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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맥공주
이지연 지음 / 황금가지 / 2025년 8월
평점 :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

이지연 작가의 상상력
<산맥공주>(황금가지, 2025)는 이지연 작가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단편소설집이다. SF 소설이란 "실제 또는 상상 속 과학이 사회나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주로 다루는 소설"(브리태니커 백과)이다. SF 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AI가 등장하거나 외계인이 나오는 소설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김초엽 작가가 이야기했듯이, SF 소설은 "제아무리 달라 보여도, 소재는 현실에서 온" 것이고 다만 "현실을 기울여서 보게 하는 장르"*이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산맥공주>는 넓은 범주에서 SF 소설집이라고 볼 수 있으며, 설화, 웹소설, 우주 소설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을 뿐이다.
SF 장르는 읽고 나면 공통된 질문을 던진다. '그래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몽골의 설화 모습을 한 <산맥공주>, 동화적인 요소에서 시작한 <눈 속의 요정>, 웹소설의 형식을 가져온 <공녀님은 기사가 되고 싶어서>를 제외한 단편 소설들은 '인간'에 대해 탐구할 수 있는 단초들을 제공한다.
<진화 혁명: 디벤둑 상급지식체화소의 강의 소묘>에는 신인류가 등장한다. 신인류는 현재 인류(그들의 입장에서는 구인류)와 신체구성요소가 다르며 정신적으로 완전하다. "의식과 유전자가 의식 우위로 통합을 이루었"(205쪽)기 때문이다. 그들은 100%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할 가능성이 없다. 이들은 '진화했다'라고 표현한다. 이성이 감정을 완전히 조절하는 것. 이걸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구인류에 대해 배우던 카인은 교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우리는 감정을 이성 아래 복속시키면서 무언가를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찬: 콴 행성 라마 지역 상층부, 우위디야마구>에서는 "인간이 기능을 마친 후 음식의 형태로 재생되어 다른 인간들에게 먹"(302쪽)힌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이 항상 이야기하는 '존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즈는 인간을 고기 형태로 섭취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지만 맥다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다른 비인간 동물들에 비해 인간은 존엄한가? 존엄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에게 존엄성 같은 건 없어. 살아가는 거지. 그뿐이야.
처음 책을 읽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지연 작가는 이영도 작가의 <드래건 라자>를 출판했고, 프랭크 허버트의 <듄>, 어슐러 르귄의 <어스시의 마법사> 등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편집자였다. SF 소설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만의 글을 쓰기 시작한 그는 작년에 작고했다. 이 작품은 그의 유고집이다. 해외의 유수 SF 소설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대중에게 알렸을 정도로 SF 소설을 폭넓게 이해하는 작가의 소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좀더 지구별에 머물며 내게, 황금가지에, 장르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더 주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