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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우르반 바허.마르코 헤으만 지음, 강영옥 옮김 / 다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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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

하노 벡, 우르반 바허, 마르코 헤르만 지음


열심히 저축하면서 성실하게 살다 보면 가끔은 이런 의문이 든다. 이렇게 내가 모은 돈들이 나중에 얼마나 내게 현실적인 도움을 가져다 줄까 하는 생각.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 현금은 계속되는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그 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자산 투자를 위한 공부를 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 그저 성실하게 저축하는 데에 자족하게 된다.


건실한 경제는 매년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오히려 무서운 것은 디플레이션이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소위 ‘D의 공포’라고 불리는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자산 거품이 꺼지고 그로 인해 모든 경제 주체들의 삶이 망가지기 시작하는 것. 하지만 일상적인 경제상태에서의 인플레이션도 그 못지 않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다.


사람들이 성실하게 살면서 미래를 위해 모으는 현금들이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얼마나 쉽게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인플레이션이 존재하는 미래 상황에 대비하여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투자를 해야 위험하지 않은 미래를 그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한다.


부자들의 생각법, 경제학자들의 생각법으로 미리 접했던 하노벡을 비롯하여 독일의 저명한 인물들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생각들을 우리의 현상에 접목해 가면서 실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는 데에 투자한 짧은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이다.


 

다산북스 나나흰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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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재테크의 미래 - 대한민국 미래의 부를 창출하는 새로운 투자법
정재윤 지음 / 다산3.0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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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에게 일을 맡기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요즘 우리가 로봇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느끼는 기분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흡사 찰리 채플린이 모던타임즈를 만들던 시대의 사람들이 기계에 대해 느꼈던 감정이 이런 것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당시에 느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의 자리를 기계가 대신해버리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당혹스러움 일 것이다. 아니, 당혹스럽다는 말로는 한참 부족한 두려움일 것이다.


 

한 개인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말에는 그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하며 이를 통해 다른 사회 구성원과 소통함으로써 사회에서 살아나가는 구심점을 찾는 것. 그런데 많은 공장 노동자가 해왔던 일들을 갑자기 기계들이 등장하여 대신 하겠다고 나서니, 그들은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사회에서의 한 몫을 담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일자리를 뺏기고 아무런 할 수 있는 또는 해야 할 일이 없는, 사회의 떠도는 1인으로 전락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당시의 많은 이들은 이런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고, 자신의 일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현 시대를 사는 우리들도 지금 우리의 일을 대체해 가는 로봇을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조금은 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가질 직업은 그 절반 이상이 우리가 지금 알지도 못하는 일들을 하는 직업일 것이고,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은 많은 부분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들이 팽배하다. 현 시대에 안정적이라고 일컬어지는 전문직의 분야에 조차 인공지능을 위시한 로봇의 위력은 강력하다는 것. 변호사가 수많은 페이지의 법전과 다수의 판례를 참조하여 변호의 논리를 만드는 것보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이 이를 대체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의사의 섬세한 수술작업을 대신하는 로봇이 현재도 인간의 손을 대신하여 수술하고 있는 것. 아직까지는 로봇수술이 비용도 비싸고, 여러가지 논란을 낳고 있지만, 원래 새롭게 도입한 모든 것들이 이러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시기를 지나서 안착하는 과정을 거쳤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혹시 얼마 지나지 않은 미래에 많은 수술을 로봇에게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의 창조성, 창의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나, 혹은 타인을 직접 대면함으로써 발생하는 정서적 안정을 필요로 하는 일들은 로봇이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니, 이 분야에서 인간은 자신의 일을 찾아낼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일들 조차 언젠가는 인간과 정말 거의 비슷한 로봇이 등장하여 대체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일과 생활,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 로봇이 어디까지 침투해 올 지는 대체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해내야 하는 것인지, 그것또한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느낀다. 더불어 우리는 미래를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과 일을 하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일까?


 

4차 산업혁명 재테크의 미래

정재윤 지음


 

정재윤의 저작 4차 산업혁명 재테크의 미래에서는 자산 운용의 분야에 이미 시행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다룬다. 기존의 펀드매니저등이 했던 일들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고, 또한 수익률적으로도 더 나을 수 있다는 것이다. 로봇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대로 또 로봇의 능력에 대하여 무한한 신뢰를 갖는 사람들이 있다면, 혹시 로봇이 펀드를 운영하면 훨씬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어느 주식이 미래에 더 나은 수익률을 가져올것인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것은 로봇 또한 마찬가지다. (심히 아쉽지만. ) 어느 주식이 더 높은 수익률을 가져올 지 예측할 수 있다면 우리는 뭐하러 포트폴리오 라는 것을 구성하겠는가? 그저 높은 수익률을 가져오는 주식 하나만 왕창 보유하고 있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이렇게 완벽하게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기에 우리는 불확실한 위험성을 보유한 채로 포트폴리오라는 것을 구축하여 투자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에 로봇은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는 해리 마코위츠가 개척하여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이론인 현대포트폴리오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배치하여 포트폴리오의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것. 사람과 달리 인공지능은 세상의 모든 자산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후 자산을 배분할 수 있으므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 자산들이 어떤 관계에 양상을 보이는 지 파악하는 데에 인간보다 유리하다는 것이다.


 

정재윤은 이러한 로보어드바이저를 소개하기 위해서 앞부분의 많은 장을 할애하여 투자의 본질과 여러가지의 재테크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투자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부동산 투자에 대한 저자의 인식과 장기 투자에 대한 견해도 새롭다. 장기 투자가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 장기투자에 선행될 것은 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는 주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는 것이다.


 

역시 주식으로 성공하기는 아주 힘들며, 이게 가능하다면 주식투자에 아주아주 굉장한 능력이 있는 것이므로 아예 주식투자를 전업으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한 친구의 말이 정말 옳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일본이나 미국의 10년 전의 일들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어느 책에서 본 문구가 맞다면, 일본의 자산가격, 부동산 폭락처럼, 지금의 우리나라 자산가격, 특히 부동산 가격에 끼어있는 버블이 언제가는 꺼질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부동산도 투자의 대상으로 마땅치 않은 것은 아닐까 우려도 생긴다.


 

너도나도 전세제도를 이용한 부동산 갭투자에 나서는 작금의 상황으로 볼때, 어쩌면 우리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정점에 올라 떨어질 때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부동산 투자의 위험성이 더 크게만 느껴지는 때인데, 정말 미래의 재테크는 로보 어드바이저가 답인 것일까?


 

자율주행 자동차이든, 로봇수술이든 처음 시행되는 것에 대한 착오나 실수가 두려워서 얼리어답터는 태생적으로 힘든 내가 로보어드바이저에 빠르게 올라탈수 있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뭐라도 투자할만한 돈을 모으고 있는 동안에, 이런 것들 모두 안정적인 궤도를 형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든다. 어떤 투자 방법을 선택할까 고민하기 이전에, 뭐라도 할 수 있을 자금을 먼저 확보하는게 우선이라는 기초적인 생각을 하도록 하게 만드는 고마운 책. (그리고 뭔가, 돈을 버는 것은, 자잘한? 투자들로는 가능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기도 하고. )   


 

p.32 돈을 찍어내는 것이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서 가치를 창출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금융이 실물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자안다. 문제는 잠시 그럴수 있지만, 이 금융과 실물의 괴리가 과도하게 커지면 항상 버블이 생기고, 얼마지나면 버블 붕괴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p.35 일본의 거품붕괴는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촉발된 엔고와 저금리에 따른 거품이 하늘높이 치솟아 결국 터진것.

저금리로 실물 경기가 살아나면 좋겠지만, 실제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부동산과 주식등의 자산시장이다.


 

p.59 투자의 신 혹은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언제나 장기투자, 가치투자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우리는 워런 버핏이 아니고, 쉽게 될 수도 없다. 그리고 진짜 중요한 건 투자의 기간이 아니라 좋은 주식을 고르는 눈이다. 그러니 근거없는 희망고문에 시달리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p.177 결국 한국 집값의 문제는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엄청난 격차의 문제다. 이 격차를 어떻게 지속가능할 정도로 줄일 것인가, 바로 여기에 주택정책도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p.242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도 탐욕과 부에 대한 욕망은 “보편적인 인간의 성향이며 이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갈파하기도 했다. 튤립투기는 화훼산업의 무궁한 발전에 대한 기대, 일본 부동산 버블은 부동산 불패신화에 대한 신념, IT버블은 신기술에 대한 맹목적인 기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주택가격의 지속적 상승 기대 등 낙관적인 환상이 가득했던 것이다.


 

p.245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 P. 케네디의 이야기가 교훈을 준다. 조지프 케네디는 미국 주식시장의 큰손으로 작전 등을 통해 큰 돈을 벌었고, 루스벨트 대통령 시기 초대 미국 증권관리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1929년 세계 대공황 직전 증권거래소 근처에서 구두를 닦는데 구두닦이가 자기도 있는 돈을 모두 모아 주식투자를 시작했다고 자랑하는 말을 듣고, 이건 아니다 싶어 가진 주식을 모두 팔았다고 한다. 위기 발생의 조짐, 즉 쏠림 현상이 끝까지 가서 거품이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시장 분위기로 느낀 것이다.  


 

*도서제공: #다산북스

#다산북스북클럽나나흰 7기


 

이 글은 제 네이버 블로그 #김경옥 의 #옥님살롱 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http://expert4you.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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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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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큐레이션


 

가끔 들르는 카페에 책들이 몇권 꽂혀 있는데, 그중에 소설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문장들이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쉬지 않고 금새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그곳에 놓인 책들은 카페 주인장의 컬렉션이리라. 도서관에 가면 꽂혀 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난 언제나 제목을 보고 그냥 고르지만) 서점에 가면 그래서 베스트셀러라고 한데 모아놓은 곳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고르기도 하고. 그러다 후회하기도 하고.

 

한정된 시간에 출간되는 모든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기에, 나 보다 먼저 그 책을 읽은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꽤 유용하여 우리는 서평들도 찾아 읽고 하는 것이 아닐까?(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서평들을 찾아 읽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을 읽고 있으면, 마치 독서토론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런 의미에서 동네 작은 카페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꽤 유용하다. 이미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서 몇권 정도 큐레이션 된 책들. 잘 알지 못하는 그 이지만, 그래도 그의 취향을 넌지시 엿본다는 것이 나쁘지 않은 기분이기도 하려니와, 방대한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수고로움을 약간이나마 덜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다.(그곳이 꽤 예쁘고, 또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라면, 앉아만 있어도 감성적인 생각들이 솟아나는 곳이라면, 금상첨화)  



 

나의 도쿄타워와, 토오루와 시후미의 도쿄타워


 

내 첫 일본 여행지였던 도쿄에서, 꼭 봐야 한다는 도쿄타워를 가기 위해서 꽤 멀어보였지만, 그곳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던 친구와 나는, 결국은 길을 잘못들어, 포기하고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서 노닥거렸다. 아, 힘들게 걸었지만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서로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서(웃으면서) 카페에 들어가서 지친 몸을 쉬고 있었어도 즐거웠다. 결국 그날 도쿄타워는 걸어서는 못가고 택시타고 갔다가 다시 택시타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땐 무슨 치기 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도쿄 여행에서 우리는 걷기 + 택시 타기 하면서  돌아 다니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도쿄 지하철 구경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지하철 두코스 정도만 탔었다.  


 

이 이야기는 도쿄타워를 중심으로 전개 된다. 주인공 토오루의 사랑을 받는 시후미가 늘 택시만 타고 다녔던 것은 나의 도쿄 여행에서의 택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읽으면서 몇번이나, 나의 도쿄타워에서의 추억이 생각 났다. 그러면서, 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도 했다. 문학 작품을 읽을때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장소가 궁금해 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더 가슴깊이 와닿기 마련이기에, 나는 내 추억이 어린 장소인 도쿄타워가 제목인 것을 보고 이 책을 고른 것이 아주 잘 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쿄에 며칠간 머물렀을때, 나는 여기 다시 오리라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다른 지역에는 몇번 갔지만, 결국 도쿄에는 아직까지 다시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내가 그때 잠시동안 있었던 그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오랫동안 살고 있는 그들을 생각했다. 나는 이들의 삶의 장소를 보았던 것이구나. 내겐 그냥 한번 봐야 했던 곳, 도쿄타워가, 그 곳이 자신들의 가슴속에 마치 부모님처럼 어릴때부터 늘 가슴속에 존재했던, 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도쿄타워 줄거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에는 이제 갓 스물살이 되는 청년과 마흔 언저리의 여자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은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토오루와 코우지는 연상의 여자, 그것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와 만나서 사랑을 하지만, 둘은 많이 다르다. 토우루는 시후미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늘 시후미가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느끼면서 시후미가 좋아하던 노래,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녀와의 미래를 생각한다. 함께 생활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은 것.  

 

하지만 코우지는 그녀들을 마음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츠코 라는 연상의 여인을 만나서 사랑을 하기도 했고, 그 여인과 헤어진 후로는 키미코 와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로만 만날뿐 깊게 생각하지는않는다. 언젠가는 정리해야만 하는 관계들. 반면에 자기 또래인 여자 친구 유리 와는 보다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지만, 이것조차 쉽지는 않다.

 

그렇게 둘은 아주 단짝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다른 청년들.



 

현실의 불륜과 불륜의 이야기


 

벌써 출간된지 몇년 된 소설이지만, 검색해 보니, 아직도 나처럼 읽는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불륜을 아름답게 그린 소설이라는 비판도.


 

아랍권의 문화에 대해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다. 하렘. 술탄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곳.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그린 많은 그림에서 이슬람 하렘은 늘 벗고 있는 여인들을 그림으로써, 성적으로 난잡하고,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곳이라고 싸잡아 매도하면서도 질투 또는 부러움의 시선을 담아 묘하게 조롱하듯 이야기 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성적으로 문란하게만 묘사하는 그 선진국의 사람들은 정말 모두 한명의 부인만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 “쉬, 쉬” 하면서 모두 알고 있는데 말이다. 한 집에만 살고 있지 않을 뿐, 다수의 부인들을 두고 있는 남자들이 요즘에도 얼마나 많은지.


 

(나는 며칠전에도 어머니 또래의 어떤 여자분의 입을 통해, 그분의 여동생은 이혼했는데, 그 이유가 제부가 다른 여자한테서 아이까지 낳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혼했을 당시  제부는 이혼 안한다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본처에게 와서 빌었었으나, 본인 집에서는 거기까지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이혼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도 이제 남편이 그렇게 비는 모습조차 정내미가 떨어져서 보기 싫어했었다고.    


 

그리고 내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남편은 알고 지내는 어떤 사업가 얘기 중에 우연히, 그분은 부인이 둘 있다고 했었다. 내가 말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중혼 불법인데, 어떻게 부인이 둘이 되냐? 했더니, 첫째 부인에게도 아이가 있고, 둘째 부인에게도 아이가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두명의 사모님 집을 다 가봤다고 해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었다.

그 이후 심지어는  내가 직접 어느 모임에서, 어떤 남자분이 본인이 실수로 (부인 말고) 다른 여자한테서 애를 하나 낳아가지고, 아직도 챙기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직접 내 귀로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던 기억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너무나 많은 경우에  부인이 한명이 아닌 경우가 많거늘. 최근에 “그쪽에도 딸이 있는데, 딸을 버릴수 없지 않냐” 이혼을 요구하는 모 기업의 회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굳이 재벌이 아니어도 이런 경우는 많을 것이다.


 

남자만 그럴까? 여자도, 남자보다 그 경우의 수가 적기는 하겠지만, 여자도 남편 외에 ‘두집 살림’ 하는 경우 다수 일 것이다.)


 

모든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들도 현실을 반영해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또한 허구, 픽션이기에  소설 안에서 우리는 우주에도 가고, 타임머신도 타고, 동물들도 말을 한다. 이런 공상의 이야기들도 그려지는 마당에 소설에서 이미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얘기를 그리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소설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또한 깨닫는다. 모든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랑 또한 멀리서 보면 그것이 불륜이라 지탄받을 지라도, 그들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사랑또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을.


 

이 책은 그 도쿄 타워가 소설의 제목이길래 골랐는데,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는 그 사랑이야기가 불륜이어서 사실 나도 약간 당황하기는 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문장이 아름답고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워서 금새 처음에 주춤했던 마음은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 개개인의 도덕률은 본인이 알아서 지키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나 보다)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p.21 아이는 없고, 대신 가게와 자유를 갖고 있었다.

p.56 즐겁게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즐겁게 살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

p.61 시후미의 존재가 자신을 느긋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느긋하게, 아버지와 대등한 존재로서


 

p.70 행복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의 토오루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일 것이다. 당신과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아, 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면 불행하다 해도 괜찮아, 같은 것.

p.74 “남편한테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

p.75 여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천진난만해진다. … 여자가 지니는 성질 가운데 천진함 이상으로 좋은 것이 있을까

p.84 사랑을 하면 강아지도 시인이 된다… 그러나 토오루는 사귀는여자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p.102 이런식으로 예정이 틀어지는 것을 젊었을 때는 좀더 즐겼던 것 같아


 

p.110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 누군가가 내게로 와서 너무 편하게 느끼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게서 벗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한다면, 나는 아마도 너무 기쁘겠지.


 

p.111 그보다 토오루는 시후미를 만나고 싶었다. 도시의 눈은 싫어. 결코 밉살스럽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고, 그런 말을 한 시후미를

p.127 토오루에게 있어서 세계는 온통 시후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p.129 “부모님께 쓸데없는 데 돈쓰게 하고 싶지 않아.”


 

p.147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 너의 과거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나는 너의 미래는 함께 할 수 있기에 그 아쉬움은 접어두는 것으로.


 

p.148 ‘불민한 여식이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의 그 압도적인 슬픔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어 키미코도 혹은 아츠코도 그런식으로 해서 시집을 갔을까

=> 왜 항상 시집갈때는 다들 똑똑했던 여자들도 ‘부족한’ 여자가 될까. 왜 시집갈때는 완벽하게 기쁘지 않고 조금은 슬플까


 

p.177 평소에는 시후미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항상 느껴왔다. 혼잡한 가운데 묘하게 들떠있는 시후미를 보자,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다.

=> 이런 게 여행의 기쁨 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 당신의 보호자가 되는 것


 

p.183 “달이 뜨면 좋을 텐데” 틀림없이 뜰거야, 라고 토오루는 생각했다. 시후미가 그러길 바란다면, 설령 달이 두개인들 놀라겠는가

=> 너가 원한다면.


 

p.235 “같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아있어”

=> 나는 읽으면서 시후미의 이 말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거늘, 그저 함께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임자 있는 사람이랑 하는 사랑이란 다 그렇겠지, 뭐.


 

p.248 토오루로서는 관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여자인양

p.257 여름철의 저녁은 대중목욕탕 같은 냄새가 난다.

p.269 말하자면, 누가됐든 이곳은 잠시 동안만 다니는 곳이므로, 더럽고 지저분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p.287 시후미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미래’가 보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내가 당신의 과거를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당신과의 미래가 있기 때문


 

p.296 언젠가 버린다고 정해놓았다. 버리는 수고를 덜었고,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버렷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글은 제 네이버 블로그 #김경옥 의 #옥님살롱 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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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1
테네시 윌리암스 지음, 김소임 옮김 / 민음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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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왕년에는 좀 잘나갔었거든.”


 

“내가 왕년에는 말이지~~” 라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을 참 가엾게 여겼었다. “저런 사람들은 필시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뜻일테지. 아이고, 안됐구나.” 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것.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언제고 항상 전진하는 경우만 있을까? 가끔은 넘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하고. 그래서 목놓아 울기도 하고. 가끔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할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을지 모르고. 그렇기에 그리도 많은 책에서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일 터였다. 실패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는 과정을 통해 실패에서 무언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모든 성장은 아픔과 슬픔 속에 있는 것이니, 그러니 실패는 성장의 어머니인 것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렇게 넘어져서 바닥을 헤맬때쯤이면, 나는 자연스레 지나간 내 시간들을 생각한다.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은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것일테고, 그러니 나의 고민의 방향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 머릿속은 그저 자석에 끌리듯이, 즐거웠고, 때로는 감격스러웠던 나의 과거를 소환 한다. 그렇게 나도 가끔씩 ‘왕년’을 생각한다. ‘왕년에 나는 이랬는데’ 하고. 이것이 얼마나 추하고 어리숙해 보일지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마치 물이 높은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써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라 나는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이런 나의 감정을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만은 하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는 것이다.


 

이런 나의 다짐은, 아마 내가 예전에, (내가 잘나갔을때?)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하면서 과거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보고 아마 “저 사람들의 현재는 분명 별볼일 없을 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 틀림없을 터였다. 나는 만약에 누군가가, 내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 하는 모습을 마주한다면, 그들도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나를 안타깝게 바라볼 것이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동정어린 시선을 받는 다는 것,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어쩌면 상당히 불쾌한 일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타인에게만은 이런 나의 감정을 내보이지 않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내 안의 것들이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완벽하게 통제하는 일이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이던가. 나는 아마도 몇번은 그것에 실패하고 그런 나의 생각들을 표출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안타깝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는 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나는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그들을 비웃지 말아야 겠구나” 라고. 자신의 빛나던 과거를 잊지 못해 자꾸 그 과거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나는 이제는 우습게 여기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기보다는 “왕년에~” 라는 문장을 습관처럼 내 뱉는 그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에 어떤 아픔이 있었던 것인지, 나는 이제 그것을 더 가슴 깊이 생각하리라고 다짐한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인 블랑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지금 돈도 없고, 남자도 없지만, 남부의 대 저택에서 살던 모습, 그대로의 형상으로 동생과 제부 앞에 나타난다. 블랑시의 동생 스텔라는 자신들의 어린 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그래서 블랑시가 짐승같다고 표현하는 남자 스탠리를 만나서 현실에서 적응해서 살아간던 중이었다. 물론 동생 스텔라도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그녀의 부유하고 행복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유추하기가 힘들다는 것 까지도. 다만 스텔라는 그렇지 않은 현재 자신의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때론 지독하게 받아들인다. 방이 두개 밖에 없는 좁은 집에서, 임신한 몸으로 남편에게 맞아가면서까지 그 현실에 순응한다.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 없이 그저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단지 순간 순간을 살아내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실에 대한 어떤 가치 판단보다도, 내 현재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그저 이 생활을 지키기 위해서 어떤 모욕도 참아내는 것. (물론 여자의 권리란 예전으로 갈수록 형편없었으니, 남편의 폭력이 지금과 같은 의미를 갖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블랑시가 제부의 행동을 보고 ‘짐승같다’고 폄하했던 것으로 보아, 이 이야기가 씌여졌던 시대에도 폭력적인 남편은 ‘무식’의 상징이었던 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스텔라가 스탠리를 만나서 현실에 적응하고 사는 동안, 블랑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끔찍한 사건들을 많이 겪게 되고, 그 후 자신의 탈출구로 욕망을 선택하지만, 그 욕망의 시간들은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하고자 할때 걸림돌이 된다. (만약 그가 남자였다면 어쩌면 다른 결말을 낳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이 드는 것은 한명의 여자 독자로서 느끼는 당연한 질문일 테지만.) 평판의 불량으로 일을 잃어버리고, 남자마저 잃어버린 블랑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모파상이 자신의 소설 ‘여자의 일생’을 통해, 어릴 땐 아버지에게, 자라서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아들에게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여자의 인생을 그렸던 것처럼 자신이 홀로 설 능력도 곁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남자도 없는 블랑시는 결국 정신병원에 끌려가게 된다.


 

스탠리가 자신에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남자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언니를 겁탈한 사람임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가 언니를 정신 병원에 보내는 것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도, 스텔라는 그를 남편으로 변함없이 받아들이고, 거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도 의지도 없다. 어쩌면 자신의 생을 자기 힘으로 일으킬 능력이 없는 사람, 여자의 인생이란, 스텔라처럼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조적으로 살든지, 아니면 블랑시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의 영광에서 벗어나지 못한채로 뭔가 울분의 배출구를 찾다가 다시 참혹한 현실로 들어가든지, 하는 것 아닐까?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며 사는 스텔라도, 그러한 현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블랑시도, 결국 그 인생의 모습은 참혹하다.  



 

멈춰서 생각하는 것



 

p.174  꿈을 잃고 가문의 몰락과 친척의 죽음을 목격하고, 사랑했던 어린 남편의 자살까지도 경험한 블랑시의 도피처는 욕망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테네시 윌리엄스는 블랑시를 통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많은 얘기들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블랑시의 대사들은 특히 주옥같다.


 

p.39 (블랑시)여자의 매력이란 결국, 절반은 신기루 같은 것 아닌가요?


 

p.55 (블랑시) 슬픔이 진실을 가져오나 봐요. 얼마 안되는 진실이니마 슬픔을 경험한 사람이 갖고 있죠 슬픔을 겪지 못한 사람을 데려와 봐요. 그가 피상적이라는 걸 보여줄테니.


 

p.67 (스텔라) 난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 있지 않아.


 

p.69 (블랑시)난 여행을 투자라고 생각했거든. 백만장자를 만나기 바라면서 말이지


 

p.75 (블랑시)예술같은 것들, 시나 음악 같은, 그런 새로운 광채가 그 이후로 이 세상에 들어왔거든! 어떤 사람들 안에서는 부드러운 광채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그걸 우리는 키워야 해. 그리고 매달려서 우리의 깃발로 삼고 지켜야해. 짐승들과 함께 뒤쳐져선 안돼.


 

p.89 (블랑시)당신보고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젊은 왕자같이 생겼다고 말해준 사람은 없던가요?


 

p.164 (블랑시)당신이 누구든 난 항상 낯선 사람의 친절에 의지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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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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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줄거리


 

82년생인 김지영은 딸아이를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남편은 평범한 중견기업의 직장인이고, 김지영은 규모가 크지 않은 홍보회사에 다녔으나, 아이를 출산하기 전 남편과 여러가지를 상의해 본 끝에 지영이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에 전념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딸을 키워내면서 아이의 돌이 지난 어느 날 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간혹 지영은 자신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로 분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일시적인 것이려니 했지만 아무래도 이상했다. 문제는 명절때 지영의 시댁에서 터졌다. 지영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시누이 등 시댁식구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몸소 친정엄마로 변신하여 자신의 얘기를 대신했다. “그집 딸이 그 집에 오면 저희 딸도 저희집에 보내주셔야지요. 저희도 명절때 아니면 다같이 모이기 힘들어요. 요새 애들 사는게 다 그렇지요.”라고. 그냥 흉내낸 것이 아니라, 정말 지영은 엄마가 되었다.


 

남편은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리고 남편은 지영이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을 갖고 지영을 치료해야 겠다 생각했다. 지영은 비로소 이 과정에서 자신도 몰랐던 이제는 어쩌면 익숙해져 버린 자신의 과거들을  생각해 낸다.


 

지영은 특별히 폭행을 당하지도 않았고, 자격이 없는 부모밑에서 자라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공부를 못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던 평범했던 82년생 여자. 그리고 여자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많은 굴레들. 아들을 원했던 할머니로 부터 받았던 치사했던 차별, 자신을 괴롭히는 남자애가 실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라는 담임선생님. 자신을 쫓아오던 남자애를 보고 오히려 자신을 나무라는 아빠.


 

그리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자로서의 지영의 평범한 삶은 계속 된다. 대학 시절 친구들로부터의 경험, 그 이후 취직한 직장에서 경험까지, 지영이 결혼을 하고 나니, 임신 과 출산 가정에서의 역할까지, 그녀는 특별히 나쁜일을 당한 적도 없는 그러니까 그저 평범한 한 여자일 뿐이었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산후 우울증과 육아 우울증에 걸린 것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내가 미치지 않은 비결


 

이 책을 읽고 한동안 멍한 기분을 유지했다. 다른 책을 바로 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와 동갑인 내 시대인 얘기 인데, 나는 어쩌자고 이렇게 모르고 살고 있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김지영씨가 겪었던 비슷한 문제들을 다 겪고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미치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어쩌면 내가, 김지영씨와 내가 비슷하게 겪었을 모든 일들을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왜 그런일들이 일어나야만 했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문제 의식이 없이,  오히려 그것이 오로지 내 탓이라고, 그러니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 까닭을 내 안으로 돌리고 있었는지 몰랐다. 김지영씨의 아버지가 고등학생인 지영을 따라오는 치한같은 남자를 보고서는, 오히려 김지영씨에게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고 혼냈던 것처럼, 나는 그동안 내 스스로 내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몰랐다. (이런 태도마저 학습의 산물일테지만.)


 

“세상은 당연히 그렇게 흘러가니깐. 나는 그 세상에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그 속에서 내가 겪는 어려움은 당연히 내가 겪어내야할 과제, 그 이상은 아닌 것.” 아마 이런 태도가 내가 지금까지 지영씨처럼 미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였을 것이다. 물론 나도 가끔씩은 화가 나고, 세상의 불합리를 보고 좌절했던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것을 해결할 만한 힘이 내게 없었고, 그저 작게 지저귀다가 다시 원상복귀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초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잘하면 된다고. 지금 생각하니 그것이 바로 내가 미치지 않은 비결이었다.  


 

세상에 대한 무지와 긍정적인 자세


 

생활력 넘치는 여자가 없다면, 많은 가정이 발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진실. 그리고 한 여자가 자라는 동안, 그 여자가 어릴 때부터 마주하게 되는 여자라는 이름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굴레들이 얼마나 많은 가에 대한 인지. 대학에서도, 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나는 아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나마 성인이 되어 시작한 직장생활에서 성희롱 등에 대한 눈을 떠가고 그 속에서 나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나의 작은 행동들이 내가 조금이나마 사회 구조에 대해 인지하게 된 계기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크게 변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게도 결혼이라는 게 왔고, 자연스레 아이를 낳았고 아이를 키웠고, 시댁 남편 등 여러가지 문제가 겹쳐 나도 김지영씨처럼 원한 적은 없었지만, 어느날 눈을 떠보니 전업주부가 되어 아이를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누구를 만나도 건네줄 수 있는 명함한장 없었다. 살아오면서 한번도 전업주부를 꿈꿔본 적 없었던 나는 전업주부가 된 이후로 육아와 살림을 하며, 늘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 혼란 속에 살았지만 나는 이것을 내가 극복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젠가 다시 사회에 나가게 될 때, 아니 나가야만 하는 때가 온다면,  어쩌면 내가 이전에 사회에서 가졌던 위치를 회복하기가 힘들지도 몰랐고, 당연히 최저임금 일자리부터 골라야 될지도 몰랐지만, 나는 그저 그것이 다 당연한 일, 내 일, 내가 당연히 스스로 이겨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씩 억울하고 서럽고 힘들었지만, 간혹 만나는 어른들은 내게 “아이고, 나는 더 힘들게 살았어. 요새 것들은 고생을 모르고 커서 이것도 힘들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를 낳는 것은  여자가 할 수  밖에 없는 일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여자가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 어쩔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 와중에 생겨나는 많은 문제들은,  그저 내가 여자로 태어난 업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 나는 생각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일까 하는 의문.


 

아이를 키우다 보면 사람은 어쩌면 ‘성악설’이 맞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아이는 다분히 자기 중심적이고 또 폭력성을 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인사를 가르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사람을 때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폭력적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후의 부단한 학습으로 가능한 것이다. 한번의 가르침으로 알아듣는 아이는 없다. 같은 말을 부던히 반복하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그때서야 아이는 습득한다.


 

아이가 자신의 자연스러움에서 벗어나 갖가지 사회규범들을 배워나가듯이, 세상 모든 진보는 그런 자연스러운 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원시시대 그렇게 서로 물고 뜯으며 살았던 생활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폭력을 없애고,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학습하면서 진보해 왔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자연스러운 것, 본능적인 것으로부터의 탈피를 위한 노력이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강자에게 비굴하고 약자에게는 강하게 구는 이중적인 모습이 어쩌면 자기 본능이었으나, 점차 그 본능을 제어하면서 발전해 온 것이었다.

너희들은 나보다 힘들게 살지 않기를


 

여자여서 내가 자연스럽게 맞닥뜨려야 하는 많은 일들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수도 있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회에서는 오히려 정상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미치게 되고, 사회에 발맞춰 같이 정상적이지 않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미치지 않고 살수 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는 비정상적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적응 비결인 것이다. 나는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바람직한 것인지 올바르게 알지 못했다. 지금 내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이것은 내가 조금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고, 그러니 아무렇지 않다고. 그렇게 초 긍정적인 마인드로 지금까지 살았다. 하지만 나는 내 후배들, 내 아이들은 굳이 초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지 않아도, 사회에서 내 권리와 의무를 올바르게 행하면서 살아도 미치지 않고 살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들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는 그 어른들이 본인들의 부모님보다 그래도 더 나은 삶을 살았던 것은, 그래도 더 인권이 보장되고 더 힘들고 가혹한 노동에서 해방되어 살았던 것은, 본인에게 닥친 상황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 어른들의 부모님세대의 진보적인 사람들,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어른들이 내게 “나는 너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내 아이들, 내 후배들이 나보다는 힘들게 살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을 그래도 제대로 살아냈다는 증거일 것이므로. 너가 힘들게 살지 않는 것은 내가 잘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므로. 그러므로 나는 너가 만약 나보다 힘들지 않게 산다면, 나는 너를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조금은 나의 공으로 여기며,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후배들은 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너가 또한 노력하기를 응원할 것이다.


 



p.27 “그래도 내가 아들을 넷이나 낳아서 이렇게 아들이 지어준 뜨신 밥 먹고, 아들이 봐 준 뜨끈한 아랫목에서 자는 거다. 아들이 못해도 넷은 있어야 되는 법이야.”

뜨신 밥을 짓고, 뜨끈한 아랫목에 요를 펴는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이자 김지영씨의 어머니인 오미숙씨였지만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 아마 오미숙씨는  “니가 돈벌어서 밥하고, 니가 돈 벌어서 요 샀냐? 다 내아들이 벌어서 산것 .”이라고 할거다. 그러니 다 내아들이 해주는 것이라고.


 

p.74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외삼촌들과 거의 왕래하지 않는다. 충분히 각오하고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희생에 대한 후회와 원망은 깊고 길었고 결국 그 응어리가 가족관계를 망쳤다.

=>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언제 너에게 그런 강요를 했냐, 나는 한번도 네게 그런 희생을 요구한 적 없었다. 너가 자진해서 그런 희생을 해 놓고서는 왜 그러냐 할지도 모르는 일.


 

p. 김은실 팀장은 여자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회식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달만에 출근했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조금은 미안하다고 했다. 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 잦은 야근과 주말근무, 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

=>  그나마 김은실 팀장이 지금이라도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상당히 고무적이다.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거늘.


 

p.139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 내가 내게 주어진 혜택을, 사람들이 비록 욕할지라도. 그것을 제대로 누리는 것이 또한 내 후배들을 위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p.145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하는 게 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듯,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는 것도 일에 열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일을 하면 “니가 얼마나 번다고, 독한년”이 되고,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게 되면 “내 아들 등꼴만 빼먹는 년”이 된다는 진실.


 

p.156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라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동안 피해자들은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했다.

=> 성희롱 등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에서 가해자는 일반적으로 피해자보다 사회적 위치가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고, 그런 경우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싸우는 대부분의  문제에서 보통 아랫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 않고서야 감히 싸움을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눈물만 삼킬뿐.


 

p.165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이 아니라 1500만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내가 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생을 살면, 아무도 나를 나로 인정해주지 않을까봐 무서워서,  내 가진 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하면 그때 나는 세상에는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세상에서 요구하는 대로 순응해서 하나씩 둘씩 포기하면서 살고 나면, 결국 나는 내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댓가로 마침내 벌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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