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각양각종의 SF를 좋아하면서도 결국 가장 훌륭한 SF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면 다소 꽉 막힌 원리주의자처럼 "SF의 본질", "SF만이 제공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 생각하면서 하드 SF 쪽으로 기울고 마는 성벽과는 반대로,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이 장르의 팬들이 제일로 치는 즐거움, 즉 사건의 해법을 둘러싸고 작가를 대상으로 벌이는 두뇌 싸움에는 통 관심이 가지 않는 편이다. 몇몇 독자를 농락하는 데에 우수한 솜씨를 발휘하는 퍼즐 미스터리,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읽을 때면 종종 작가가 유인하는 방향대로 머리를 돌려가며 '이 사람이 범인인가? 아니면 저 사람?'하는 식으로 정답을 추측해 보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모 아니면 도, 복권 긁듯 때려 맞추는 기분일 뿐, 나름의 추리력을 동원하여 가설을 세우고 정말로 퍼즐을 풀 때처럼 접근하는 경우는 없다.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꼽아 보아도 서구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혹은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 대가들이 쓴 작품이 떠오를 뿐이니, 내게 추리소설이란 작가와 독자의 공정한 두뇌 싸움보다는 파편적인 정보를 수집해 가면서 전체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 자체의 모습에 주목하는 장르가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니 앞서 추리소설의 본질은 결국 두뇌 싸움이 아니겠느냐고 말했지만 성급한 판단일수도 있겠다. 추리소설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에드거 앨런 포나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이 그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공정한 두뇌 싸움을 제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범죄 수사 과정 자체가 암시하는 근대 세계의 풍경이나 세계관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런 까닭에 사회파 추리소설들에 반기를 들고 추리소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며 쏟아져 나온 이른바 본격 추리소설들에는 오히려 정이 안 가는 편이다. 이 방면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 같은 작품을 읽어 보아도, 물론 몇 백 페이지를 할애하여 가열차게 두뇌 게임을 시도하는 그 결기에는 압도당하게 되지만 결국 좀처럼 다시 읽고 싶어지거나 평생 곁에 두고 함께 하고 싶어지지는 않는다고나 할까. 물론 모든 좋은 책이 반드시 그런 매력을 발휘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몇 백 페이지를 따라 왔는데도 결국 미술관 도록을 통해 걸작 명화를 감상하는 듯이 마음은 이만큼 멀리 떨어진 채로 '그것 참 걸작이로고.'한 다음 곧장 옆 페이지로 눈을 돌리는 기분이 들어버리니, 책에게나 나 스스로에게나 서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하드 SF가 요구하는 박진감 넘치는 사고의 확장에는 적극 동참하면서 본격 추리소설의 게임에는 응하지 못하나. 아마도 하드 SF는 사고의 전환을 함께 해주지 않으면 이야기, 혹은 특정 장면의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반면 퍼즐 미스터리의 경우 독자는 어디까지나 왓슨 박사와 같은 존재로, 사건의 진상을 꼭 파악하지 않더라도 이야기를 질질 끌리듯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고의 전환은 어디까지나 명탐정이 알아서 해주면 그만이고 독자는 뒤늦게 설명을 받아 먹기만 해도 된다고나 할까. 소설이 제공하는 서사 자체의 추동력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태를 정리하고 스스로 답을 찾고 싶게 만드는 호기심을 압도하기 때문인 듯도 한데, 그렇다면 사실 본격 추리소설이 의도하는 바에 가장 어울리는 형식은 소설의 형식이라기보다는 소시적에 나와 같은 어린이들을 즐겁게 하곤 했던 퀴즈 형식의 추리 문제집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저런 가설 및 자기 변명에도 불구하고, 이 장르의 애독자라면 줄창 삭막하고 냉엄하고 우울하고 우수에 젖은 하드보일드만 읽어댈 수는 없는 노릇. 아무리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한 번쯤은 수학 문제집을 다시 들춰 보고 싶어지듯 (나만 그러려나?) 종종 다시 본격 추리소설의 세계로 눈을 돌리고 싶어지는 시기가 있는데, 최근의 내가 그랬다. 그리하여 몇몇 작은 실패들─별로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작품들의 이름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을 뒤로 하고 집어든 책이 바로 기시 유스케의 신간, 『도깨비불의 집』 이다. 기시 유스케라면 공포소설, SF, 인터랙티브 게임 소설, 본격 추리소설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필력 있는 작가로 나도 꽤 여러 작품을 읽은 바 있는데, 특히 『도깨비불의 집』의 전편에 해당하는 본격 추리소설 『유리 망치』의 경우는 나도 퍽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더욱 흥미가 생겼다.

 전편과 달리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단편집인 이 작품은 전편의 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방범설비 전문가(이자 전직이라고는 하지만 현직임을 의심하게 만드는 도둑놈) 에노모토 케이 콤비가 일련의 밀실 살인 사건에 도전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아 그러십니까,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독이 될 수도 있는 설정이다. 이미 『유리 망치』를 통해 밀실 트릭의 끝을 한 번 본 상황에서 하필 같은 캐릭터를 등장시켜 밀실 트릭을 네 번이나 더 다루다니, 이쯤되면 두뇌 싸움이고 뭐고 하기 이전에 밀실 강박에 대한 패러디처럼 느껴질 법도 하다. 물론 애초에 퍼즐 미스터리의 탐정들이란 범인(凡人)의 상궤를 뛰어 넘는 횟수의 범죄 상황을 꾸준히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자들이고, 그러거나 말거나 독자들은 아무튼 게임에 말려들고 만다는 사실은 추리 만화의 양대 거두 긴다이치 소년과 소년 탐정 코난이 여실히 증명한 바 있다. 하지만 여러 작가의 밀실 트릭만 골라 묶은 앤솔로지도 아니고, 똑같은 캐릭터가 계속 등장하는 가운데 밀실 트릭만 네 번을 다루는 단편집이라니, 쓰는 쪽도 읽는 쪽도 식상해지기 십상이며, 처음 한두 사건은 그럭저럭 읽어간다 치더라도 뒤로 갈수록 상황 자체의 어이없음에 헛웃음을 흘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기시는 이 점을 충분히 잘 커버해 내고 있다. 이 작가는 퍼즐 미스터리를 다루더라도 일본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표작들이 종종 그러하듯 사실상 이름이고 뭐고 상관 없이 "탐정" 내지 "문제 출제자" 정도로만 꼬리표를 달아도 괜찮은 백지장처럼 얇은 캐릭터를 만들지 않고 최소한의 삶을 부여하고 있는데, 일단 이 점이 독자로 하여금 사건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진입로 역할을 해준다. 당장 독자들이 머리를 쥐어 감싸고 신음하는 꼴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나서 캐릭터들이 만나고 사건에 다가가는 과정은 대강대강 해둔 채로 문제를 툭 던지는 대신 주인공들이 평소에 뭘 어떻게 하고 사는 인물인지, 그런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런 사건과 얽히게 될 수 있는지를 촘촘히 꾸려 가고, 인물의 성격을 기반으로 해서 그들이 사건에 접근하는 태도와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을 결정한다.

 이 점이 가장 잘 드러난 단편이 두 번째 단편인 「검은 이빨」이다. 이 단편은 사건이 벌어진 하나의 방 안에 세 등장인물이 함께 있다가 탐정 노릇을 하는 인물이 이따금씩 밖으로 나와서 다른 탐정과 의견을 교환하고, 다시 들어가서 가설을 체크하고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다시 나와서 토론하고, 또 들어가서 가설 체크 및 정보 수집 과정을 거치고… 하는 짓을 몇 번이나 반복하는, 실로 작위적이기 그지 없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변호사 준코가 어떤 계기로 해서 이 방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그를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은 어떤 성격을 지닌 사람인가 등등이 이 상황을 너무나도 잘 지탱해 주고 있어서 독자는 구조의 인위성을 단점으로 여기기 보다는 오히려 매번 다시 방에 들어가는 준코의 결정에 동의하게 되고, 그 결정이 야기하는 곤란함을 즐기게 된다. 예를 들어 죽은 친구가 남긴 애완동물을 보호하겠노라고 열을 올려대는 막무가내 의뢰인을 만나서 땀을 뻘뻘 흘리는 준코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의 도입부는 웬만한 작품들에선 그냥 가벼운 유머나 캐릭터 설정으로만 남았을 터이다. 그러나 기시는 여기서 준코가 "애완동물"의 정체를 오해하게 되는 과정과 그로 인해서 의뢰인을 달래고자 섣불리 떠올리게 된 애완동물에 관한 법률 등속을 자잘한 재미로만 남겨두는 대신 그런 자잘한 착오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이어지고, 그 실수에 대한 걱정이 이야기 내내 준코의 심리에 남도록 하면서 그녀가 계속해서 이 밀실에 매달리게 만든다. 밀실 트릭 자체뿐만이 아니라 서사를 끌고 가는 캐릭터 또한 독자로 하여금 현장에 함께 남아 준코와 함께 사고해주기를 요구한다.

 한편 『유리 망치』에서도 느꼈던 점이지만, 기시의 본격 추리소설은 성실하고 집요한 면이 있다. 작가 자신도 그렇지만 등장인물들도 그래서,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가능한 온갖 해법을 다 제시하고 그걸 또 일일이 반론을 펴면서 부정한다. 웬 머리가 기가 막히게 좋은 놈 하나가 멀찍이서 이리저리 현장 좀 둘러 보고 "아, 이제 알겠군. 하지만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야."라며 시건방지게 굴지 않아서 좋다. 준코건 케이건 두뇌를 풀가동해서 계속 생각을 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이 다 드러난다는 말이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단서를 독자에게도 다 제시해주는 소설보다는 이쪽이 더 '공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접근법에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주인공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 가지의 가설을 검토하는 과정을 따라 가고 있노라면 묘하게도 여기에는 단 하나의 해법만 있지 않고 여러 가지의 해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물론 범인이 취한 행동은 분명한 하나의 과거로 남아 있고, 결국 주인공들은 그 행동을 역추적해 찾아내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범인이 취했을 수도 있는 다른 수법'에 대해서도 눈을 돌리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비록 결말에서 주어지는 정답은 하나일지라도, 폐기된 가설들 또한 정답 못지 않게 풍성하고 합리적이며 '벌어질 수도 있었던 경우의 수'임을 의식하게 된다. 그런 사고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퍼즐 미스터리가 빚어내기 쉬운, 결말에 집착하는 태도가 흩뜨려지면서 사고 자체의 풍성함을 즐기게 되고, 현실을 한 가지 형태로 고정된 과거의 무엇으로 파악하기보다는 하나의 결과를 둘러싼 여러가지 가능항이라는 형태로 인지하게 된다. 퍼즐 미스터리에서이런 인지적 풍요로움을 맛본 예가 극히 드물기에 놀라운 즐거움이었다.

 더불어 단편이라는 형식 또한 기시에게는 득이 되고 있다. 기시 소설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한다면 성실하게 조사한 내용을 작중에서 몽땅 써먹으려고 드는 태도다. '대체 저런 지식은 어디서 알아 왔을까' 싶을 정도로 상세한 정보를 대사를 통해 끌어들인 다음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 죄다 실제로 써먹는데, 이게 장편 소설이라는 형식에서는 좀 답답하고 꽉 막힌 느낌을 불러 일으키기가 쉽다. 반면 단편에서는, 특히 본격 추리 단편에서는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정묘한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에 효과적이다.

 끝으로 특히 마지막 단편에서 드러나는 자의식적 태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작중에서 준코가 '이러다가 밀실 사건 전문 변호사로 찍히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대목도 여러 번 등장하지만, 점점 더 강도 높은 밀실 트릭을 꾸려 가다가 마지막 단편 「개는 알고 있다」에서 톤을 바꾸면서 밀실 사건만 중첩되는 이런 상황 자체에 대한 일종의 패러디를 시도하는 솜씨는 흥겹기까지 하다. 이쯤 보여줬으니까 이제 슬슬 밀실에 집착한 우리네의 정신 세계를 두고 함께 웃어 보자는 식인데, 놀라운 점은 그러면서도 또한 여전히 합리적인 밀실 트릭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도 『명탐정의 규칙』에서 비슷한 시도를 하긴 했지만 그 경우 사실상 밀실 트릭을 탐구하는 태도 자체는 포기하고 공허한 패러디로만 남은 반면 기시는 양껏 웃음을 안기면서도 여전히 밀실 트릭을 훌륭히 완성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우수하다.

 결과적으로 최근에 읽은 일련의 본격 추리소설 작품 중 특히 만족스러웠던 작품으로, 새삼 100% 퍼즐 풀이에만 집착하는 태도보다는 여전히 "소설"로서의 입장을 성실히 의식하면서 인물을 꼼꼼히 구축하고 나아가는 작품 쪽이 결국은 퍼즐 미스터리로서도 성공적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되새겨주는 예라 하겠다. 단편인 만큼 휘몰아치는 맛은 없지만, 언뜻 보기에 가벼우면서도 충일감을 제공해주는 독서를 원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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