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있었구나.
어느 한 때의 시간을 함께 했던 물건들
여기에 있었구나.
한동안 있었는지도 모르는 내 모습들도 함께
여기에 있었구나.
오래전이라 하면 얼마의 시간을 가르키는 걸까?
70년은 되었을지 모르는 하얀 모시 치마
할머니가 치마결을 통해 손끝으로 느껴진다.
바늘 한땀 한땀, 씨줄 날줄로 짜여진 한올한올
할머니 손끝에서 태어났을 하얀 모시 치마
난 있는 줄도 몰랐는데
여기에 있었구나
17년 전 겨울에는 오리털 파커가 최고 였는데
한쪽은 오렌지빛 빨강 색 또 한쪽은 초록색 체크무늬라
양면으로 입을 수 있는 오리털 파커
그 해 아버지는 위암 수술을 앞두고 딸내미 추울까봐
손수 내 손을 이끌고 가서 비싸서 사달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 오리털 파커를
사주셨지. 정말 잘입었는데
여기에 있었구나
빛깔이나 오리털의 폭신폭신한 느낌 그대로 새 옷 인듯
구석에 쳐박혀서도 시간은 널 빗겨갔나보다
아버지의 마지막 몇 해의 아픔과 안타까움이 여전하듯
눈물도 그대로네
떠나간 사람들도
여기에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