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중독 - 나는 왜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가
케이 쉐퍼드 지음, 김지선 옮김 / 사이몬북스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르네고시니의 <꼬마 니꼴라>라는 책을 아는가. ‘니꼴라’라는 소년이 바라보는 일상의 이야기 등이 실린 책인데 천연덕스러운 아이의 일이 어른들의 심사를 뒤틀리게 만드는 웃지 못할 일들로 변하곤 한다. (삽화가 장 자끄 상뻬의 그림과 함께 출간되어 여러 나라에서 유명한 책이다.) 난 초등학교 시절에 그 책들을(시리즈로 나와 있다) 무척 즐겨 읽었는데 이상하게 니꼴라하면 니꼴라와 그 친구들이 떠오르고 그 중에서도 먹보 알세스트는 ‘크로와상’을 들고 있거나 먹고 있는 모습으로 연상된다. 크로와상이 어떤 빵인지도 알지 못하던 나에게 책속에서 알세스트가 탐닉하던 그 빵은 일종의 경외감 같은 것이 일었다, ‘얼마나 맛있는 빵이기에 알세스트가 거의 항상 그 빵을 즐길까’ 하고.

도서 『음식중독』을 읽고 보니 알세스트가 다시 떠올랐다. 어쩌면 그 아이 ‘음식중독’의 상태가 아니었을까, 잼 바른 빵을 떨어뜨리게 만든 선생님에게 공격적인 말을 내뱉었던, 그래서 정학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그 아이. 어쩌면 케이 쉐퍼드가 말한 어린 나이에서부터 탄수화물에 중독된 대표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음식중독인가?

음식중독자라는 제목은 자못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나는 음식중독자인가’에 관한 20가지의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p.014~015)에 실려 있고, ‘음식중독 진단기준’이라고 <국제 음식섭취장애 전문지>에서 사용된 음식섭취 장애에 대한 진단 기준(p.237~238)이 제시되어 있기도 하지만 난 해당사항이 적었다. 그래서 더욱 제목이 자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음식물 중독으로 인해 치료받을 사람이 어떠한 증상을 보일지를 상상하며 읽다보니 저자의 절실한 외침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음식중독자들은 의지가 약하거나 부도덕한 사람들이 아니고, 버릇이 나쁘게 들었거나 행동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신진대사나 생화학적 균형에 문제가 있어서 특정한 중독증상에 취약한 사람일 뿐이다. 음식중독자들은 음식에 집착하며, 체중과 외모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고, 가면 갈수록 자신이 먹는 음식의 양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p.024)

다른 음식과 달리 ‘중독’을 부르는 음식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정제된 탄수화물’!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회용 커피가 너무 좋아서 골다공증에 치명적이라고 아무리 경고를 했어도 끊지 못하시는 엄마’나 ‘라면이나 과자에 탐닉하다시피 했던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음식중독자의 경우가 어떠할지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몇 년 전까지도 나는 과자를 먹을 때엔 음식중독 초기의 증상처럼, 몰래 먹기도 하고 남들이 그만 먹을 때도 계속 먹을 때도 있었다. 중기의 증상 중의 하나인 ‘변명거리가 많아진다’처럼 아주 별거 아닌 사건들을 들추어 가면서 과식의 이유로 삼기도 했다. 가령 내가 이렇게 저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과자라도 먹는 거라고, 아니면 ‘일종의 선물’이라고. 그때의 상태는 어땠냐고? 그때의 나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할인을 위해 묶음으로 판매되는 과자를 일주일치의 양이라고 샀다. 그리고 앉은 자리에서 -많게는 서너봉지까지-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이상하게 멈출 수 없었다.

 

왜 ‘중독’인가?

저자는 왜 굳이 ‘중독’이라는 치명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책을 써야 했을까. 책 속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용해본다.

음식중독자들의 경우, 음식 섭취가 늘수록 폭식에 대한 내성이 높아진다. 신체는 정제 탄수화물에 의존하고, 점점 더 많은 양을 필요로 하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같은 효과를 내는 데 더 많은 양이 필요해진다. (p.032)

이 부분을 읽을 때엔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 나오던 주인공의 엄마를 떠올려야 했다. 그 정도로 비대하고 먹성좋은 사람들이 음식중독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폭식이 선택이 아니라 필요가 되는 상태, 저자가 목소리를 높여 경고하고 싶은 음식중독자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음식을 손에서 놓고 싶지만 놓을 수 없고 주변에서 말리면 화가 나는 사람들, 모든 일에 무관심해져서 공황상태를 겪거나 주변 사람과도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 저자가 기어코 책을 쓰도록 만든 사람들은 바로 그런, 진짜 중독자가 아닐까 싶다.

 

얼마나 위험한가?

“헤로인이 화학물질인건 다 아시죠? 양귀비에서 즙을 내어 그 즙을 정제해 아편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정제해 모르핀을 만들고, 마지막이 헤로인이죠.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설탕 또한 그저 화학물질일 뿐입니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우로 낸 즙을 정제해 당밀을 만들고, 그것을 다시 정제해 흑설탕을 만들고 나서 마지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그 기묘한 백색 결정이죠.”(p.087~088)

요즘에 한창 영양학적으로 접근하는 책이나 정보를 많이 읽고 모으고 있는데 하나같이 ‘오백(五白)’식품을 멀리하라고 조언한다. 오백식품이란 다섯가지 백색 음식인데 흰쌀, 흰밀가루, 흰설탕, 정제한 흰소금, 흰조미료를 의미한다. 모두 정제과정을 많이 거쳐 영양학적가치가 떨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속에도 화학물질에 가까운 ‘기묘한 백색결정’으로 설탕을 비유했다. 꼭 멀리해야만 할 것 같은 비유다.

정제 탄수화물은 “도파민과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의 전달 증가를 촉진한다. 신경 접합부에 이런 신경 전달 물질들이 풍부하면 희열감이 촉발되고, 그것은 더 많은 정제 탄수화물에 대한 욕망이 강해지도록 자극한다.”

“사람이 설탕과 밀가루를 비롯한 정제 탄수화물에 중독증세를 보이는 것은 가능한 일인데, 정제 탄수화물은 혈관과 시상하부에서 알코올과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p.088)

 

어떻게 해야 하나?

음식중독자가 음식중독이라는 병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받을 때, 희망이 태어난다. 음식중독이 우리의 의지력 부족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정신적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위안이 된다. 그것은 오히려 다른 병을 유발하는 근원과도 같은 질병이다. 그 병이 정신적이고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문제들을 낳는 것이지 마음 때문에 그 병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중독이 이 여적인 병을 낳는 것이지, 병의 원인이 영적인 것이 아니다. (p.204)

저자는 한결같이 주장한다. 첫째, 모든 형태의 당을 절대적으로 피한다. 둘째, 녹말을 비롯해 정제 공정을 거친 모든 곡물의 가루를 멀리한다. 셋째, 식품에 들어 있는 가루-밀과 녹말을 조심한다. 넷째, 알코올 음료는 당분이 높고 곡물이 들어 있을뿐더러 알코올 자체가 탄수화물을 고도 정제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멀리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자면 ‘정제되지 않은 음식을 먹어라‘일 것이다.

다이어트를 하겠다며 억지스러운 식단을 아주 잠시 시행하지 말고, 근본이 되는 식습관을 바꾸라고 조언하는 것이다. 저자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물을 청소하는 것과 비교했다. 매일 우물에서 낙엽과 나뭇가지를 부지런히 치우고 청소를 하면서 주변을 정리하면서 아주 가끔씩 청소를 마치고 생선뼈를 버린다면 우물이 깨끗해지겠냐고. 어떤 특별한 원칙을 습관으로 하나 더 만드는 것 보다 잘못된 습관 하나를 없애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고 곧 ‘정제된 탄수화물’을 식단에서 빼는 것을 의미한다. 무작정 이유없이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 설득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설명과 비유, 그리고 극한의 인용구들이 많이 실어 놓았다. (책 속의 “”에 실린 특정학자의 주장들을 보면 경고에 가까운 어조이다.)

저자의 경험에 따르면, 훌륭한 식습관을 꾸준히 유지하는 좋은 습관을 들인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초콜렛 혹은 빵 한조각을 먹는 순간, 당신은 다시 ‘중독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탄수화물은 병이고, 그것은 중독이기 때문에.

어쩌면 5월부터 과자를 끊기로 한(!) 나의 결심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당신의 과자 사랑이, 빵 사랑이 조금 끈질기지만 애교로 볼 수 있는 정도라고 가벼이 넘기지 말자. 중독을 부르는 위험한 물질이 무엇인지 그것이 당신을 어떻게 적응시킬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까.

그대, 중독 초기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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