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여자는 어떤 존재일까? brown_and_cony-17

내가 아는 여자는 ‘손녀’라서 눈치보고 

‘여자아이’라서 고무줄 놀이 안하는 아이도 다 있담?,하는 눈총도 받고 

‘소녀’라서 가슴가리개를 차고 

‘여자’라서 통금시간이 자연스레 정해지고 

‘신부’라서 결혼식장의 꽃이(영혼 없는 인형이 된 기분으로) 되고, 

‘아줌마’라서 김장에 예민해져야 하고 

‘엄마’라서 아이 육아와 교육에 능해야 하고 

‘부인’이어서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나 남편의 친구들 내외와 얼굴을 터야 하고 

‘어머님’이어서 다 큰 자녀의 소소한 일상에도 마음을 쓰게 되는 존재. 

적어도 내가 아는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이 복잡한 생물- 여자를 어떤 말로 규정지을 수 있을까.




마스다 미리는 일상 속의 복잡한, 지루한, 뻔한 에피소드에서 

특별한 소소함을 잘 알아채고 그걸 온전하게 고이 담아내는 작가다. 

때문에 그녀가 에세이를 쓰건 만화를 쓰건 내 귀는 팔랑거린다. 

이번엔 어떤 시선으로 나와 공감할 건가요-하며.   :D



무거운 것쯤은 번쩍번쩍 들어올리며 ‘힘이 장사네요’를 칭찬으로 듣고 손가락 브이를 만들어 보이는 미리씨. 

옛날엔 꽤 미인이었을 여자들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하고, 

3억 엔이 생긴다 해도 평생 만화를 그리고 싶어하는 그녀.


특유의 섬세한 감정, 하찮은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끝끝내 자기만의 만족을 찾고 빙긋 웃는 그녀를 보면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 언젠가, 또 다른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그려본 적이 있다. 

그때 그 선택을 내린 나는 저쪽 세상 어딘가에, 

그때 이 선택을 내린 나는 이쪽 세상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생각. 

마스다 미리의 그림과 글을 보고 있노라면 

저 세상의 마스다 미리, 이 세상의 나를 의식하게 된다. 



하지만 가슴에서 젖이 나오는 엄마가 되면, 

나는 여자들뿐인 교실에 그녀는 남녀합반인 저쪽 교실에 따로 떨어져 있게 되겠지. 

미리씨가 아버지와 나란히 서서 멀뚱히 엄마와 동생이 들어간 교실을 밖에서 들여다보고 있는 그림이 왠지 짠하다.

 

큰 사건도 큰 위기도 없고,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화려한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지만... 마스다 미리여서 좋다. 

공감할 수 있는 여자 이야기여서 좋다. 

그리고 그녀의 여자 이야기가, 이제부터는 내가 아는 여자 이야기와 조금씩 달라질 테지만... 그래서 좋다.



아무런 생각없이 ‘아직 결혼 안하신 거예요? 해보면 좋은데’같은 

입에 발린 듯 시덥지 않은 반응이 불쑥 내 입에서 나온다 해도, 

무반사에 가까운 내 반응에 크게 마음 다치지 않을 그녀이니까.. 

그 안에 숨어들어 있는 내 마음을 알아채 줄 그녀이니까.. 좋다.


아마 앞으로도 쭈욱- 공감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우리는

백수 아줌마에게도, 골드 미스 작가에게도 

‘나만의 행복’이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찌릿~하고 통하고 있으니까.



내게도

아마 내가 아는 행복이 있는데,

그 사실이 누군가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별로 상관 없을지도 몰라.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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