 동네 유부녀들을 홀린 철학자, 살만 루슈디를 만났다고 주장하는 남자의 이야기까지. 화자는 종말 후에 남길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라면 모두 수집한다. 그가 이야기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슬픔은 이동한다

어떤 이들에게 공감은 고통을 통해 열리는데 내 경우는 슬픔을 통해 열릴 때가 더 많다.

390쪽

책의 말미, 슬픔의 물리학을 설명하면서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슬픔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것이다. 화자는 슬픔은 중력장이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작"(391쪽)아서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 곳의 슬픔은 다른 곳의 다른 사람도 슬프게 만들 수 있다.

이동하는 슬픔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공감이다. 공감은 이야기를 타고 전해오는 슬픔에 반응한다. 핀란드 시인의 노화에서 비롯된 서글픈 사건을 보며 유럽 반대편의 고향이 생각난 이유는 그 때문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죽이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따라 미궁 속으로 들어간 까닭도 그 때문이다.

슬픔은 이야기의 형태를 통해 공감으로 나타난다. 문화권이 다르더라도 슬픔을 느끼는 원인과 경로는 비슷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부재, 노화로 인한 서러움, 서글픔, 이미 지나가고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비탄, 비애 등. 공통적인 감각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슬픔을 나의 슬픔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

화자는 책 전반에 걸쳐 미노타우로스를 소환한다. 미노타우로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로 황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있다. 크레타의 왕은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둔다. 결국 미노타우로스는 아리아드네의 도움을 받은 테세우스의 손에 죽는다.

화자는 미노타우로스를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가 겪고 있는 멜랑꼴리, 외로움은 미노타우로스가 갖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미궁은 나와 타자를 가로막는 장치였지만 결국 실을 통해 바깥과 연결되기도 한다. 여기서 실은 앞서 언급했듯이 이야기다. 나와 타자 사이의 멀고 복잡한 공간을 지나 공감하게 해주는 것.

<슬픔의 물리학>은 인간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떻게 공감하는지를 저자의 독특한 사고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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