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타인의 큐레이션


 

가끔 들르는 카페에 책들이 몇권 꽂혀 있는데, 그중에 소설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문장들이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쉬지 않고 금새 읽어내려갔다. 아마도 그곳에 놓인 책들은 카페 주인장의 컬렉션이리라. 도서관에 가면 꽂혀 있는 많은 책들 중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난 언제나 제목을 보고 그냥 고르지만) 서점에 가면 그래서 베스트셀러라고 한데 모아놓은 곳에서 읽을만한 책들을 고르기도 하고. 그러다 후회하기도 하고.

 

한정된 시간에 출간되는 모든 책들을 다 읽을 수는 없기에, 나 보다 먼저 그 책을 읽은 누군가의 도움을 빌리는 것이 꽤 유용하여 우리는 서평들도 찾아 읽고 하는 것이 아닐까?(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서평들을 찾아 읽는 경우가 더 많긴 하지만 말이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의 감상문을 읽고 있으면, 마치 독서토론을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런 의미에서 동네 작은 카페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은 꽤 유용하다. 이미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서 몇권 정도 큐레이션 된 책들. 잘 알지 못하는 그 이지만, 그래도 그의 취향을 넌지시 엿본다는 것이 나쁘지 않은 기분이기도 하려니와, 방대한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고르는 수고로움을 약간이나마 덜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다.(그곳이 꽤 예쁘고, 또 맛있는 커피가 있는 카페라면, 앉아만 있어도 감성적인 생각들이 솟아나는 곳이라면, 금상첨화)  



 

나의 도쿄타워와, 토오루와 시후미의 도쿄타워


 

내 첫 일본 여행지였던 도쿄에서, 꼭 봐야 한다는 도쿄타워를 가기 위해서 꽤 멀어보였지만, 그곳까지 걸어서 가보기로 했던 친구와 나는, 결국은 길을 잘못들어, 포기하고 근처의 카페에 들어가서 노닥거렸다. 아, 힘들게 걸었지만 길을 잘못 든 것을 알고, 서로에게 그 책임을 물으면서(웃으면서) 카페에 들어가서 지친 몸을 쉬고 있었어도 즐거웠다. 결국 그날 도쿄타워는 걸어서는 못가고 택시타고 갔다가 다시 택시타고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땐 무슨 치기 였는지 모르겠지만, 그 도쿄 여행에서 우리는 걷기 + 택시 타기 하면서  돌아 다니다가, 마지막에 그래도 도쿄 지하철 구경은 해 봐야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에 일부러 지하철 두코스 정도만 탔었다.  


 

이 이야기는 도쿄타워를 중심으로 전개 된다. 주인공 토오루의 사랑을 받는 시후미가 늘 택시만 타고 다녔던 것은 나의 도쿄 여행에서의 택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고, 읽으면서 몇번이나, 나의 도쿄타워에서의 추억이 생각 났다. 그러면서, 아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생각도 했다. 문학 작품을 읽을때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나, 장소가 궁금해 지는 것은 늘 있었던 일이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장소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더 가슴깊이 와닿기 마련이기에, 나는 내 추억이 어린 장소인 도쿄타워가 제목인 것을 보고 이 책을 고른 것이 아주 잘 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내가 도쿄에 며칠간 머물렀을때, 나는 여기 다시 오리라 생각했었는데, 일본의 다른 지역에는 몇번 갔지만, 결국 도쿄에는 아직까지 다시 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나는 ‘도쿄타워’를 읽으면서, 내가 그때 잠시동안 있었던 그곳에, 삶의 터전을 삼고 오랫동안 살고 있는 그들을 생각했다. 나는 이들의 삶의 장소를 보았던 것이구나. 내겐 그냥 한번 봐야 했던 곳, 도쿄타워가, 그 곳이 자신들의 가슴속에 마치 부모님처럼 어릴때부터 늘 가슴속에 존재했던, 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도쿄타워 줄거리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도쿄타워에는 이제 갓 스물살이 되는 청년과 마흔 언저리의 여자의 사랑이 등장한다. 이들은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토오루와 코우지는 연상의 여자, 그것도 남편이 있는 유부녀와 만나서 사랑을 하지만, 둘은 많이 다르다. 토우루는 시후미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늘 시후미가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느끼면서 시후미가 좋아하던 노래,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녀와의 미래를 생각한다. 함께 생활할 수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당신과 함께하는 미래를 그리고 싶은 것.  

 

하지만 코우지는 그녀들을 마음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는 아츠코 라는 연상의 여인을 만나서 사랑을 하기도 했고, 그 여인과 헤어진 후로는 키미코 와 사랑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로만 만날뿐 깊게 생각하지는않는다. 언젠가는 정리해야만 하는 관계들. 반면에 자기 또래인 여자 친구 유리 와는 보다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지만, 이것조차 쉽지는 않다.

 

그렇게 둘은 아주 단짝이지만 한편으로는 많이 다른 청년들.



 

현실의 불륜과 불륜의 이야기


 

벌써 출간된지 몇년 된 소설이지만, 검색해 보니, 아직도 나처럼 읽는 사람들이 있는 듯했다. 불륜을 아름답게 그린 소설이라는 비판도.


 

아랍권의 문화에 대해 논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이 있다. 하렘. 술탄의 부인들이 거처하는 곳. 서양인들의 시선으로 그린 많은 그림에서 이슬람 하렘은 늘 벗고 있는 여인들을 그림으로써, 성적으로 난잡하고, 선정적이고, 퇴폐적인 곳이라고 싸잡아 매도하면서도 질투 또는 부러움의 시선을 담아 묘하게 조롱하듯 이야기 하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런데 이들을 이렇게 성적으로 문란하게만 묘사하는 그 선진국의 사람들은 정말 모두 한명의 부인만 두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 “쉬, 쉬” 하면서 모두 알고 있는데 말이다. 한 집에만 살고 있지 않을 뿐, 다수의 부인들을 두고 있는 남자들이 요즘에도 얼마나 많은지.


 

(나는 며칠전에도 어머니 또래의 어떤 여자분의 입을 통해, 그분의 여동생은 이혼했는데, 그 이유가 제부가 다른 여자한테서 아이까지 낳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혼했을 당시  제부는 이혼 안한다고 한번만 용서해 달라고 하면서 본처에게 와서 빌었었으나, 본인 집에서는 거기까지는 도저히 봐줄 수가 없어서 이혼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동생도 이제 남편이 그렇게 비는 모습조차 정내미가 떨어져서 보기 싫어했었다고.    


 

그리고 내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남편은 알고 지내는 어떤 사업가 얘기 중에 우연히, 그분은 부인이 둘 있다고 했었다. 내가 말도 안된다. 우리나라는 중혼 불법인데, 어떻게 부인이 둘이 되냐? 했더니, 첫째 부인에게도 아이가 있고, 둘째 부인에게도 아이가 있다고 했었다. 그리고 자기가 그 두명의 사모님 집을 다 가봤다고 해서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었다.

그 이후 심지어는  내가 직접 어느 모임에서, 어떤 남자분이 본인이 실수로 (부인 말고) 다른 여자한테서 애를 하나 낳아가지고, 아직도 챙기고 있다고 하는 얘기를 직접 내 귀로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던 기억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의 우리나라에도 너무나 많은 경우에  부인이 한명이 아닌 경우가 많거늘. 최근에 “그쪽에도 딸이 있는데, 딸을 버릴수 없지 않냐” 이혼을 요구하는 모 기업의 회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굳이 재벌이 아니어도 이런 경우는 많을 것이다.


 

남자만 그럴까? 여자도, 남자보다 그 경우의 수가 적기는 하겠지만, 여자도 남편 외에 ‘두집 살림’ 하는 경우 다수 일 것이다.)


 

모든 드라마는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기에 소설 속의 이야기들도 현실을 반영해서 생기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또한 허구, 픽션이기에  소설 안에서 우리는 우주에도 가고, 타임머신도 타고, 동물들도 말을 한다. 이런 공상의 이야기들도 그려지는 마당에 소설에서 이미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의 얘기를 그리는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소설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또한 깨닫는다. 모든 사람은 가까이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사랑 또한 멀리서 보면 그것이 불륜이라 지탄받을 지라도, 그들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사랑또한 이해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심지어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 마음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것을.


 

이 책은 그 도쿄 타워가 소설의 제목이길래 골랐는데,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는 그 사랑이야기가 불륜이어서 사실 나도 약간 당황하기는 했다. 하지만 읽다보면, 문장이 아름답고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워서 금새 처음에 주춤했던 마음은 잊어버리게 된다. (아마 개개인의 도덕률은 본인이 알아서 지키는 것이라고 작가는 이야기 하고 싶었나 보다)


 

 

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p.21 아이는 없고, 대신 가게와 자유를 갖고 있었다.

p.56 즐겁게 살려면 돈이 필요하고, 즐겁게 살수 없다면 살아갈 의미가 없다.

p.61 시후미의 존재가 자신을 느긋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느긋하게, 아버지와 대등한 존재로서


 

p.70 행복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때의 토오루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후미가 주는 불행이라면, 다른 행복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

=>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사랑은 이런 사랑일 것이다. 당신과 함께하면 행복할 것 같아, 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하면 불행하다 해도 괜찮아, 같은 것.

p.74 “남편한테는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

p.75 여자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천진난만해진다. … 여자가 지니는 성질 가운데 천진함 이상으로 좋은 것이 있을까

p.84 사랑을 하면 강아지도 시인이 된다… 그러나 토오루는 사귀는여자 얘기를 하고 싶어하는 그 기분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p.102 이런식으로 예정이 틀어지는 것을 젊었을 때는 좀더 즐겼던 것 같아


 

p.110 시후미는 마치 작고 아름다운 방과 같다고 토오루는 가끔 생각한다. 그 방은 있기에 너무 편해서, 자신이 그곳에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 누군가가 내게로 와서 너무 편하게 느끼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내게서 벗어나는 것을 조금이라도 두려워 한다면, 나는 아마도 너무 기쁘겠지.


 

p.111 그보다 토오루는 시후미를 만나고 싶었다. 도시의 눈은 싫어. 결코 밉살스럽지 않게 얼굴을 찌푸리고, 그런 말을 한 시후미를

p.127 토오루에게 있어서 세계는 온통 시후미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p.129 “부모님께 쓸데없는 데 돈쓰게 하고 싶지 않아.”


 

p.147 “좋았겠다. 토오루는 그 시절의 코우지 곁에 있을 수 있어서”

=> 너의 과거에 함께 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나는 너의 미래는 함께 할 수 있기에 그 아쉬움은 접어두는 것으로.


 

p.148 ‘불민한 여식이지만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그때의 그 압도적인 슬픔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예를 들어 키미코도 혹은 아츠코도 그런식으로 해서 시집을 갔을까

=> 왜 항상 시집갈때는 다들 똑똑했던 여자들도 ‘부족한’ 여자가 될까. 왜 시집갈때는 완벽하게 기쁘지 않고 조금은 슬플까


 

p.177 평소에는 시후미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항상 느껴왔다. 혼잡한 가운데 묘하게 들떠있는 시후미를 보자, 자신이 지켜주어야 할 무언가로 느껴졌다.

=> 이런 게 여행의 기쁨 일 것이다. 낯선 곳에서 당신의 보호자가 되는 것


 

p.183 “달이 뜨면 좋을 텐데” 틀림없이 뜰거야, 라고 토오루는 생각했다. 시후미가 그러길 바란다면, 설령 달이 두개인들 놀라겠는가

=> 너가 원한다면.


 

p.235 “같이 살지 않아도, 이렇게 함께 살아있어”

=> 나는 읽으면서 시후미의 이 말은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살고 싶은 것은 당연한 마음이거늘, 그저 함께 살아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임자 있는 사람이랑 하는 사랑이란 다 그렇겠지, 뭐.


 

p.248 토오루로서는 관여할 수 없는 곳에 있는 충분히 만족하고 행복한 여자인양

p.257 여름철의 저녁은 대중목욕탕 같은 냄새가 난다.

p.269 말하자면, 누가됐든 이곳은 잠시 동안만 다니는 곳이므로, 더럽고 지저분해도 아무렇지 않은 것이다


 

p.287 시후미와의 관계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미래’가 보인 것 같은 기분이었다.

=> 내가 당신의 과거를 질투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내게는 그것보다 훨씬 더 큰 당신과의 미래가 있기 때문


 

p.296 언젠가 버린다고 정해놓았다. 버리는 수고를 덜었고,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버렷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글은 제 네이버 블로그 #김경옥 의 #옥님살롱 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http://expert4you.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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