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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만큼 성공한다 - 개정판, 지식 에듀테이너이자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가 제안하는 재미학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놀이' 라는 말만큼 우리 사회에 오해가 많은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처음에는 어른에게만 어색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에게도 어색한 말이 되어 버렸죠. 직장인들보다 더 바쁜 학생들도 많으니까요. 아마, 간난 애기를 빼놓고 '논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연령층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사라진 느낌입니다.
왜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어른의 놀이'에만 한정지어서 이야기하자면,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사람들은 놀이를 오랫동안 게으름 피우는 것과 동일하게 여겨 왔고, 다른 하나는 제대로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행복하면 안 되었다. 즐거우면 뭔가 불안했고 죄의식 가까운 느낌마져 들었다. 자유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사치였고 도덕적 범죄였다. 참고 인내해야 했다. 모든 관공서의 한쪽 벽에는 '근면', '성실'의 구호가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21 페이지) ...우리가 샴페인 뚜껑을 일찍 열었기 때문에 IMF 위기가 닥친 것이 절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착하디착한 우리 국민들은 모두 자신들의 사치와 게으름으로 인해 경제 위기가 닥친 것으로 생각하고 온갖 금붙이를 다 내다팔며 반성했다. 그리고는 덜컥 '놀면 불안해지는 만성적인 부적응적 불안'에 걸려 버린 것이다. (25 페이지)
그렇다면 무조건 일하지 않는 시간만 늘려주면 되는 것일까요? 저자는 준비되지 않은 여가시간의 증가는 재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이죠.
하루 더 놀면 이혼이 증가한다. → 바쁘다는 핑계로 피해온 부부간 갈등이 표면화
하루 더 놀면 결혼도 안 한다. →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 보편화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기를 낳을 생각도 없다. → 같은 이유, 아이가 자유로운 삶의 장애로 인식
애를 낳지 않으니 노인들만 남는다. → (구지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 싶습니다.)
저자는 노동소외도 문제지만 여가소외 현상이 더 시급한 문제라고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일하지 않는 시간을 늘려주면 그 시간을 알아서 자연스럽게 가족, 자기계발, 소비 등에 쏟을 거라고, 무조건 이롭다는 논거들과 대치되는 주장들인데, 한 가족 개인개인의 상황을 살펴보면 상당히 타당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왜 놀이가 중요한 것일까요? 저자는 놀이와 창의력이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 가치 있는 일들은 한가할 때 나온다." 라고 한 조지 버나드 쇼의 말과 닿아있네요. 책에서는 우선 창의성의 정의부터 내리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해 창의성이란 아주 익숙한 것을 다른 맥락에 놓아 새롭게 느끼게 하는 능력을 뜻한다. 앞서 힘들게 정의했던 정보와 지식의 관계를 통해 설명하자면 창의성이란 다음의 두 가지로 정의된다. (1) 정보와 정보들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르게 정의하는 능력, (2) 정보의 맥락을 바꾸는 능력 (82 페이지)
예술 평론에서 가장 잘 쓰이는 말 중 하나가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입니다. 오페라에서도 배우들의 비쥬얼과 동시에 연출가들의 해석이나 무대 기획의 요소가 점점 중요해지는 것을 보면 창의적인 작업이란 결국 어떻게 해석하고 재배치하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는 작업은 굉장히 힘들고, 또 어렵죠. 그렇게 만든 것이 또 온전히 무(無)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기에도 어렵고요. 그러면서 창의성의 원천은 '낯설게 하기'에 있다고 정리합니다. 20세기초 러시아의 형식주의 기법중의 하나인 '낯설게 하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에 대한 느낌을 알려져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지각된 대로 느끼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예술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 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극을 힘들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시키는 기법이다. 왜냐하면 예술에 있어서 지각의 과정 자체가 미적 목적이며 이 과정을 오래 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은 사물을 경험하는 과정을 경험하는 방법이며, 이미 다 만들어진 것은 예술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다." (84 페이지)
뒤에서는 정서 공유와 소통의 중요성, 사회적인 '성공'에 대한 비판, 일과 삶의 조화시키는 경영 등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하지만 전반주에 비해서는 내용도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놀이라는 것이, 노동의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 놀이가 꼭 생산적일 필요는 없지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돌이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잘 놀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직장인이 되면 야심차게 해 보겠다고 샀다가 한 달만에 포기한 클라리넷도 다시 배우고 있고, 블로그도 하고, 책과 음악을 즐기는데 투입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났거든요. 한편으로는 잘 놀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잘 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후반부에서는 이 구절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이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주 늦게 깨닫는다. 자신이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인 것을. (206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