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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평점 :
언젠가 비슷한 제목의 뮤지컬을 접한 것도 같은데, 하는 마음으로 늘 마음에 걸려 있던 책.
(참고로 구분을 하자면....
뮤지컬은 <벽을 뚫는 남자>고,
그 뮤지컬의 원작이 되는 소설은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다.^^)
워낙 뮤지컬 홍보에 유명한 배우들이 많아 나와서 귀에 익었는지라,
벽을 드나들건 뚫건 그 용어야 헷갈리긴 했지만.....문제가 되진 않았고
어떤 상황인지는 늘 궁금했다.
(무대 장치를 어떻게 했네~하는 인터뷰도 많이 봤었으니까.)
게다가 원작 소설은 '단편'이라 들었는데
어떻게 한 편의 뮤지컬 작품으로 태어나게 된 건가
원작은 얼만큼의 무한의 공간을 품고 있길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엔 마르셀 에메의 짧은 글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참, 작가 김영하의 팟캐스트에서 접해 본 적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막상 책으로 읽어보진 못하다가
표지에 있는 그림이 무겁지만은 않아 보여서
+ 뒷 표지에 있는 '경이'나 '반전', '기이한 이야기'라는 단어가 좋아서 집어 들게 되었다.
(요즘은 머리가 자꾸 무거워져서... 심각하거나 밀도 높은 지적 활동이 좀 버겁다. ㅠㅠ)
다섯 개의 단편을 굳이 요약하자면...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뒤티유욀의 특별한 능력-'가루가루'가 나타났다!!
-생존 시간 카드: 쥘 플레그몽의 일기들, 생존 시간이 제한된다고?!
-속담 : 자코탱 씨는 아들 뤼시앵을 어떤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인가.
-칠십 리 장화: 제르멘 뷔주와 그의 아들 앙투안. 프랑스 동화 「엄지동자」의 새로운 변주
-천국에 간 집달리: 말리코른의 선행 기록 노트.
다 좋았다, 특유의 위트도 좋고.
특히
아래, 책에서 옮겨 적은 내용 중에
43 페이지 내용 같은 유머, 내 스타일이다.ㅋㅋ
칠십 리를 갈 수 있는 장화라는 게 프랑스 동화에 등장한다는데
그걸 모티브 삼아 아이들의
꾸러기같은(?) 시선을 엿볼 수 있나 했는데
마지막은 얼마나 따스하고 예쁜지. 표현마저, 아.+_+ (154 페이지의 문장들!)
-생존 시간 카드
"아니, 이 사람아. 일자리를 부탁할 양이면 진작 얘기를 했어야지 어쩌자고 오늘까지 꾸물댄 거야?"
"하지만 이 조치가 나에게도 해당될 줄 알았어야 말이지. 요전날 같이 점심 먹을 때 자넨 그런 얘기를 안 했잖아······"
"무슨 소리야. 나는 분명히 이 조치가 무용한 사람들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말했어. 어떻게 그보다 더 분명하게 말할 수 있겠어?" (p.43)
신문들이 온통 '배급표 사건'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차 있다. 생존 시간 카드의 암거래가 이 계절의 가장 큰 스캔들이 될 것이다. 부자들이 생존 시간 배급표를 매점하는 바람에 그 동안 애써 이룩해놓은 식량 절약 체제가 거의 무용지물이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몇몇 사람들의 유별난 행태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사건의 파문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들 중에서 아주 큰 부자인 바데 씨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6월 30일에서 7월 1일 사이에 무료 1천9백67일, 즉 5년 하고도 4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p.70)
-칠십 리 장화
그렇게 십 분을 가자 지구의 반대편이 나왔다. 아이는 광활한 초원에서 걸음을 멈춘 다음, 아침 햇살을 한아름 따서 '성모 마리아의 실'*('공중이나 풀 따위에 걸려 있는 거미줄'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표현.(옮긴이))로 묶었다.
앙투안은 지붕밑 방을 쉽사리 다시 찾아내어 살그머니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이는 찬란한 아침햇살 다발을 어머니의 작은 침대에 올려놓았다. 그 빛이 어머니의 잠든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다. 아이는 어머니의 피곤이 덜어지지라고 생각했다. (p.154)
그냥 읽어도 재미있는데,
역자 후기에 실린 이야기들
-암호에 대한 해독?
인명에 얽힌 비밀이나 숨겨진 뒷이야기를
꼼꼼히 읽다 보면 마르셀 에메란 작가의 매력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다.
"허- 참. 이 양반, 골때리는 양반이네." 이런 느낌? ㅎㅎㅎㅎㅎㅎㅎㅎㅎ
p.s.
역자가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로 워낙 익숙해진-'이세욱'씨라서
반갑기도 했는데 쉽게 버릴 수 없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아 놓은 것도 참 센스쟁이~란 생각. ㅎㅎㅎ
프랑스 문학에서는 짧은 이야기를 누벨(nouvelle)이라고 부를 때도 있고 콩트(conte)라 부를 때도 있다. 누벨은 주로 길이가 짧고 구성이 극적이며 인생의 단면을 그린다는 점에 초점을 두고 붙이는 이름이라면, 콩트는 주로 이야기의 환상적이거나 우의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장르를 구별하는 기준이 분명하게 서 있는 것은 아니다. (p.183-역자 후기의 참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