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 영화심리학자 심영섭의 마음 에세이
심영섭 글.사진 / 페이퍼스토리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몇 개월 전에 심리학 책을 신통찮아 한 적이 있었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심리학 서적을 한 권 집었는데 순전히 영화 얘기가 한 가득 들어있었다. 단편적인 영화 속 장면과 그것은 어떤 증상이라 명명하는(?) 구성, 알고 싶은 이론에 파고들 수 없었기에 책의 평가를 낮게 했다. (책의 겉과 속을 전혀 다르게 분류한 누군가에게 속은 기분이었으므로.) 며칠 전에는 강신주의 저서를 읽었다. 철학이 문학을 안고 있는 형식의 책이었다. 서로 다른 장르가 섞여 있긴 했지만 문학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고 철학의 입장이 주가 되어 있는 책이었다. 지나치게 흐물거리지 않은 구성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라는 책은 이 둘과 비슷하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이 심리학 같기도 하고 영화 같기도 하다, 아니 감정지침서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분명 다르다, 나를 속였다는 느낌도 주지 않고 지나치게 딱딱한 느낌도 주지 않는다. 영화심리학자가 쓴 ‘마음 에세이’라고 책의 색깔을 제대로 분류 해놓았다. 부담스럽지 않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고 또 때때로 멈추어 놓아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영화를 빌어 쓴, ‘’에 대한 에세이이니까.

 

비교적 최근의 영화 <연애의 온도>나 <건축학개론>에서부터 1946년 작 <멋진 인생>까지 다양한 영화가 실려있다. 영화가 두서없이 실린 건 아니냐고? 그렇다면 나는 분명 지난 번에 읽었던 책처럼 평점을 낮게 매기고 말았겠지. 작가 심영섭이 20년간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인생에 대한 질문들에 맞춰 영화들을 골랐다. 영화와 글이 균형 잡혀 있다. 지극히 인생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래서 감히 ‘삶에 대한 에세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이자 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잠깐 펼쳐보면, 오필리아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그림도 실려있다.) 마르셀 푸르스트의 말-“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버림받음에 의해서, 더 일찍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를 통해 살며시 열쇠를 들어 보인다. ‘아, 그렇지. 이별같은 것 때문에 나도 참 많이 성숙했었는데’하고 마음을 열면서 열쇠를 받아들자 영화 <자전거를 탄 소년>의 일상이 그려진다. (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본 적 없는 영화를 만나 행복한 기분은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이 작품처럼!)


소년 시릴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아주 뒤늦게 알게 된다. 빨간 자전거가 버러졌듯 자신 또한 버려졌다는 현실은 시릴을 무너뜨리는 것 같다. 헛된 희망을 품었다가 다시 또 넘어지는 시릴,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고 몸부림쳐도 외면받았던 어린 내가 보이는 것 같아서 괜히 마음이 스산하다. 시릴 마음속에 뚫린 휑한 구멍이 내 것인 양.

이러한 ‘무너짐’의 과정은 버림받은 이들의 가장 고유하고 독특한 심리적 과정이기도 하다. 상실에 대한 슬픔과 저버림과의 차이는 ‘자존감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상실에 대한 슬픔과 저버림과의 차이는 ‘자존감의 붕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별의 과정을 거쳐서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은 오히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저버림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일종의 심리적 폭력이다. 뿌리 깊은 자존감에 일방적인 어퍼컷을 당한 이들은 아픔조차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최승자의 시 <일찍이 나는> 속 버림받은 여자처럼. (p.184)

버림받았다는 사실에 멈춰있지 말고, 버림받았으므로 저멀리 밀쳐졌으므로 일어나야 한다. 나무에서 떨어진 시릴이 죽은 듯 쓰러져 있다가 전화 벨소리에 거짓말처럼 일어나듯이 책을 읽는 그대(혹은 나)도 그래야 하지 않겠냐고 누군가가 가만히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철학자는 구명하지만 심리학자는 다독인다, 며칠간 비슷한 구성으로 된 두 책(『강신주의 감정수업』과 심영섭의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을 읽으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강신주는 강단있게 밝혀내지만 심영섭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각각의 책이 만족스러운 건 내용도 구성도 각각의 장점이 잘 살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이야기를 넘나들면서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주는 작가에게 고맙다.

 

 

 






버려져야 선택받는다. 인간은 버려짐을 통해 다시는 버려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무쇠처럼 단련한다. 무너짐의 극한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수도, 누군가를 버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난 왜 이렇지?’(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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