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의 재발견 - 1년 내내 계획만 세우는 당신을 위한 심리학 강의
피어스 스틸 지음, 구계원 옮김 / 민음사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어떤 책인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1년 내내 계획만 세우는 당신을 위한 심리학 강의’라는 부제보다는 저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늑장을 많이 부렸고 그것 때문에 ‘늑장심리학’을 연구했으며 이제 세계적인 권위자가 되었다는 저자 피어스 스틸.

의 약력을 보면서 배알이 살살 꼬였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늑장의 세계적인 권위자?’라는 표현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 같아서 반감이 들었고 그 다음에는 저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더욱 궁금해졌다.

‘늑장’ 앞에서만큼은 손꼽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그가 뭘 했을까를 기대하며 나는 책을 펼치게 되었다.

 

전두엽 피질과 변연계의 싸움

뇌 과학에서 밝혀놓은 늑장의 핵심은 ‘싸움’이다.

다시 말해 전두엽과 변연계의 싸움!

진화의 단계를 거치면서 먼저 발달하기 시작한 변연계는 ‘지금 이 순간’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힘을 쓴다.

그리고 조금 늦게 진화한 전두엽 피질은 미래의 목표를 추구하는 등 전체를 총괄하는 사고나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이 두 싸움은 낯설지 않다.

플라톤이 제시한 인간의 본성 내면의 두 가지의 갈등,

혹은 프로이트가 말한 욕망과 충동과도 상통하고,

문자 알림음을 들으면 일을 하다가도 달려와 폰을 만지작거리는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다.

이 모든 것이 늑장을 만들어내는 원리(!)인 것이다.

 

인류의 오래된 습관, 늑장

농업이 시작되면서 늑장은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플 때 음식을 먹던 시기를 지나고 미래를 위한 준비와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서 기다림이 필요해졌다.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수확하는 것은 인류 최초의 인위적인 마감 기한(p.83)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공공연하게 정해진 특정한 기한-수확시기까지 참거나 기다려야 했고

틈을 노리듯이 새로운 ‘하고 싶은 것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길고 긴 마감기한은 아주 잠깐씩 잊혀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욕망은 사람들을 향해 유혹의 노래를 불렀다.

제때에 적절하게 해야하는 작은 농사일로부터 귀를 닫고 눈을 감기 시작한 사람들의 버릇은 늑장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로 전쟁과 정치, 종교 할 것 없이 늑장이 확장되기 시작했고

산업 혁명과 함께 늑장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하면서 혁명을 겪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할 것 없이, 사람들은 누구나 ‘현재’와 ‘미래’ 사이에서 여유를 부리는 늑장아닌 늑장을 즐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늑장이라는 유혹의 이면

그렇다면 늑장은 즐겁기만 한가. 늑장을 불러 일으키는 유혹은 거의 매력적인 것들이다.

재미있거나 흥미롭거나 힘들지 않은 일들이 그것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그 ‘찰나의 유혹’은 유익했는가를 돌아보면 어떨까.

약간의 치통이 시작되었지만 치과에 들르는 것을 미루다가 결국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아플 때 치과에 가서 큰 돈을 날린 기억은 없는가.

시험공부를 하겠다고 책상에 앉자마자 지저분한 책상이 신경이 쓰여 청소부터 하는 늑장을 피워본 적은 없는가.

카드 결재일이 며칠 후인 것을 알면서도 은행잔고 확인을 미루는 통에 본의 아니게 신용불량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런 일들 말고도 늑장의 예는 많을 것이다.

저자는 여러 가지 자신의 연구 결과 수치를 보여준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결과는 -이익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계산이 빠른- 경영 대학원생들이 만들어줬다.

최대 300달러의 상금을 걸고 게임을 실시한 후, 우승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준다.

지금 당장 수표로 받을지 2주 후에 조금 더 큰돈으로 받을지.

(물론 수표의 거래 방식이 우리나라와는 조금 달라서, 다른 기관에 가서 현금으로 바꾸어야 쓸 수 있다.)

대부분의 연구 대상자들은 '2주 후의 큰 돈' 대신 '지금 당장의 수표'를 선택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대부분 평균 4주가 지난 후에야 그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서 썼다고 한다.

늑장의 힘이다. 참고 기다리면 2주 후면 더 큰 돈을 받을 수 있는데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위해 선택을 하고는

4주 동안 그 수표도 조금 더 큰돈의 기회도 썩히는 셈이다.

 

늑장부리는 사람들의 세 가지 유형

책 속에는 p.36~37에 걸쳐 스물 네 가지의 테스트 항목이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는 어떤 스타일의 늑장에 소질이 있는지 판단해 볼 수 있다.

일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늑장을 부리는지,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건지,

기한 직전까지 동기를 부여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늑장꾸러기 소리를 듣는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

그리고 7~9장에 걸쳐 각각의 요소에 맞게 늑장을 뜯어고치는 방법들을 제시하여 준다.

테스트 항목을 보면서 속는 셈치고 계산을 했고 그 뒤의 길잡이를 보면서 나는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친절한 저자 덕분에 나는 각 장에서 제시한 항목에 따라 내게 필요한 장치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다만 느릴 뿐이다’고?

이미 미루기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실천 과제: 만성적으로 늑장을 부리며 매 순간마다 변명거리를 찾아내 스스로를 속이며 계속 일을 미루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찾고 있던 방법일지도 모른다. 늑장은 이미 여러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를 몰아내려면 늑장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p.184)

늑장의 원리야 과학적인 근거와 연구 결과를 보여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늑장의 치명적 매력’을 체험하고 있다.

때문에 1부에 드러난 빼곡한 연구 결과들은 저자가 ‘늑장의 권위자’가 될만 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책의 가치는 2부(7~9장)에서 빛이 난다.

하지만 자기계발서를 자주 읽어본 사람이라면 책속에 실린 ‘늑장을 이기는 기술’들은

여느 자기 계발서에서 한두번 쯤은 마주친 적 있다고 할지 모른다.

우리의 반응을 미리 예측했는지 저자는 말한다, 늑장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보편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발 더 나아가 ‘여기서 설명한 방법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늑장 방정식‘도 별 볼 일 없는 책일 뿐이다(p.253)’라고 능숙하게 지도편달(!)하기도 한다. 책을 처음에서부터 차근히 읽은 나는 배짱두둑한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뒤이어 등장하는 에디와 밸러리의 일상이나 톰의 직장 성공기를 보면서

살짝 낯간지러워 하면서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결과군!’하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면

나는 저자에게 매료된 것이 확실하겠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한 마디로 ‘늑장방정식’이다.

(책의 원제가 The Procrastination Equation, 늑장방정식이다.)

기대치와 가치가 커질수록 충동성과 지연이 적어질수록 의욕이 발휘되고

이것은 늑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준다.

이 흔한 원리를 효율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책이 필요하지 않겠지.

하지만 실행할 자신이 없다면 이 책을 권한다.

어떨 때 어떤 방식으로 늑장을 제어할지 당신의 눈을 뜨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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