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터 2014.11
샘터 편집부 엮음 / 샘터사(잡지)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숫자 1은 참 외로운 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뾰족하게 솟은 것이 이 녀석의 머리처럼 보여 앞으로 삐죽 튀어나온 저것은 녀석의 눈썹이거나 모자의 챙처럼 보입니다.

1은 멀뚱히 서서 어디를 보고 있는 걸까요, 왜 이 숫자를 보고 있노라면 녀석의 쓸쓸한 등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까요.

태생적으로 외로운 수 1마저도 가끔은 싱긋 웃고 있는 때가 간혹 있습니다. 

11이란 숫자가 되었을 때요.

홀로 서 있던 1이 둘 모이니 나란히 걸어가는 두 다리가 보입니다, 두 사람도 보입니다.

멀리 떨어진 채로 멈춰있는 1이 아닌, 

어딘가로 걸어가는 11이 간혹 다른 1을 만난 것 같은 11을 보면 전 든든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곤 합니다.

그런 면에서 11월은 산책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달입니다.

단풍과 낙엽 사이를 오가는 앞 사람의 모습에서도 나란히 걷는 노부부의 걸음 속에서도 불쑥불쑥 11을 만나거든요. ^^



11월의 순우리말 이름은 ‘미틈달’이랍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달이란 뜻입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숫자 11을 보았는지 샘터 11월호는 특집으로 ‘하염없이 걸었다’란 주제를 걸었습니다.

외로운 길을 걷던 20대의 서러움, 7일간의 사막 레이스 끝에서 만난 박수소리, 

무전여행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이의 나눔, 황량한 마음으로 떠난 도보 여행이 남긴 작은 변화 

이런 것들을 담아냈습니다.

11은 왠지 모르게 든든하게 느껴진다던 제 감상이 그저 저 혼자만의 감상에 그치지 않을 것 같아요. 

(이 글들을 만나면 홀로 걸어도 나란히 걸어도 둘이 되어 있는 1들-11을 느끼지 않을까요?)



샘터 11월호 중에서 전 <알맹이로 승부하리라(p.33)>란 글이 가장 와닿았습니다.

성우 공부를 하는 20대 청춘의 깨달음이 담긴 짧은 글입니다.

5년 간 성우시험을 준비하면서 ‘다른 이의 말을 자신의 말처럼 전하는

 성우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꼈다고 하더군요.

차마 ‘뱉지 못했던 말을 대사에 담아 전하는’ 걸 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자신 안에 있는 진짜 자신의 마음을 담아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내 안에 숨어있는 혹은 숨겨놓은 진짜 나를 만나는 것이 진실한 나를 만들고,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이겠죠?


 

11월 호엔 작가 최인호 1주기 전 소식도 있었습니다.

(서울 평창동 영인문학관, ~11월 8일까지. ‘사물의 시간’이란 코너에서 작가 1주기를 맞아 특별히 다루었습니다.)

50년 동안 소설을 썼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가 아닌 작가로 남고 싶어 했던 그를 그리워 하는 이들이 여러 유품을 모았다고 해요.

십자가와 묵주, 손녀가 만든 솜 눈사람과 만년필이 놓인 앉은뱅이 책상은 작가가 흘린 눈물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던 마음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35년 6개월간 샘터를 통해 연재한 소설 ‘가족’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범한 가족의 소소한 일상이 그려진 이 소설의 연재가 끝나자 이웃과 이별한 것처럼 헛헛함을 느낀 독자도 많았다고 하잖아요.

조금 투박하지만 부끄럽지만 우울하지만 우습기도 하지만 나와 내 가족의 맨얼굴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연장선 위에 놓인 것이겠지요?

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최인호 작가의 전시회도 읽어본 적 없던 소설 ‘가족’도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다큐멘터리의 방송작가는 가끔은 장례식장에 가 앉아 있다고 합니다(<장례식에 가면 보이는 것들(p.54~55)>).

돌이킬 수 없는 것들,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면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오늘은 소중한 영원’이라 생각하며 돌아온다고 하죠.


 

장례식장에 가는 것 보다 저는 조용히 거리를 걷겠습니다.

가을에서 겨울로 치닫는 이 시기에, 

혼자 그렇지만 터덜터덜 걷는 내 다리와 함께, 

나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어 보아야 겠습니다.

얼마만큼 내게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지, 

혹시 내가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은 없는지.

11월이 시작되는 이 시점, 샘터 11월호 덕분에 저는 숙제를 하나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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