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삼관 매혈기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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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많은 분들이 추천하는 소설이어서 되려 엄두를 못 냈던 소설이었다. 

<허삼관 매혈기>라는 한문투의 제목이 입안에서 겉도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추천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뭔가 복잡하고 관념적인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 같았고 

왠지 중국에 대해 잘 알아야 잘 읽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소설가 김영하의 목소리로 ‘조금’ 맛을 보았다. 

책의 일부였지만 끌렸다. 

피를 팔러 나서는 근룡과 방씨를 따라 병원에 갔고 ‘승리반점’에 갔다 나왔다, 

-아마도 기억이 맞다면- 허삼관이 일하는 생사 공장에도 들러볼 수 있었다. 

‘혈두 바지 앞단추 사이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속옷이 정말 여자의 것이었는지 봤어야 했는데, 

승리반점에서 탁자를 크게 두드리며 ‘돼지간볶음 한 접시하고 황주 두 냥‘을 시켜봤어야 했는데, 

꽈배기 서씨가 “아이야…”하고 교태를(?) 부리는 목소리를 들었어야 했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다.

 피를 판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고.

-엉뚱하지만- 헌혈을 하면 ’봉사 4시간‘을 쳐주는 헌혈의 집 시스템도 떠올려보게 되었다.

자꾸 자꾸 생각이 났고 허삼관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먼지 냄새가 자꾸 나를 불렀다.


그리고 잠들기 전, 침대에서 책을 펼쳤다. 

허옥란이 아이를 낳던 부분에서부터 다시 시작했다. 

피를 파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하지만 강렬했다. 피를 뽑으면 잊지 않고 돼지간볶음과 황주가 떠오를 만큼. 

돼지간볶음 세 접시와 황주 한 병, 그리고 두 냥짜리 황주 두 사발을 앞에 두고 

빙긋 웃고 있는 허삼관을 보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이었다. 

(이런! 자고 일어나는 사이클이 좀 뒤틀렸다.;;)

 

허삼관 매혈기, 

이름이 허삼관인 남자가 피를 팔아가며 살아온 인생 이야기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영화 <마지막 황제>나 <패왕별희> 등등에서 살짝 스친 

‘문화혁명’에 대한 짧은 지식만 있어도 별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아니, 사실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도 술술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이다. 

중국의 것이라곤 해도 뭔가 우리네 옛날 이야기같은 구석이 있다. 

(허삼관 매혈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들었다. 

실제로,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각색한다고 했다. 나만 ‘우리네’ 냄새를 맡았던 건 아니었나 보다.)



허삼관이 사람들에게 ‘자라 대가리(엄청난 욕이라고 한다)’라 손가락을 받지만

세 아들, 일락이 이락이 삼락이를 보살피는 마음만큼은 따뜻하다. 

아니, 몸속에 흐르는 피처럼... 추운 날 업혔던 아빠 등처럼... 뜨뜻하다.

일락이를 가라고 등을 떠밀면서도 역시 내 아들이라 흐뭇해하는 그를,

아이들에게 맛난 음식을 냄새 맡게끔(!) 어떤 메뉴건 뚝딱 만들어내는 그를,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피를 팔러 먼 곳으로 헤매는 그를

우리가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심각하지 않고 묘하게 구수하면서도, 마음이 짠하기도 하다. 

옛날 이야기처럼 한 번, 두 번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제각각 또다른 해법이나 반응들이 등장하고, 

미신에 가까운 믿음도 등장하고... 재미있다. 


작가 김영하는 허삼관이 바보 캐릭터라고 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그가 아버지이기 때문에...가족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라고 

괜히 허삼관을 대신해 편들어 주고 싶다. ^-^



 

위화가 지은 다른 작품들도 만나보고 싶다. 

이 소설의 매력을 -남들보다 미리- 알아내고 크게 흥행(?)하지 않아도 꾸준히, 표지를 바꿔가며 책을 열심히 펴내 준 편집자에게 새삼 감사하다. (대단하신 분들이다, 감탄할만한 열정이신 듯.)


곱씹을수록 ‘많이 괜찮은’ 소설이라며 흐뭇해할 수 있다. 

이 묘한 흐뭇함... 궁금하다면 추천.

 



p.s.

현재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에 하정우와 하지원이 캐스팅 되었다고 한다. 허삼관의 능청스러움(?)이 하정우의 등판에서부터 묻어나는 것 같다. 개걸스럽게 돼지간볶음을 먹는 장면을 벌써 본 것만 같고.(새로운 먹방이 출현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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