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왔어 우리 딸 - 나는 이렇게 은재아빠가 되었다
서효인 지음 / 난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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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을 하러 국공립 어린이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작고 둥그런, 버섯같은 책상과 의자가 곳곳에 놓여있고 
색색의 부직포가 모여 과일이며 꽃이 되어 게시판을 가득 메우고 있는 새로운 세계. 
소풍 나가는 원생들의 들뜬 분위기 못지 않게 나도 들뜬 마음으로 그들의 채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찬찬히 바라보던 순간, 낯선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의 올망졸망한 머리가 빨리 들썩이는 와중에 무디고 더딘 몸놀림이 보였던 것이다. 
뭔가 다른 움직임의 아이들.
그런 친구가 아무렇지 않은 듯 하나처럼 꼬물거리는... 빠르고 느린 움직임들의 향연.
내가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알아서 함께 지내는 자연스럽고도 예쁜 광경이었다.


내가 길을 가다 우연히 ‘은재’를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낯설음에 경직되어 그 아이의 남다른 몸동작을 건조하게 따라갔을까. 

아니면 평소처럼 한번이라도 아이와 눈을 맞추기 위해 미소를 준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을까. 

어떤 표정으로 은재를 대했을지 자신이 없다. 

특수교육과 친구들과 지내기도, 맹인 장애우 친척/친구가 있는 나조차도 

평소에 장애우 혹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이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자라온 사람은 아니니까. 


하물며 은재 아빠-서효인 시인은 어땠을까. 

울음이 들리지 않던 조용한 분만실에서,

간호사들의 ‘다운인가봐’하는 수근거림 속에서,

그는 어떤 표정 어떤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봤을까.


어느 날 문득 그는 그녀의 몸 속에 작은 우주가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그들은 결혼을 한다, 낯선 부모님들은 한 순간에 소중한 가족이 된다.

순서가 뒤바뀌어도 뭐 어때-하며 예쁜 땅콩이를 기다린다. 

시인이 끄적이는 일기는 작은 고백들이 담긴 연서가 된다. 

넌 어떤 아이일까 꿈을 꾸며,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고백하며 이야기는 채워진다.


초음파 사진 속에 존재하던 우주가 

아주 작은 아이로 게다가 ‘다운 증후군’이라는 좁은 울타리로 경계지어지면서 

아이의 아빠,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 모두가 반응한다.

그리고......그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일기에 담긴다.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까지도.

작은 우주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소를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릿하다, ‘보통’ 아이와 ‘다운’ 아이에겐 자연스러운 것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벅찬 것인지를 생각하면. 

‘심장에 구멍이 났다’는 비유는 연애의 끝자락에서 시릿한 미소와 함께 꺼낼 표현이 아니었다. 

은재에게는 그게 극복해내야 할 큰 시련이요 현실이었으니까.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빠에겐 큰 행복일 수 있으니까. 


아직 아이를 키워본 적 없고, 장애우를 지켜내야 하는 보호자인 적 없었던 나조차 

은재 아빠가 된 듯, 가족이 된 듯 아이를 그리며 웃거나 아파한다. 

뭐지 이 낯선 공감은?


이건 네 이야기야. 네가 부린 마법을 적는 거지. 먼 훗날, 상자 안 저 멀리에 있는 사람이 길을 잃어 여기에 닿으면 벽에 적힌 글을 보겠지. 아빠의 반성문을, 아빠의 기록장을, 아빠의 모든 것을. 그 사람들 표정은 어떨까? 다운 증후군을 가진 사람을 처음 보는 대부분의 사람처럼 뜨악할까? 아님 무심할까? 뭐라도 좋아. 누구라도 너와 1시간만 함께 있으면, 너를 사랑하게 될 거야. 모두를 사랑하게 될 거야. 그래서 안녕하게 되겠지. 은재 너는 마법사니까. 아빠는 네 신비한 마법을 완전히 믿어버리게 되었어. 여기에 글을 끝내. 신이 있어 우리가 들어 있는 상자를 흔들어, 많은 사람이 아빠의 글이 적힌 벽에 와 부딪히면 좋겠구나. 은재, 네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함께 있을 수 있게. (p.273)



은재가 태어나기 전 시인은 그저 평범한 남자였다. 

‘가족’이 생긴다는 희망에 부풀어 초보 유부남이 되고, 

예쁜 꿈을 그리고 품으며 엄마와 함께 웃음으로 세상을 채워가며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 아빠가 되어가던 평범한 남자. 

그러다가 은재와 함께 아빠는 비범한 아빠가 된다.

 ‘사랑스러운 은재’를 사람들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을 준비를 하는 부지런한 아빠이자, 

잘 왔어 괜찮아..하고 스스로를 아이를 온전히 다독이고 품을 수 있는 딸바보 아빠가.



이 책은 다운증후군 ‘은재’를 다시 보게 만드는 잔잔한 에세이이자, 
낯설고 당황스러운 눈빛을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눈길로 바꾸어줄 에세이이다.
부끄러운 고백조차 감추지 않고 풀어쓴 시인의 용기와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은재의 일거수 일투족이 담긴 감동의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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