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탄생 행복한 육아 5
프레드릭 르봐이예 지음, 김영주 옮김 / 샘터사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임신,을 알던 순간부터 거짓말처럼 '차연출산'에 마음이 갔다.
내가 그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주변에 누가 그렇게 아이를 낳은 것도 아닌데 
이미 잘 알고 있던 것처럼 
그런 분야의 책들과 만나졌다?!

조우하였다는 느낌을 되짚어 보니, 
사춘기 시절에 
수중분만이니 뭐니 해서 
아이들의 인권과 산모의 건강함을 강조하는 
출산을 꼭 해야겠다고 일기에 몇 번이고 끄적인 적이 있었다.


자연'분만'이 아니라 '출산'이라고 생각하면서 온갖 이야기들을 귀담아 들었는데 
임신·육아 책에서 툭하면 등장하는 '르봐이예 분만'을 보면 낯설어 하기만 했다.
'나는 '출산'을 할 거라고!'란 무식한 소리를 하면서 
분만에 관련된 내용들은 하나도 읽지 않고.^^;;;;



어느 날 알게 되었다, 내가 꿈꾸던 출산의 과정이 사실은 이 '르봐이예'란 사람 덕분에 시작된 거란 걸.
그리고 만난 프레드릭 르봐이예 박사의 책, 『평화로운 탄생(Pour Une Naissance Sana Violence)』

내용은 짧고 글자 보다 여백이 훨씬 많지만 

(사진도 간간히 들어 있다) 

책이 주는 느낌은 그렇게 짧고 간단하지만은 않다.



아기와 의사소통을 하려면 아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만 한다.

단어에 의존하지 않지만 누구나 알아듣는 그 언어,

사랑.

말해주자······ 사랑의 언어로······ 신생아에게!

그래 바로 그거!

사랑하는 사람들끼린 어떻게 대화하지?

아무 말 안 한다. 그냥 만질 뿐. 

서로 조심스럽고 소줍어하기 때문에 

빛을 피하고 어두움, 밤을 선호한다.

또렷하지 않은 흐릿함, 고요함 속에서 그들은 

서로 다가가 팔로 감싸안아 예전의 감옥을 재현한다. (p.77중에서)




태어나기 전, 아기는 '하나로서' 살았다.

바깥과 안의 구분이 없기 때문에 세계과 자신의 구분을 모르고 지냈다.

아기는 양극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가령 아기는 추위를 모른다.

더위라는 개념 없이 추위란 없으니까. 엄마의 체온과 

아기의 체온은 정확히 일치했다.

그러니 어떻게 '현저한 차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겠는가?  (p.93 중에서)



탄생은 얼마나 교묘하고도 축복된 일이 될 수 있는지······.

탯줄을 그대로 두어 엄마와 경계선을 함께 넘는다는 믿음을 주고, 

부드럽게 거대한 세상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걸음마를 배울 때 지켜보듯, 바로 그렇게 엄마는 아기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며 거기 있을 것이다.

아기가 언제라도 엄마를 붙잡고 조심스런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아기가 스스로의 힘을 믿기 시작하자마자 손을 빼내는 것은 잔인하다.  (p.109 중에서)




아기의 입장에서,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볼 수 있다.

밝고 찬란한 수술대 조명 앞에서 

차가운 수술대나 금속으로 된 겸자나 캡을 통해 빨아들여지는 것이 아닌,

조용하고 차분한, 어두운 분만실에서 

아이 스스로의 힘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탄.생.의. 순.간.


책을 통해 다시금 우리 아이의 탄생을 바라보자.

무얼 택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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