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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ㅣ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2
케이트 윌헬름 지음, 정소연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중편의 대가들이 펼쳐내는 솜씨를 맛볼 때는 두 번 놀라게 된다. 처음에는 작품을 읽어 나가면서 그 거칠 것 없는 속도에 놀라게 되고, 다음에는 작품을 다 읽고 나서 그 무자비한 속도 속에서도 필요한 모든 내용은 다 들어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즉, 대가들의 중편에서는 단편의 쾌속 무비함과 장편의 유장함 모두를 기대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중편 걸작들의 출간 정도는 그 만족감과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 그 길이 때문에 단행본으로도, 엮어내기도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케이트 윌헬름의 작품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의 출간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갑고, 축하해야 마땅할 일이다.
물론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는 300여 페이지 분량의 장편으로 소개가 되었고, 휴고상이나 로커스상 역시 장편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이지만, 역자가 밝힌 그 집필 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현재의 1부에 해당하는 「아름답게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만이 발표되었다가 그 뒤에 2부 「셰난도아」와 3부 「정점에서」가 덧붙여져 장편이 된 작품이다. 각 부는 중편 소설 한 편의 길이에 해당하며, (지금은 절판되어 전설이 돼 버린) 시어도어 스터전의 『인간을 넘어서』와 마찬가지로 각 부는 나름의 독자적 완결성을 갖춘 상태에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론 이 느슨하다는 표현은 애초에 한 덩어리로 나온 다른 장편 소설들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며 각 부가 명백히 일관적인 정서를 타고 흘러가기에, 결국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를 읽는다는 것은 세 편의 훌륭한 중편과 한 편의 훌륭한 장편을 동시에 읽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인류학적 포스트-홀로코스트 SF"의 중점, 혹은 작가의 뛰어난 솜씨는 1부 「아름답게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의 1장, 좀 부족하면 2장까지만 읽어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주인공 데이비드의 어린 시절을 서술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인류 멸망의 전조를 포착한 데이비드의 가문이 생명 복제 연구를 시작하는 내용까지를 담고 있는 이 두 장(章) 속에서, 케이트 윌헬름은 작품의 중점을 잘 보여준다. (여전히 선입견 가진 독자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SF의 "S"에 대한 두려움을 불식시키기라도 하듯, 작가는 작품의 기반이 되는 생명 복제 "기술"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펜이 더 많이 가 있는 부분은 데이비드가 어린 시절 겪어야 했던 일화들이다. 심지어 작품의 과학적 배경 설명에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2장조차도, 인상에 남는 것은 그 마지막 끝맺음이다. "저기 언덕 위 좀 보세요. 말채나무가 곧 꽃을 피울 것 같네요. 벌써 나온 꽃봉오리도 있어요."라는 데이비드의 말은, 그가 과거 집을 떠날 때 할아버지에게 들었던 "나는 네가 우리를 미쳤다고 생각하며 떠날 것을 안다. 하지만 데이비드, 넌 돌아올 거야. 말채나무 꽃이 피기 전에 돌아오겠지. 네 눈에도 조짐이 보일 테니까."라는 말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여기서 직접적으로 와 닿는 것이 데이비드가 돌아와야 했던 이유, 즉 인류의 절멸을 예고하는 위협이 아니라, 시간을 넘어서서 자연을 통해 이어지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어떤 연결 고리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케이트 윌헬름은 SF의 "S"가 야기하는 변화 자체가 아니라 그 변화 속에서도 이어지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재난 이후의" 이야기라는 데에서 해볼 수 있는 예상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재난 이후의 공간이 아니라 재난 이후의 시간이라고 하겠다.
글머리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작품이 중편 소설로서 취하고 있는 빠른 전개 속도는 바로 그 시간의 흐름을 충실히 담아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인, 혹은 자연적인 지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기능을 한다. 한 장과 다음 장 사이의 시간 간격, 심지어 한 페이지와 다음 페이지 사이의 시간 간격조차 크게 벌려두는 형식은 일견 이 작품을 냉혹하고 건조한 하드보일드 소설처럼 보이게까지 하지만, 냉정한 관찰과 조심스러운 절제는 다른 것이다. 케이트 윌헬름의 방법론이 후자라는 것은 이 무자비할 정도로 빠른 전개 속도 속에서도 작은 에피소드, 혹은 그 에피소드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자연 풍경을 묘사하는 지점에서는 아낌없이 유려한 필치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확신할 수 있다. 특히,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1부의 결말에서 우러나오는 뭉클함 역시 그 동안 절제해뒀던 감정들을 냉정한 대사 몇 마디와 자연에 대한 묘사를 대비하여 탁 풀어놓음으로써 이뤄지고 있으니, 이쯤 되면 클론이고 뭐고 간에 SF도 결국은 과학 자체가 아니라 과학을 이용해서 인간을 발견해내는 고유의 미덕을 지닌 예술품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나는 과거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밝힌 바처럼, SF의 진정한 즐거움 또한 바로 그 냉혹하고 삭막할 것 같은 과학이 인간 존재를 들여다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바로 그 상이한 두 대상을 훌쩍 뛰어 연결해내는 것이야말로 소위 SF의 "경이감"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데, (물론 방법론은 다르지만) 케이트 윌헬름의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또한 그런 즐거움, 경이감을 충실히 전달해주는 작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이 작품을 읽게 될 독자들 중에는 "내 인생의 책" 혹은 "내 인생의 작가"가 하나 더 늘었다는 기쁨까지도 함께 얻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심정임을 밝히는 데에 한 점 망설임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