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그림 - 우리를 매혹시키는 관능과 환상의 이야기 ART & ESSAY 1
이연식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상한 것 이상이 되면 괴물이 된다. 상상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강력하고 때로는 사람들의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형체도 정의도 개념도 아무 것도 종잡을 수가 없는 이 존재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우리는 매일같이 놀라운 기록을 만들어내고 있는 ‘괴물 투수’를 보기도 하고, 강가에서 서식한다는 ‘괴물쥐’의 소문을 듣기도 하며, 하늘 사진 속에 희미하게 찍힌 미확인 물체로부터 ‘괴생명체’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한다. 어떠한 것이 되건 의심이 되거나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 등장하면 ‘괴물’이라는 범주 안으로 집어 넣으면 된다.

괴물 (怪物) : 1)괴상하게 생긴 물체, 2)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무언가를 굉장히 잘 하는 사람, 혹은 그런 사람을 질투심에 의해 비하하는 말

 

 

상상력이 풍부한 죄로 나는 한동안 ‘괴물’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책 『괴물이 된 그림』을 감히 펼치지도 못했다. 그림이 담긴 책을 좋아하고 그 시대의 사상이나 배경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그림의 해설 또한 좋아하지만, 강렬한 핑크빛 표지에 날카롭게 그려진 어떤 ‘괴물’의 낯선 형체에 겁을 집어 먹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책을 펼치자 괴상한 그림보다 ‘이야기’가 먼저 보였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혹적인 괴물, 용과 기사, 악마의 형상, 떠오르는 형상, 나를 찾아온 죽음, 잃어버린 형상, 변신, 그리고 그림 밖으로 나오는 괴물 이렇게 테마를 꼽아가면서 우리가 괴물을 어떻게 창조했고 그려냈는지 그림과 함께 간단하고도 세련된 구성으로 담아냈다. (세련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그림에서 다음 그림으로 넘어가는 방식이 하나의 흐름에 근거하여서 군더더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2장 <용과 기사>는 동양과 서양의 생각을 비교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우리에게 신령스러운 존재이자 신비한 힘의 상징이기도 한 용(龍), 사실 많은 그림에서 그려지는 용은 일관성이 없다. 어떤 곳에선 아홉 가지의 동물을 합쳐서 만들어 내기도 하고, 1000년 묵은 뱀이 변한 형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동양에서-특히 우리 나라에서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존재로서 용은 신비로운 ‘괴물’이다. 죽어서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된 문무왕이나, 임금님의 얼굴을 뜻하는 ‘용안’ 속에 용은 살아 있다. 강력한 지배자로서, 신비롭고 때로는 의롭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용이 언제부터, 왜 ‘괴물’로 둔갑하여 많은 기사들의 창과 활에 공격을 당하게 되었을까. 공주를 구하러 오던 왕자들을 가로막던 용이 불을 내뿜게 되면서 부터였을까.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이야기의 유래가 될 법한 ‘바실레의 《펜타메론》속〈해,달,탈리아〉’의 용조차도 왕자를 공격하는 괴물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공주를 ‘지키는 존재’였을 뿐인데.

미술사에 등장하는 ‘용’은 사실 기독교 문화와 대립하는 토속 신앙의 의미였다고 한다. 토속신앙이 기독교에 의해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되면서 용은 이교도, 악덕, 이단의 오명을 덮어쓰게 되었고 이것은 그림 속에서 ‘자연의 힘, 질서 없던 세계의 혼돈, 내면의 폭력과 어둠’이기 때문에 용맹스러운 기사나 자애로운 천사에 의해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문화적 다양성을 꺾어가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널리 알려야 했던 종교계의 부득이한 선택도 이해가 되지만 괴물로 전락해 버린 용의 신세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늘 즐겁게만 흥얼거렸던 ‘puff the magic dragon’이란 동요 속에서 문득 홀로 남겨진 퍼프가 보였다. 저자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용은 변하지 않았다, 인간이 변했을 뿐’이라 읊조린다. 사람들의 목적에 의해 괴물로 변해버린 용은 이제 사각 캔버스 속에서 ‘괴물이 된 그림‘으로 남게 되었다.

 

 

꼬마 아이였을 때 나는 사람들이 ‘도깨비’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모두들 내 앞에서만 사람의 형상이었다가 내 눈을 벗어나면 소리만 남은 채 이상한 형상으로 바뀌곤 하는. 나이가 들어 내 꼬마 시절의 ‘도깨비설’의 근원을 추측해보니 그 뿌리에는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있었다. 어설픈 분장에 약간은 푸른 빛이 도는 조명, 그리고 ‘전해오는 이야기’라는 삼박자가 쿵짝을 맞추며, 무서운 귀신들과 낯선 이야기들을 보여줬고 그 존재들은 어린 아이의 머릿 속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웠다. TV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더 ‘괴상한 일’이 있을 법도 하다는 그럴싸한 생각이, 방 밖으로 나가버린 사람들을 문틈 사이로 몰래 훔쳐보던 꼬마를 만들었다. 확인해볼 수 없던 존재들을 죄다 도깨비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괴물은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 등장했던 것이 아닐까. 아니,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이 아닐까. 때로는 경험해 본 적 없는 기쁨을 의미하기 위해서(4장) 혹은 신화 속의 절대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7장) 때론 사람들의 경각심을 일러주기 위해서(3장, 5장).

 

존재해서는 안될 것 같은 존재가 이야기 속에 살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하나 둘 그림이란 형체로 살아나게 되면서 우리는 ‘괴물’을 더 완전히 인정하면서 살게 되어 버렸다. 그대가 괴물을 필요로 하면 괴물은 태어날 것이고 괴물을 원하지 않으면 괴물은 사라지고 만다. 모든 것은 그대 마음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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