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런어웨이 - 도피할 수 밖에 없었던 여자의 가장 황홀했던 그날
앨리스 먼로 지음, 황금진 옮김 / 곰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평론가 신형철이 어느 팟캐스트에서
늦게 읽혀질 수 밖에 없는, 그러나 그래야 하는 종류의 글이 있다며
앨리스 먼로의 작품을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책을 만나서 였을까.
정.말. 늦게 읽혔다.
한 작품을 휘리릭 마치자 마자
-내 머리의 용량초과여서 그랬을까-
그 작품을 다시, 찬찬히 읽어야 했고
하나의 작품을 읽은 후에는 책장을 덮고
한참을 생각하게 되었다.
길을 걸을 때, 자전거를 탈 때,
가지런히 놓인 이 책을 바라볼 때...
읽었던 단편 속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곰곰히,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들을 뜸을 들여가며 곱씹었다.
단편 여덟 작품이 실려있지만,
「우연」,「머지 않아」,「침묵」은 연작이다.
같은 인물- 줄리엣의 일대기의 부분부분을 엿보는 것 같다.
사실 이 연작을 읽으면서도
참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주인공 줄리엣의 이름이나(내 영어 이름은 Julie)
처지(가르친다는 것)가 나와 달라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사랑'의 순간에 놓인 그녀의 이야기,
'부모'를 대하는 묘한 애증(?)의 기운을 보고 듣고 느끼며
마치 내게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듯한 옛기억을 더듬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녀가 겪는 다 큰 '딸'과의 갈등이...
혹시 내게도 오지 않으리란 법은 없을 거라 걱정도 했던 걸까?
(아마도.)
난 원래 외국 소설들을 쉽게 소화하지 못했다.
외래어 발음이 한글로 표기된 것 따위를 보면
그 '단어'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자 여럿'으로 넘겨 읽고 만다.
때문에 다시 그 단어를 만났을 때 그것과의 첫만남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처음처럼 휘리릭~ '내용과는 크게 상관없잖아?'하고 넘겨버리곤 하기 때문에.
외국 소설들은
(이 땅에 서린 시대와 각종 사투리로부터 정을 붙이기 시작한)
나의 독서정서(?)와는 무관한
이국의 냄새가 심하게 나서 그리 반기지못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이 사라졌다.
장면을 묘사하는 듯하지만
외국만의 특별한 풍경 느낌이 과하게 들지 않는다.
그 안에 놓여있는 -보편적인- 촘촘한 감정선을 만날 수 있게 되어서
단어에 혹하여 글을 훌쩍훌쩍 넘어가버리지 못했다.
마치 나쁜 습관을 고친 것 같았고
끊임없이 '다시' 읽게 만드는,
지혜롭고 영민한 눈을 가진 앨리스 먼로가
무척이나 좋아졌다.
식물학 수업을 듣는 학생들 중에서도 특별한 여학생들은 더러 있었다. 그런 특별한 여학생이 지니고 있는 영리함과 헌신과 어설픈 자의식이나 자연계에 대한 진정한 열정을 보면 실비아는 자신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그런 여학생들은 마치 팬처럼 실비아를 추종하면서 상상 이상의 친밀감을 기대했지만 대개의 경우 얼마 안 가 실비아에게 짜증스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다. (p.31)
:표현에서 그리고 그 의미에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이 책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소설이자
소설집의 제목과 같은 「런어웨이」에서 만날 수 있었다.
가능하다면 조금 더 늦게 이 책을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차근차근히 앨리스 먼로의 나머지 책들을 '읽은 책' 목록에
부지런히 올려두고 싶다.
앨리스 먼로와의 첫 만남이 이 책이어서 정말 행복하다.
p.s.
옮긴이-황금진-의 말에 따르면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떠남』을 손보면서 다시 나온 책이라 한다.
당시에 누락되었던 단편 셋-「허물」, 「반전」, 「힘」까지 실렸다고 한다.
완역본이란 말인데, 옮긴이가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의 '완벽본'이라고 알아듣고 싶어졌다.
어쩌면 번역가의 수고 덕분에 내가 앨리스 먼로에게 반하게 된 지도 모르니까?!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