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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ㅣ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품절
한창 책에 빠져 사는 큰 아이가 '미하엘 엔데'의 책들을 재미있게 읽고는 아빠도 읽어봤냐며 묻는다. 내가 읽어봤던가??
미하엘 엔데하면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모모'와 '끝없는 이야기'이다. 이 책들은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이라서 스토리도 잘 알려져 있을뿐더러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제법 인기를 얻기도 했다. '모모'는 1986년에 같은 제목으로, '끝없는 이야기'는 1984년에 '네버 엔딩 스토리'라는 제목으로 독일(당시는 서독)에서 만든 영화가 있다. 찾아서 아이들과 함께 봐야겠다.
여기저기에서 소개도 많이 되었기에 나는 당연히 내가 이 책들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되짚어 생각해보니 단지 그 내용을 알고 있어서 읽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마치 유명한 고전 작품들을 내용을 안다고 해서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다시...아니 처음 제대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첫 페이지를 펼치고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기까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아마도 4학년 이상?)이면 어렵지 않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해서 성인이 읽기에 전혀 유치한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성인들에게 더 많은 메세지를 던져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는 해리포터 같은 류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연령대가 높아질 수록 더욱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상당히 수준 높은 소설이다.
모모는 아무 것도 가진게 없는 아이이다.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옷도 없고, 먹을 것도 없다. 그런 모모에게는 한가지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사실 그 능력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 바로 '잘 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힘든 일이든, 어떤 일이든지 모모에게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모모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일은 하나도 없다. 단지 가만히 앉아서 귀기울여 잘 들어주기만 할 뿐이다. 사람들이 모모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놓을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보다도 모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의사 소통의 기본은 '말하기'가 아니고 '들어주기'이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잘 들어주기'가 아닐까.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는 잘 들어주지 않는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사회 문제나 가정 문제는 대부분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기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고, 배우자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이웃의 이야기를 성심성의껏 들어준다면, 그 어떤 문제라도 싸움없이 평화롭게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과연 아내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있는지, 또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잘 들어주고 있는지, 그리고 이웃의 이야기를 마음을 담아 들어주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모모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능력은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뭘하고 놀지 잘 모르는 아이들은 모모의 집(폐허가 된 원형극장 터)에 오기만 하면 신기하게도 재미난 놀이를 만들어 신나게 논다. 정교한 장난감이나 값비싼 장난감을 들고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런 장난감은 잠깐 동안의 관심만 끌 뿐이다. 아이들은 그저 나무나 돌이나 풀 그리고 마음껏 놀 수 있는 너른 터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 부족한 것들은 상상력이 다 채워준다.
모모가 앞장서서 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것은 아니다. 모모는 아이들에게 뭘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또 뭘 하며 놀자고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다. 모모는 놀이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다. 모모는 아이들이 신나게 놀 수 있도록 자리만 깔아줄 뿐이다.
아이들과 놀면서 크게 느낀게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난감 일수록 아이들의 창의력은 그 정교함의 정도에 비례해서 반대로 떨어진다는 것, 비싼 장난감이나 싼 장난감이나 그 효용 가치는 가격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어마어마하게 잘 꾸며놓은 대규모 놀이 공원보다 동네 놀이터가 더 놀기 좋다는 것, 안전하게 놀 수 있다는 실내 놀이터보다 야외 놀이터가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것, TV나 유튜브에서 배우는 것보다 책이나 자연에서 배우는 것이 훨씬 더 창의적이라 것, 등등...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것 만큼 위대한 교육은 없다는 것이 지난 10여년간 아이들을 키우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다.
다시 모모로 돌아가자.
지금까지 이야기는 서론에 불과하다. 모모의 활약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시간을 담보로 돈과 명예를 사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마을은 급격하게 변해간다. 부족하더라도 서로 나누고 살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어졌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어른들은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마음대로 놀지 못하고 탁아소 같은 곳에 의무적으로 맡겨진다.
모든 것이 시간의 효율성을 바탕으로 움직이는 사회가 되다보니 건물들도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지어지고,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한다고 여겨지는 행동들은 모조리 통제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은 돈을 벌게되지만 행복해지지는 않는다. 돈을 더 많이 벌면 벌수록, 더 많이 화를 내게 되고, 더 많이 싸우게 되고, 더 많이 불행해진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이 모든 일들이 '회색 옷을 입은 신사'들이 꾸민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모모는 친구들을 되찾기 위해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주기 위해 목숨을 건 위험한 모험을 떠난다.
회색 옷을 입은 신사들은 누구인가?
모모는 친구들을 되찾아 올 수 있을까?
어떻게 사는 것이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것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책을 읽어가면서 각자 찾아내도록 하자.
'모모'는 50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이다. '모모'는 따뜻한 가슴과 환상적인 상상력으로 빚어낸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통찰력있게 풀어내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분명하게 설득해내는 보기드문 작품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국가에? 대기업에? 은행에?......
도둑 맞은 우리의 시간을 되찾아와야 한다.
시간이 곧 삶이다.
시간을 찾는 일은 결국 우리의 삶을 찾는 일이다.
이제 다시 '모모'를 찾아 나설 때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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