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관 1 - 법의관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5
퍼트리샤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노블하우스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추리소설을 읽을 때 사용하는 (지극히 자의적인) 구분법은 '레이먼드 챈들러 이전/이후'다. 챈들러 이전(BC)과 말로 이후(AM)라고나 할까. 이 구분법은 전적으로 내 빈약한 추리소설 독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2003년에 (박찬욱 감독이 언급했다는 이유만으로 절판된 녀석을 출판사에 전화까지 해서 애써 구해서) 읽었던 페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이 시발점이었다. 사건을 자꾸 부풀리고 인물도 계속해서 추가되는 그 복잡한 플롯 속에서 길을 헤매며 가까스로 작품을 다 읽었을 때, 나는 분명히 이 작품이 기존에 읽었던 아서 코난 도일이나 모리스 르블랑, 혹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과는 어딘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2004년에 북하우스에서 출간을 시작한 레이먼드 챈들러의 필립 말로 시리즈를 보고 나서 그 느낌은 좀 더 분명해졌다. 작품들이 추리소설로서의 추리 구조 외에 다른 것을,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담아내려고 하고 있다는 느낌.

 그게 아마도 장르가 자의식을 갖게 된 일종의 분기점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장르가 자신이 갖추고 있는 아이콘과 플롯, 이야기 방식 등을 엮어내는 즐거움 속에서 노닐다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그렇게 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순간이 있다. 내가 지금까지 왜 이렇게 놀고 있었을까, 나는 왜 이런 놀이 방식을 좋아하는 걸까, 기타 등등. 자기 행동에서 의미를 찾아가기 시작하는 것, 그것이 장르가 겪게 되는 성장이라고 본다(물론, 사람의 발달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신생아들은 외부 환경이 가져다주는 자극에 익숙해진 다음에야 자신을 인식하지 않던가). 한 장르의 맥이 완전히 끊겨버리지 않는 한, 후대의 작가들은 선대의 작품들 위에서 자라나기 마련이며, 따라서 장르가 '자신을 돌아보는', 이 성장 과정은 필연적인 듯 하다.

 그리고 특히 수많은 장르들 중에서도 추리소설의 성장 과정은 무척 흥미롭다. 그것은 아마도 이 장르가 다루고 있는 '범죄'라는 요소가 사회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인간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기 때문인 듯 하다. 추리소설의 자기의식이 강해져 감에 따라, 이 장르는 점차 사람과 사회를 담아내는 데에 능숙해지고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시기만 해도 '아편쟁이 홈스' 운운하며 독자들에게 사소한 즐거움을 던져주는 정도의 요소에 불과했던 추리소설의 '캐릭터'는 이제 더 이상 범죄를 수사하는 역할을 맡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건과 관련을 맺는 유기적인 구성요소로서 존재하게 된다. 스밀라(『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 해리 보슈(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 시리즈. 우리나라엔 『블랙 에코』와 『블랙 아이스』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쿠르트 발란더(헤닝 만켈의 쿠르트 발란더 시리즈. 좋은책만들기 출판사를 통해 이 시리즈의 중요한 작품들 몇 편이 소개되었다) 등의 '탐정'들과 사건 사이의 거리는 셜록 홈스나 에르퀼 푸아로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가깝다. 객관적인 관찰자, 해결사, 장르를 즐기는 태도… 오늘날의 추리소설들은 그런 것들을 상당부분 벗어던지고 있다.

 장르 이야기가 이토록 길었던 것은, 이번에 읽게 된 퍼트리샤 콘웰의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제1작인 『법의관』이 바로 그러한 현대 추리소설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법의관』은 추리소설의 장르적 특징에도 충실한, 추리소설다운 추리소설이다. 역자 유소영 씨가 역자 해설에서 언급한 것처럼, 주인공인 버지니아 주 법의국장 케이 스카페타는 법의학자로서의 전문 지식을 최대한 동원하며 사건을 논리적으로 파헤쳐 나가는 20세기(본작은 1990년에 발표되었다)의 셜록 홈스와 같은 인물이다. 단서를 중심으로 사건의 구조를 밝혀내고 전체의 얼개를 그려내는 과정은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법의관』을 짜임새 있는 추리소설 이상으로 만드는 것은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다. 케이 스카페타는 더 이상 전대의 명탐정들 같은 '사고기계'가 아니다. 사건에 대한 수사 내용만큼이나 전면에 부각되고 있는 그녀의 삶은 독자들에게 단지 캐릭터에 대한 자그마한 즐거움(셜록 홈스가 코카인 상용자라는 사실이 셜록키언들에게 제공해주는 것과 같은)을 제공해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작품 전체의 내용과 맞물려가며 소설이 담고 있는 삶의 모습을 깊이 드러낸다. 연쇄 살인 사건의 네 번째 피해자이자 이 작품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로라 피터슨의 살해 현장에서 그녀가 자신처럼 의사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케이의 모습은 이후 작품 속에서 여러 번 등장하면서 그녀가 범죄를 마주하며 느끼는 두려움과 분노를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 해결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조카인 루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 자식에게 무책임한 동생 대신 잠시 루시를 맡고 있는 케이는 사건을 수사하는 중간 중간 계속해서 조카를 의식하며 그녀와의 관계 맺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장미꽃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며, 인간관계의 기반은 논리가 아니다. 나는 지성과 이성이라는 벽 뒤로 숨어버리는 것은 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자기 보호를 꾀하는 비겁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와 같은, 뼈를 저리게 하는 문장 속에서 이뤄져 가는 케이와 루시의 관계는 타인에 대한 이해의 과정에서 오는 잔잔한 즐거움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사건의 전개와도 깊은 연관을 맺게 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타인을 이해한다는 측면에서 특히 나를 감탄하게 했던 것은 저돌적인 형사 마리노가 아내가 죽은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유창하게 진술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의심하자 케이가 그 남편을 옹호하며 했던 말이었다. "그에게는 세상이 다 언어예요, 마리노. 미술가라면 그림을 그려줬겠죠. 피터슨은 말로서 그림을 그려준 거라고요. 그게 그 사람의 존재 방식이고 표현 방식이에요. 오로지 언어를 통해서. 이런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실로 심장과 폐부를 꿰뚫는 통찰력이 아닌가! 이런 말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을 곧잘 하는 사람들이라면 케이의(혹은 콘웰의) 이 말 한 마디가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얼마나 깊은 지점을 건드리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작품이 '스릴러'임을 생각해 본다면 퍼트리샤 콘웰이 얼마나 글을 잘 쓰는 작가인지 실감이 날 듯 하다. 정교하고 복잡한 추리소설의 구조를 엮어내고, 그 속에서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유지하고, 출간 당시에는 생소한 영역이었던 법의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알기 쉽게 제시하면서, 스릴러로서의 속도감까지 가꿔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콘웰은 그 쉽지 않은 일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1990년에 시작된 이 시리즈를 이제야 제대로 만나게 됐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질 법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제부터 접하게 될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아쉬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아무쪼록 노블하우스 출판사의 시도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간절히(정말 간절히 빌어야 한다. 그간 시장성 부족을 이유로 중도하차하는 시리즈 번역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바란다.

 

 덧. 『법의관』은 두 권으로 분권 출간되었으며,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제2작인 『소설가의 죽음』 역시 두 권으로 분권 출간되었다. 노블하우스의 분권 정책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데, 무조건 잘게 쪼개놓고 사 보라고 하는 밉살맞은 출판사들과 달리 노블하우스는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데에 주저함이 없어서 무척 반갑다. 『법의관』 이하 이 출판사의 분권에 관한 최근의 토의를 보시려면 국내 유명 추리소설 홈페이지인 HOWMYSTRY.COM의 자유게시판 2004년 12월 5일자 글과 그 글에 달린 여러 덧글들을 확인하시길.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howmystery.com/zeroboard/zboard.php?id=c1&page=7&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332

 개인적으로 역시 분권은 싫어하는 입장이지만 출판사가 독자들과의 교류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의사교환에 앞장선다면 (마음 넓은 나로서는) 이해해주고도 남는다. 분권과 별개로, 책의 판형과 표지 디자인, 종이질과 무게 모두가 마음에 들었다. 편집의 경우 더 빡빡한 편집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법 하다. 내 경우는 시각적으로 헐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내가 페이지 당 줄 수가 줄어들고 글자 크기가 커지는 경향에 불만을 품는 이유는 물론 페이지 수가 늘어나 책값이 비싸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게 시각적으로 헐렁해 보여서 종이를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별 불만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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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0-13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처음으로 읽어보는 작가라... 내용에 관한 것은 흐릿하게 보구요. 전반적인 평은 '제대로' 읽었습니다. 빽빽한 데도 아주 잘 읽히는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