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이덴슬리벨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전쟁 속에서도 빛이 나던 사람...사람들.

 

 

 

소피에게

 

 

혹시 선댄스 영화제라는 걸 알아? 미국에서 열리는 유명한 영화제인데 최근에 29회째를 맞은 것으로 알아. 맨날 옛날 영화만 찾아보던 내가 왜 갑자기 ‘최신 영화계 소식’을 꺼내냐고? 영화계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줄리엣,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떠올랐거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이 편지 구길 생각은 마, 읽다보면 알게 될 거야. 우리나라의 <지슬>이라는 영화가 선댄스 영화제의 월드시네마 극영화 부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고 다들 떠들썩해. 우리나라의 민주화과정에 있었던 역사 속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거든. 1948년 4월 3일부터 약 6년간 제주도의 섬마을 사람들은 폭력 앞에 놓이게 돼. 자칫 잘못하다간 -그게 누구건- 총살이라고! 주민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할 수 밖에 없는 험난하고 고달픈 생활을 했겠지, 아마? 나도 모르게 건지섬 사람들이 떠올랐어. 게다가 대단한 우연이 또 있어. 영화 제목인 ‘지슬’이 제주도 방언으로 ‘감자’라는 말이거든. 자, 내가 왜 영화제 얘기를 했는지 알겠지? 시대도 다르고 경우도 조금 다르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이 영국의 채널제도에 있는 건지 섬에 들어왔을 때, 주민들의 삶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했어. 물론 영화를 보기 전이라 더 이상 비교하면 안될 것 같기도 하구나.

 

소피, 너도 건지섬 이야기는 알지? 군인들의 지시에 따라 ‘해야할 것/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갈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니, 전쟁이란 건 참 포악한 것 같아. 똑같은 사람인데 갑자기 편이 갈리고 생활이 달라지고 태도도 달라져야 하잖아. 비누를 사용해서 씻을 수 없고 사람들은 가축들을 모두 뺏겨서 고기는 구경도 하지 못하지. 머리 위로 비행기가 날아가면서 폭격을 퍼붓고, 토드 노동자를 가두어 주었다간 감옥 행. 독일군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영국인들은 괴로운, 그런 상황 속에서 어쩌면 ‘엘리자베스’는 그렇게 빛이 나는 존재일 수가 있을까. 사람이 ‘사람다움’을 잃어가는 그 전쟁의 광기 안에서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줄리엣이 그녀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부터 그녀와 친해지고 싶어했다는 걸 나는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 아멜리아 모저리라는 마을 아주머니가 주최하여 돼지 고기 파티를 열었던 밤, 주민들은 군인들과 마주치지. 통금이 넘은 그 시간에 고기까지 먹고 귀가하던 길이란 걸 들킬 뻔한 위기에 처했을 때, 눈빛을 초롱초롱 반짝이면서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라는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라니. 그 일화를 들으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의 인생에 한발짝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할 거야.

 

참. 줄리엣은 킷과 잘 지낸데? 킷은 커갈수록 엘리자베스의 용감함과 영민함을 그대로 보여줄거야, 암 누구 딸인데. (줄리엣이 아무리 잘 해준다 해도, 킷 속에 흐르는 피는 엘리자베스의 빛나는 영혼으로부터 온 거라고.)

그나저나 줄리엣이 바보같은 남자들과 결혼하지 않은 건 참 다행인 일이야. 파혼을 했던 그 남자 기억나니? 허락없이 책들을 치워버린 것부터 원아웃이야, 그런데 거기다가 금색이나 은색으로 도금한 트로피를 늘어놓다니 투아웃이고, 줄리엣이 길길이 날 뛸 때 이해할 수 없어했다는 것으로 쓰리 아웃을 완벽히 채웠지. 그 다음에 마크였던가, 꽃다발을 갖다 바치는 그 미국 남자? 소피 너도 본 적 있니? 난 소문만 들었어, 말이 안통하는 고집불통의 마초였다는 것만 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본인은 알까, 자기의 치명적인 약점이 ‘페미니스트들이여, 창궐하라’의 구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거? 그에 비하면, 도시Dawsey는 진짜 진국인 남자야. 우리처럼 책 읽는 걸 좋아하고 듬직하고 지혜롭고 수줍기까지 하다고!

 

소피, 이 참에 건지섬에 함께 가볼까? 이참에 줄리엣과 도시가 킷의 백점짜리 엄마아빠가 되어주고 있는지 감찰단이 되어 보는 거야. 사실 난 이솔라에게서 내 머리뼈를 봐달라고 한 다음, 그 골상학 책을 빌려올 생각이 더 커. 시드니 오빠가 너희 오빠인데 험담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이솔라는 그 책에만 빠질 사람이라고. 생업에 지장이 없도록 도와줘야해. 약초로 이것저것 더 제조해 볼 수 있게 허브(herb)도감을 선물하면 어떨까. 골상학 그 책이 선물 받은 책이라고 내어주지 않으면 어쩌지? 그럼 시드니 오빠에게 부탁해서 우정어린 조언을 꼭 해드리라고 해줘, 너무 한 곳에만 빠지지 말라고 말이야. 오빠와 이솔라의 우정은 돈독한 데가 있어서 잘 통할 거야.

 

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려시대’에 관심이 많았어. 조선시대의 앞뒤 꽉꽉 막힌 남자들이 목에 힘주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 남녀평등을 실현해온 시대라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 관심이 옮겨갔어. 혼란기에도 빛나는 ‘진짜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을 찾는 것이 굉장한 경험이라 느껴졌거든. 그래서 우리나라의 조선 시대 후기를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 나라의 안과 밖이 무척이나 혼란스러운 그 속에서, 건지섬의 엘리자베스처럼 조선의 ‘엘리자베스’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찾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야. 그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면 어떨까? 시드니 오빠가 출판사를 십여년 간 쭉 유지할 수 있다면, 나를 줄리엣 다음으로 그 출판사의 대표작가로 키워달라고 해볼까해. 물론, 시드니 오빠한테는 한 5년 이후에 내가 말할 테니까 소피, 너는 그냥 알고만 있어줘. 내가 시작만 시끌벅적하고 마지막은 좀 약한 거 알잖아. 말뿐인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편집자 시드니 선생님의 눈 밖에 나면 안되니까. 간혹 줄리엣한테도 자문을 구해야겠다. ‘이지 비커스태프’란 필명으로 유럽을 종횡무진 활약하던 줄리엣인데 설마 그때의 노하우를 꼭꼭 간직해두기만 할까?

 

소피, 꼭 건지섬에 가보는 거야? 아멜리아 부인이 군인들 몰래 돼지를 빼돌린 것처럼, 난 이솔라에게서 꼭 ‘골상학’에 대한 관심을 빼내와야겠어.

 

다음 편지엔, 영화 <지슬> 속에 ‘감자’는 어떤 의미였는지 알려줄게. 아직은 짐작도 못하겠어. 내가 너무 섣불리 ‘건지섬’에 갖다붙였다고 네가 날 원망해서는 안되는 거잖아.

그 동안 건강하렴. 안녕.

네 친구가.

 

 

참. 킷이 엄마의 그 일화를 알까? 샐리 앤 프로비셔가 정수리에 옴이 나서 병원에 근무하던 엘리자베스에게 수술 받았던 얘기 말이야. 아픈 부위를 도려내는 동안 그 아픔을 잊도록 해주려고 게임을 해줬다 했잖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여자들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면서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 싹둑싹둑, “앤 블린!” 톡톡톡. “마리 앙투아네트!” 탕탕. 킷이 이 이야기를 몰랐으면 좋겠다. 나 킷에게 이 이야기를 꼭 직접 들려주고 싶거든. 그러기엔 킷이 너무 많이 커버렸을까 모르겠지만.

 

 

 

 

 

-----------소설의 분위기를 그대로 옮겨와서 서평을 써봤다.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이라도 이 책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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