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4.12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나의 맺음달에게.


드디어 만났군요, 그간 안녕하셨어요? 감기는 안 걸리신 거죠? ^^


‘아직 가을인가?’ 갸우뚱하다가 불쑥 겨울을 맞이한 기분이예요. 

11월의 수능일 진눈깨비가 날리는 걸 보았거든요. 

눈이라 부르기엔 다소 미약한 작은 가루 였지만 기분이 묘했습니다. 

거리엔 아직 은행잎이 줄기에 단단히 매달려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가을과 겨울을 분간 못하는 상태에 놓였던 것 같아요, 시간 감각도 무뎌지고요.



샘터 12월호를 보고서야 겨울이라는 생각, 곧 올해가 갈 거란 생각을 해봤어요. 

선물과 흰 사람 그리고 빨간 고깔모자가 들어찬 표지를 보았거든요. 

예전같으면 12월이 드디어 왔다며 방방 거렸겠죠, 

크리스마스와 겨울방학만 손꼽고 있었을텐데.... 지금은...잘 모르겠어요.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 끄트머리 달, 맺음달’이란 이 12월이 왜 이리 야속한지요.


돌아오는 해마다 1월을 신나게 시작하고, 12월엔 맥이 빠진 채로 

다시 다음 해를 “자, 다음~”하고 기다리는 것 같은 모습이, 

색깔도 감정도 향기도 하나 없는 것 같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신에게 미움을 산 시시포스¹의 처지라도 되는 것처럼요. 

애써 올리면 굴러 떨어지고 힘내서 올리면 또 굴러 떨어지고...어쩜 이렇게 부질없는 삶인지 말이예요. 

생각해보면 2014년의 결승점 근처에 몇 가지의 깃발들을 당차게 꽂아둔 것 같은데, 

결혼이나 이사 이런 큰 행사(!)를 겪고 나니 풍파에 흐트러져 있었거든요, 

게다가 어떤 깃발은 아예 사라져 버렸어요.(누가 뽑아가 버린 거지 싶어요.ㅠㅠ)


시시포스나 떠올리며 가라앉은 마음으로 맞이하는 제가 ‘시작’이란 트라우마를 겪는 환자같기도 하죠? 

(너무 과한 비유였나요? 심각한 얘기는 아닌데, 놀라신 건 아니죠? 물론 지금은 그런 상태가 아니니까 염려 마세요^^) 

어떤 트라우마 전문 클리닉 원장님²조차도 본인이 암 진단을 받고 나서는 

분노와 우울, 원망과 절망 사이를 오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분은 이겨내셨어요, 멋진 말씀도 남기셨죠.

암 이전의 삶으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고 어쩔 수도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어쩔 수 있는 노릇’도 분명 있다. 그것은 이전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일이다


와닿았어요.

2014년의 시작, 사실 첫단추부터 제 의지에 의해 결정된 게 하나 없었거든요. 

얼렁뚱땅 급박하게 진행된 혼인신고, 이사(원룸 아저씨의 술주정을 전화로 받았던 끔찍한 기억이예요), 

결혼식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가풍(?)과의 적응. 

시작되어 버린 낯선 게임 안에서 제 패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고 헤매기만 했어요. 

(그나마 제 의지로 했던 건 채용서류를 위해 미리 받았던 신체검사, 신혼여행 계획의 일부, 재테크 밑그림 그리기 정도랄까요?

사실 그것들조차... 지금은 "의미없다~"의 소리를 들을 지경이 되었다는 게.. ;;;ㅋ)

그 한 마디를 보면서 곰곰히 저를 돌이켜봤어요.

다시 생각하면, 2014년의 뜨뜻 미지근한 이 상황을 잘 맺은 후에 

새로운 삶의 방식, 삶의 목표를 다시 짜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 ‘시작’ 트라우마 따위 금방 이겨낼 수 있는 거잖아요?


산처럼 우뚝하고 못처럼 깊으면 봄날의 꽃처럼 환히 빛나리라³

2015년을 제 의지대로 맞이하기 위해 내년 다이어리를 마련했어요. 

내 인생의 내리막과 오르막⁴, 그 무엇이건 예상하고 여유있게 계획하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맺음달, 제 부족함을 돌아볼 수 있게 

그리고 따뜻한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응원의 글들(비록 그들이 제가 볼 거란 걸 염두해두고 쓰지 않았더라도)을 만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남은 기간 잘 지내 보아요.


잘 해줄게요, 12월씨... 잘 부탁드립니다~아. ^--------^


                      -  2014.11.26.오후 10시, 사랑을 담아 맺음달을 맞이하며.




1) 그러나 살아야 한다(송정림, 샘터 12월호 p.50~51)

2) 암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김준기, 샘터 12월호 p.58~59)

3) 옛 공부벌레들의 좌우명-의(義)에 죽고 살다(박수밀, 샘터 12월호 p.28~29)

4) 내 인생의 내리막과 오르막(김신회, 샘터 12월호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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