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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밟기 ㅣ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7월
평점 :
꽤 오랫동안 미야베 미유키를 멀리했다. 갑자기 그의 소설이 싫어져 거부했던 건 아니다. 다만 북스피어를 필두로 여러 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미야베의 작품을 따라잡기가 힘에 부쳤을 뿐이다. 한때는 모든 작품을 모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로 좋아했건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정말로 전작이 나올 기세로 신간이 쏟아지자 오히려 지갑이 다물어졌다. 더구나 어느 순간부터는 ─ 아마도 『이름 없는 독』 이후가 아닌가 싶은데 ─ 제자리걸음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좀처럼 기복이 없는 작가였고, 어느 하나 재미있게 읽지 않은 작품은 없었으나, 오히려 그런 꾸준함이 독으로 돌아와 어느덧 '늘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작가'라는 인상이 생겨버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인생이 느긋하고 여유로워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책은 뭐든 다 읽을 만한 시간과 돈이 있었더라면 계속 읽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안락한 인생도 아니었다. 결국 『괴이』였는지 『흔들리는 바위』였는지를 끝으로 신간 따라가기를 포기했다. 그게 2008년에 나온 책들이었으니까, 어느덧 5년 가까이 지난 셈이다.
5년만에 신간 『그림자밟기』를 통해 다시 만난 미야베가 무언가 새로운 기쁨을 주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다. 북스피어의 대표인 마포 김 사장은 권말에 덧붙인 애정 어린 글을 통해 미야베 에도물의 변화에 관해 말해주고 있지만, 그의 글을 그만큼 가까이에서 꾸준히 따라오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러한 주장을 검토할 만한 경험이 없다. 나는 다만 기억 속의 미야베를 돌이켜 보며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을 따름이다.
기억 속의 미야베는 늘 조곤조곤하게 말하는 작가였다. 언성을 높이거나 호들갑 떨 줄을 몰랐고, 좀 더 몰아쳐도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에서도 먼저 사건의 난처한 정황과 인물의 어지러운 마음을 헤아려두고자 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간의 인상처럼 마냥 친절하거나 상냥하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못마땅한 일을 보면 '그래요? 그럼 별수 없지요.' 하면서 물러나는 대신 '그러면 못써요.'라며 따끔하게 꾸지람하는 쪽에 가까웠다. 요컨대 이쪽이 본문을 다하고 거리낌이 없으면 대하기 편할 테지만, 이쪽에서 캥기는 게 있으면 마주하기 두려울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치 작가와 직접 친분이라도 있는 것처럼 쓰고 있는데, 일단은 서술자가 캐릭터와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했다는 이야기지만, 아마 실제 품성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그림자밟기』의 미야베는 그런 기억 속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외모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사람을 두고 농담으로 흡혈귀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필치를 유지하는 작가라면 흡혈작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미야베는 어린 시절에도 나이가 어리고 체구가 작으며 지식이 지금만 못했을 뿐, 성격은 지금과 별다를 게 없고 딱 봐도 영특함이 우러나오는, 예컨대 「바쿠치간」에 나오는 오미요 같은 아이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총 여섯 편의 단편이 실린 『그림자밟기』는 미야베가 기왕에 써왔던 에도 배경 단편집들과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요괴나 민간 전승이 등장하는 괴담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귀신이 불쑥 튀어나와 내 다리 내놓으라고 하는 식의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저마다 사연이 있고, 달래주고 싶은 아픔이 있으며, 고통을 알고, 두려움을 품은 사람과 요괴의 이야기라는 점은 말해 봐야 입만 아플테지. 신령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 인간의 사정을 이해하여 요괴의 아픔을 덜어주는 이야기, 신령의 도움으로 요괴를 물리치는 이야기, 인간이 요괴보다 더 무서운 이야기, 요괴가 인간에게 도움을 청하는 이야기 등, 이 분야에서 익숙한 구도를 하나씩 짚어주는데, 어느 하나 빠지는 작품도 없어서 실로 모범적인 괴담집이라 할 만하다.
단편집 감상문이 종종 그러하듯 한 편 한 편 일일이 감상을 덧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다만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이라면 여섯 편의 단편 모두 '안 되는 점'이 있었다는 것이다.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되도록 해결하고자 노력해 볼 테고, 거기에서 인정이라는 것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인정만으로는 안 되는 문제도 있는 것이다. 이미 늦어버린 것,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 피할 수 없이 양보해야 하는 것이 늘 있다. 물론 이것도 이전의 미야베 소설에서 종종 느꼈던 것이기는 하지만, (아마 이 문제를 가장 대놓고 다룬 작품은 역시 『이름 없는 독』이 아닐까?) 『그림자밟기』에서는 유독 그러한 부분을 두드러지게 내밀어 보여준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 작가가 전보다 비관적이라거나 염세적으로 변했다고 할 생각은 없고, 다만 '좀 더 균형을 잘 맞출 수 있게 된' 것이 아닐까? 해결과 만족, 기쁨 안에 늘 잊어버릴 수 없는 상실과 고통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으니 감정적으로나 미적으로나 울림이 크고 시야를 넓혀주는 기분이다. 과연, 이런 걸 할 수 있으니까 늘 믿음직한 작가가 되는 거겠지.
끝으로, 다섯 번째 단편 「반바 빙의」만은 따로 떼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단편은 정말로 무섭다. 나 어린 시절 유행했던 『공포체험 쉿!』 유의, 작정하고 펀치 라인을 날리는 괴담집이라면 또 모를까, 공포 '소설'을 읽다가 이만한 무서움을 느낀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열대야처럼 끈적끈적 불쾌하게 달라붙으며 스멀스멀 밀려오는 미지의 공포라든가, 인간 사회에서 우러나는 아픔과 고통에서 우러나는 공포라든가 하는 거창한 '문학적' 포장 필요 없이, 진짜로 그냥 그 광경이 자꾸만 생각나서 잘 때 불을 못 끄게 하는, 어린 시절에는 참으로 익숙했던 그 무서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분위기로만 먹고 들어가면서 충격 효과로 일관하는 소설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밀도나 성찰은 다른 단편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할 거 다 하면서도 무대 장치와 시선, 인물의 성격과 어조를 통해 그와 같은 무서움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건 어떤 면에서는 『화차』나 『이유』 같은 대작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걸 해낸 작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림자밟기』는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