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 우리는 통일을 이룬 적이 있었다
손정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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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 신라는 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신라를 경주,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청소년기를 보낸 부산에서 꽤 가까웠던 도시라, 

훌쩍 떠나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곳으로 참 익숙했던 지역이어서 그 소중함을 못 느낀 것도 사실이다.

혹은 찬란했다 하는 역사의 현장이 소박하게만 보여서 였을까.

(황룡사 9층 목탑 같은 웅장한 문화재가 사라지고 없어 '터'만 고이고이 간직한 나라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신라의 값어치를 낮추어 보았던 것 같다, 신비하지 않아 보이는 나라여서.

 

경주를 배경으로 쓰여진 역사 소설 『왕경』을 만났다. 

 

 

왕경은 경주의 옛이름이라 한다. 

제일 첫머리에 등장하는 건 고구려의 진수다. 

활쏘기를 잘 하는 건장한 장정, 

막리지 연개소문의 힘을 견제하기 위해선 

여러 부족을 아우르는 우두머리가 되었어야 했는데 진수는 아직 어렸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를 풀지 못하고 훌쩍 사라져버렸다가 

아버지를 죽게 만든 나라 밖 정세에 무작정 분노하여 전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제대로 된 준비 하나 없이 계림에 노예로 붙잡히는 신세로

소설 안에는 고구려의 진수, 백제에서 오게 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 신분을 숨기고 싶어하는 소녀-정, 뛰어난 화랑으로 이름을 드높이고 있는 김유 이 젊은 청춘들이 등장한다.

 

김유는 한번 술을 마시면 끝을 모를 정도였지만 낭도들을 거느리고 무예를 닦고 글을 읽을 때면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아무리 밤새 술을 마셔도 새벽이면 일어나 몸을 씻고 정신을 집중했다.

‘네 마음과 몸을 정결히 하고 온 정성을 다하도록 하여라. 네 몸과 정신이 온전히 하나가 되어 바위와 번개와 같은 힘을 갖지 않고서는 하늘에 닿을 수 없느니라.’(p.134)



고구려의 기운이 쇠하던 시기에 노예가 된 진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정을 보면서 의심을 품고, 

아버지를 죽였을지 모를 그리고 조국을 무너뜨릴지도 모를 소년 김유에게 칼을 간다. 


청춘이라는 찬란한 빛의 시기를 

안으로부터는 혼돈을,  밖으로부터의 조국의 흥망성쇠에 따른 부침을 겪으며 

허망하게 태워버리는 이 세 사람을 보면서 안타까웠다.

(약간 아쉬운 건 이 세 인물들의 속내를 그리듯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화자가 다 설명하는 듯한-너무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

조금만 더 인물 각각에게 애정을 쏟아 부었으면 좀 더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것 같은데, 살짝 부족해보였다는 점)




한편으론 신라를 다시 그려보았다. 

고구려처럼 넓은 땅을 차지하면서 기상을 넓혀 나간 나라가 아니어서 

‘삼국통일’이라는 빼어난 업적을 이루어 냈으면서도 미운 눈길을 한두 번쯤 받곤 하는 신라의 실제를 보게 된 것 같았다. 

백성들에게 불교가 어떻게 와닿았기에 화랑도의 마음 안에 전쟁에서 죽는 걸 두려워 하지 않게 되었는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는 불교가 얼마나 든든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주었는지. 

그 높고 화려한 황룡사 9층탑이 어떤 장관을 이루었을지를 떠올리며 

융성한 도시 계림을 미처 눈여겨 보지 못한 것을 안타까이 여겼다.

 



문득 3일 간 경주의 남산을 취재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그곳에서 고이 남아있는 신라의 흔적을, 그리고 그 역사를 고스란히 껴안고 사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와 다른 마음 가짐을 가지며 역사와 ‘함께’ 살아내는 사람들.

 

이미 일어난 ‘역사’를 익히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살아내 듯 알기 위해서 

옛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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